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기독교인들이 선(善)한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

제라늄A 2021. 11. 17. 22:39

롬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담 한 사람의 “선악과” 범죄로 유전 죄를 적용해서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이 말씀은 유전 죄가 아니라 아담이 “선악과” 범죄로 이미 “영”이 죽어있는 자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의 설교가 이미 “죽은 자”의 설교이기 때문에 육신은 살아 있다 하나 “선악과”를 계속 먹기 때문에 “영”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이미 “죽은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겔 18:2 이스라엘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이렇게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면 아비의 이가 신 것이지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담의 유전 죄”는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도바울이 말하는 성경적 하나님의 생명인 “영적”인 죽음과 인간의 “육적”인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찾는 자가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이 바로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은 무엇이 “산 자”이고 무엇이 “죽은 자” 인가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산 자”는 영생할 수 있는 자요, “죽은 자”는 영생하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인간 예수님의 생명”은 육체의 생명이 다하면 죽되 “영”으로는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므로 “산 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영생할 수 없는 자들이므로 “죽은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예수가 오기 전까지 이 생명에 대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살아서 움직이고 호흡하는 것을 가지고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 자”의 생명의 개념은 영생할 수 있는 존재를 “산 자”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사람을 떠나신 결과 하나님의 영의 양식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신의 양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육신이 죽듯이,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영”의 양식이 없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양식은 바로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의 “말씀”이 없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영적인 공동묘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영”이 “죽은 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죽은 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 8:22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신”의 생명을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들 안에 “육신의 생명”은 존재하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산 자”인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신”의 생명을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의 부활도  죽은 육신의 몸이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신의 생명”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성경은 “죽은 자”가 부활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죽은 육신의 “몸”이 다시 살아난다고 예배드릴 때마다 “사도신경”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산 자”의 말씀을 먹지 못하는 자는 성경에서는 모두 영생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산 자”의 말씀을 먹지 못하므로 이미 영적으로 모두 “죽은 자”들인데 “선”(善) 한 일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선교나 구제와 전도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주교의 성녀 “테레사 수녀”,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세상을 울린 “이 태석 신부” 등 인간의 사랑과 선을 행하는 이들의 “선”(善)함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희생의 베풂인 것이나 그러나 이들의 “사랑과 선”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랑과 선”이 아니며 오직 땅의 소산으로만 베푸는 “윤리 도덕적”인 육신의 “사랑과 선”인 것입니다. 육신의 사랑이요 육신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에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이들의 “사랑과 선”을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그 의로움과 “선”(善)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바꾸어 너희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하나님의 아가페 사랑)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인간의 육신의 “사랑과 선”은 육신의 생명으로 죽어갈 뿐이며 “영의 생명”으로 거듭남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무엇이 유익 한가? 교회 안에서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무슨 선한 일을 하리오, 아무리 충성 봉사 헌신을 한들 “죽은 자”들이 하는 일이란 허공을 치는 신앙생활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선”(善)을 행 할 찌라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에게는 가증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 이니라(고후3:6, 롬 6:11) 사도바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본의 아니게 육신의 일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죽은 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요 “죽은 자”인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한 사탄의 말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사랑을 외치며 불우이웃을 돕고 “선”(善) 한 일을 한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은 일 하는 것 같이 보이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모두가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아가페 사랑)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기독교인들이 하루속히 “죽은 자”의 거짓된 기독교 신학 교리에서 돌아서서  진리의 길을 찾아 오늘날의 “산 자”인 “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해서 그 말씀으로 거듭나야 “죽은 자”들이 부활(거듭)할 수 있고  살아있는 나무는 열매를 맺어도 죽은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과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진리 안으로 돌아오는 자 “죽은 자”가 “산 자”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현제 “죽은 자”들은 현제 살아계신 “실존 예수”의 음성(목소리)을 듣고 그의 말씀을 영접하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음성”이라는 것은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무덤(육체) 속에 있는 자가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것도 육신 속에 죽어있는 “혼적”인 존재가 “영적”인 존재로 살아나는 것을 말하며,  막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 라는 말씀에서 “산 자”란 “영”이 살아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