비유,비사,비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의 영적의미

제라늄A 2021. 8. 17. 21:07

창세기 1:11-12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를 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 이러한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는 영적으로 과연 어떤 것들일까?  성경에는 “풀, 채소, 나무”도 모두 인간들의 어둠의 존재를 영적 차원에 따라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사야 37:26-27 네가 어찌 듣지 못하겠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었노라, 그러므로 그 거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같이, 푸른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지푸라기 같았었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정하고 행한 일을 네가 어찌 듣지 못하냐고 어둠의 존재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어둠의 패역한 백성들을 “풀이나 나물”그리고 “밀집”이나 “돌무더기”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풀”은 세상에서 종교 생활하는 “애급”의 존재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비유”하며 “씨 맺는 채소”는 “광야”의 존재를 “비유”하며 “열매 맺는 나무”는 “가나안”의 존재를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라는 “애급”에서 종교 생활하는 있는 “풀”들은 하루속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을 하여 거짓된 "애굽"의 종교생활에서 탈출해서 “광야”로 나와 “씨 맺는 채소”로 거듭나야 하며 “광야”에서 “씨 맺는 채소”는 “광야”에서 좀 더 강한 훈련으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시험과 연단을 받고 그 과정을 모두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열매 맺는 나무”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출을 원하시는 “농부”와 같이 땅에 심은 “채소나 과목”이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잘라버리거나 뽑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열심히 가꾸는 목적은 가을에 “열매”를 추수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농부”는 그 나무를 당연히 제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말씀에 무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볍게 그냥 넘기지 마십시오,  요한복음 15:5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네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농부”로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그의 제자들은 “가지”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의 “가지”가 그 "포도나무"의 진액으로 자기 몸만 배 불리고 “포도송이”를 맺지 않으면 “농부”는 그 “가지”를 잘라버린 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모두 “비유 비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정말로 무서운 말씀이며 이런 말씀을 그냥 읽고 무심코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게을리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들 포도나무” 즉 “기독교 거짓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참 포도나무” 즉 “참 목자”로 접붙임을 받기도 어렵지만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다 해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잘라 버리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이해가 되신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소름이 끼치는 말씀이며 이 말씀에 뜻을 깊이 생각을 하시고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말씀들은 모두 “비유 비사”로 깊이 감추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이 성경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의 말씀은 땅이 “풀”(애굽의 존재)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광야의 존재)와 각기 “열매 맺는 나무”(가나안의 존재)를 내었다는 뜻은  오늘날 세상이라는 기독교 “애급의 존재”와 “광야의 존재”와 “가나안의 존재”를 “비유”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 “어린아이 시절”이 있고 “청년시절”이 있고 “어른의 시절”이 있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초보 신앙에 안주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너희가 지금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도 못하는 어린애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 5:12-14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 도다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평생을 기독교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말씀을 평생을 받아먹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사도바울은 젖이나 얻어먹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라라고(엡4:13) 강력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으로 책망하시는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은 일방적인 설교로 교인들에게 평생 동안 젖을 먹이는 자들이고, 교인들은 목회자들에게 평생 동안 젖을 얻어먹는 자들이기 때문에 “포도나무 비유”가 왜 성경에 기록된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을 이해하시는 기독교인이라면 오늘부터라도 기독교에서 종교 생활하는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우상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