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단인가?

※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 불교의 극락과 지옥 ※

제라늄A 2021. 12. 28. 21:45

기독교의 근본 사상은 “부활”이요, 불교의 근본 사상은 “해탈”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부활과 해탈”은 어떻게 다른가?  계란에서 부화되어 나오는 병아리를 보고 기독교인들은 “부활”이라고 말을 하고, 불교인들은 “해탈”이라고 말한다 해도 그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활”이나 “해탈”은 용어만 다르지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라 부르고 불교인들이 “부처님”이라 부른다 해서 유일신이 두 신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와 불교는 하나님과 부처님을 자기들의 (神)이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신은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과 “부처님”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 말합니다. 이렇게 “사랑”은 기독교의 전매특허처럼 되었고 “자비”는 불교의 독점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은 기독교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불교의 “자비”가 불교인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둠을 비추는 태양이 고루 비춰주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는 용어만 다를 뿐 “자비”와 “사랑”은 모두의 것이며 어느 특정한 종교나 특별히 한정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의 소유물이 되어버렸고 불교의 “자비”는 불교의 소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기독교 안에는 “사랑”이 없고 “자비”라는 불교 안에는 진정한 “자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 안에만 있고, “자비”는 부처님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진정한 “사랑”은 “부활”된 예수님 안에만 있고 “자비”는 “해탈”된 부처님 안에만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살아있는 “실존 예수님”이 없고, 불교 안에는 살아있는 “실존 부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구름 타고 재림하실 “실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으며 불교인들은 지금도 다시 오실 “실존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 안에 살아있는 “실존 예수님”이 계시고, 불교 안에 살아계신 “실존 부처님”이 계신다면 무엇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예수”를 기다리며 불자들은 무엇 때문에 구름 타고 오실 “재림 미륵불”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불교가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며 기독교는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는 것은 오늘날 불교 안에 “실존 부처”가 없고, 기독교 안에 “실존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실존 부처”가 없고 “실존 예수”가 없다면 어느 누가 “해탈”을 시키고 “부활”은 누가 시킨단 말입니까?  불자들을 “해탈”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반야”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살아있는 “실존 부처님”이시며, 기독교인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신 오늘날의 살아있는 “실존 예수님”뿐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불자들이 “해탈”이 되지 않는 것이며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불자들은 누가 “해탈”을 시키며 기독교인들은 어느 누가 “부활”을 시킨단 말입니까?  그러나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불교나 기독교 안에는 없지만 불교나 기독교 밖에는 지금도 항상 “실존 예수님, 실존 부처님”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불교와 기독교의 틀 속에 갇혀있고 또한 욕심과 탐심 때문에 눈이 멀어 오늘날 살아계신 “실존 부처님”이나 “실존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인들이 “해탈”이 되고 기독교인들이 “부활”이 되려면 하루속히 거짓된 기독교와 거짓된 불교의 틀에서 벗어나 오류 없는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계신 “실존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살아계신 “실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부처면 어떻고 예수면 어떻습니까?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진정한 부처이며 예수가 아닙니까?  부처님의 “자비”는 죽은 영혼을 구원하여 영원한 “반야”의 생명을 주는 것이 진정한 “자비”이며 예수님의 “사랑” 역시 죽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스님들이나 목사님들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살리지 못한다면 불교는 “자비”의 종교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요, 부처님의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사랑”이 메말라 버렸고 불교는 부처님의 “자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는 지금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기독교인들은 “사랑”이 성경 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성경을 읽고 불교인들은 “자비”가 불경 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불경을 열심히 보고 있지만 불경속에서도 성경속에서도 “자비와 사랑”은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과 불자들 안에 있는 욕심 때문에 마음은 화인을 맞았고 눈은 탐욕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무명의 불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지금도 방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6일 천지창조”를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불자들은 “6 바라밀 창조”를 통해서 천상으로 가는 길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불자들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창세기 “6일 창조”와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불교의 “6 바라밀”을 통해서 모두가 “부활”이 되고 “해탈”이 되어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창세기 “6일 창조”는 자세한 설명이 없어 기독교인들이 만물 창조로 이해를 하지만  불경의 “6 바라밀”은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기 때문에 불경의 “6 바라밀”을 깨닫게 되면 성경의 “6일 창조”가 만물 창조가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느 곳에 있으며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런데 “지옥”이 없다면 “천국”도 존재할 수 없고 “천국”이 존재한다면 “지옥”도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옥”에 대하여 보다 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불경”이 말하는 “지옥”은 어떤 곳이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지옥”은 어떤 곳일까?  “불경”에서 말하고 있는 “지옥”은 “악인”들이 죽어서 고통받는 곳을 말하고 성경은 “음부”라고 말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도 “불경”에서 말하는 “지옥”과 같이 “악”을 행한 자들, 즉 죄를 지은 자들이 사후에 고통받는 곳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후는 “육신”이 죽고 난 후의 세계, 즉 “혼”이 “육신”의 몸을 벗은 후의 세계로만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육”의 몸을 벗으면 “혼”의 세계 “귀신”의 세계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하고 고통을 느끼기도 하는 것인데 만일 “육신”이 없다면 무엇이 고통을 받으며 어떻게 고통을 느낀단 말인가?  

이렇게 “육신”을 벗은 후 “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는 “혼”들은 몸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지옥”“육신”에 종노릇하고 있는 “혼”이 “육신” 안에 들어가 살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경”이나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죄를 범한 인간들이 형벌로 인한 고통을 받는 곳인데 “육신”이 없으면 고통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육신”이 없다면 “지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도 모두 같은 “지옥”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각기 다른 것입니다.“지옥”은 사람들이 “전생”에 지은 “업”의 죄과에 따라 어떤 환경 가운데서 어떤 “육신”의 옷을 입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생”“악”을 행한 자는 “현생”“지옥” 같은 삶을 사는 것이요 “전생”“선”을 행한 자는 “현생”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옥도 천국”과 같이 어떤 장소가 아니라 존재적 개념으로 영적인 존재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