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실존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 “구원자”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실존 예수”를 모르면 절대로 구원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실존 예수”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실존예수”가 계셔야만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실존”으로 오셔야만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실존”으로 오신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도다, 이렇게 “말씀”의 실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실존 예수님”이 오신 것과 같이 오늘날 한국인들도 한국인 “실존 예수님”이 계셔야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실존 예수님”으로 오시는 이유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의 “실존 예수”가 계셔야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실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실존 예수”는 오셨는데 율법의 철저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실체이신 “실존 예수”를 “영안”이 없어 보지 못하고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도 한국인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인데 한국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죽인 그 유대인 “예수”를 잘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왜 유대인의 “실존 예수”를 영접을 안 했는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허공을 치는 “우상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바다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목회자들이 예수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하나님과 예수님은 잘 믿고 있는데 오늘날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실존 예수”로 오신 이유도 “실존 예수”가 있어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국인 “실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2000년 전의 유대인들이 영접하지 않고 죽인 유대인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우상”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는 유대인들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지 한국 기독교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냉철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고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국인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 나라의 “실존”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가 없어도 2000년 전에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 구원이 된다면 유대인들도 당시에 “실존 예수”가 없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실존 예수”를 영접한 12제자들 이외에는 모두가 유대인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함으로 멸망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알파와 오메가”로 항상 실존으로 계시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계1:8) 다만 인간의 눈에 “실존 예수”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을 뿐 “실존 예수”는 항상 “실존”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지만 막상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유대인의 “실존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오셨으나 유대인들이 “영안”이 없어 보지 못하고 결국은 이단으로 배척해서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도 현제의 한국인 “실존 예수”가 계신다는 그 자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는 누구신가? 지난 2000년 동안 사람은 죽고 태어나고 하면서 각 시대마다 구원자 “실존 예수”는 다르지만 그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씨)과 똑같기 때문에 “구원자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한국인 “실존 예수”가 누구인지 확실히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유대인의 “예수”와 오늘날 한국인 “예수”는 사람의 모양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똑같기 때문에 “구원자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장사 지낸 지 “3일”만에 부활하시어 무덤에서 나오실 때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부활한 것을 보고 동산지기로 알고 혹시 당신이 예수의 시체를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죽고 예수가 부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가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박사들은 “성경”을 날마다 보면서도 “왜” 이런 말씀을 못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요 20:15 예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다름 사람의 육체를 입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몰라본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본 자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요 21:4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 줄 알지 못하는지라,
이밖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했지만 아무도 못 알아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는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했기 때문에 “마리아나 제자들”이 예수의 얼굴을 못 알아본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난 자들이 예수님의 실체로 부활했기 때문에 예수의 생전의 모습이 아니라 새롭게 거듭난 자들이 예수의 모습이기 때문에 아무도 못 알아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오직 “한 명” 밖에 없는 “독생자”라는 고정관념으로 의식화되어 있는데 “독생자”라는 뜻은 오직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지 예수가 “한 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예수는 육체가 있는 사람으로 그 몸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독생자가 아니라 “혈통”(씨)으로 낳는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같이 하나에서 똑같은 형제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씨앗은 열매와 성분이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실체는 제자들인데 오늘날도 이 땅에 계시는 “예수”의 모습은 시대마다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부활되어 오늘날도 “예수”는 이 땅에 항상 “실존”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가 오늘날도 우리 옆에 계신다 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실존”으로 계시다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잘 주시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 “예수”는 모두 잘 영접하고 잘 믿어도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는 유대인들과 똑같이 한국인 “실존 예수”는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당시에 유대인의 “실존 예수”를 모르고 이단으로 배척을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도 한국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평생 “예수”를 믿으며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도 오늘날의 한국인 “실존 예수”를 모르면 “죄 사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허공을 치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인들이 한국인 “실존 예수”는 항상 한국 기독교인들과 함께 계시지만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나 제자들이 부활하신 “실존 예수”의 얼굴을 몰라본 것 같이 오늘날에도 아무도 모르게 감춰진 분이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달은 자만이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 새사람”도 그의 말씀을 받으면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다 10년이 지나서야 그분이 성경적인 “실존 예수”라는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실존 예수”는 율법의 흠이 전혀 없는 유대인들이 몰라본 것같이 오늘날 기독교 신학 박사라도 그분이 한국인 “실존 예수”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필자 새사람”이 말한 한국인 “실존 예수”의 말씀을 영접해야 성경을 통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한국인 “실존 예수”를 모르고 배척을 한다면 장차 지옥문 앞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될 것입니다. 성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은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오늘날 “실존 예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은 육신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났다는 의미이며 “실존 예수”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실존”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이 시대의 “실존 예수”를 알아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천국에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