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예수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가?

제라늄A 2022. 3. 2. 19:09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오늘날 기독교의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상기의 본문의 말씀을 해석을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부활할 때에는 무덤에 있는 죽은 시체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 있는 사람도 그들과 함께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속으로 끌러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여 하늘로 “휴거” 된다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사도바울이 말한 “부활”의 본질을 완전히 뒤집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지혜로는 해석되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말씀의 씨”(눅8:11)를 통해서 성령의 “계시”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6:13-14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진리의 성령께서 생각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신학교를 나오면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성령이 임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몸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육신의 소욕인 자기 중심적인 “자아”(自我)가 죽어야 성결의 영으로 “부활”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롬1:3-4) “자아”(自我)는 자기 내면의 죄와 허물은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남의 죄와 허물에만 관심을 갖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한 육신의 소욕이 죽지 않고서는 세상에 화평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혈통으로 태어난 육신을 장사 지낸 사람이어야 비로소 예수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은 예수와 같이 자기 십자가를 반드시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시작된 기독교는 “죽고 사는” 종교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죽어야 하나님의 생명인 “영”이 자기 속에 들어오셔서 “신”(神)적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가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함께 더불어 먹는 날이 이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도 본 것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 몸이 아니라 자기 죄의 소욕 “자아”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함께 못 박혔다고 간주하고 다시는 자기 육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제는 자기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있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기의 본문에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같이 예수 안에서 잠을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는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예수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아직 자기 소욕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영적인 잠을 자고 있을 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것이 아니니 그들이 언젠가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기 “자아”가 죽으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아”가 죽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한 자들과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는 말씀입니다.

함께 데리고 오신다는 말씀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수많은 무리를 데리고 오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요 또 “부활”한 모든 형제가 하나님과 하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7:10-11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 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께 말합니다.

요한복음 14:9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은 예수와 오래 동안 지냈으나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눈은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고 그 아들과 아버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신데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라는 말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도 하나이고, 그대와 하나님도 하나이고 따라서 그대와 나 역시 하나입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궤변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는 복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인간이 보기에 언제나 궤변에 불과합니다. 이유는 육신적인 인간들은 언제나 눈과 귀와 마음의 감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데 반하여  예수는 그 마음 너머의 세계를 보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성령 받기 전의 예수의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기독교의 목회자들도 바울이 말한 “부활”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들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해도 성령이 자기 안에 강림하기 전에는 누구나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형편에 처해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로써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언제나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난 자리에는 거짓 목자들이 들어와 가라지를 뿌려서 믿음을 혼란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떠난 후에 믿음이 흔들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미혹되기도 하고, 영적인 잠을 자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믿음을 아주 떠나버리기도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 임해 오시는가?  옛 사람인 “자아”가 죽었을 때 성령은 오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때에 따라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강림하신다는 말씀은 “거듭난 자들”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들의 입으로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옛사람이 “죽은 자”들의 영혼을 먼저 “부활”시키고, 영적인 잠을 자는 자들도 나사로처럼 “부활”시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아직 자기 옛사람 “자아”가 죽지 못한 사람들도 죽게 만들어서 “부활”시키라고 소망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주기도문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늘(예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인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옛사람 “자아”을 죽이는 자기를 부인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너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마16:24)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슬기로운 5 처녀”와 같이 “동정녀 마리아”같은 “정결한 처녀”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택하시고 거처를 삼고 영원히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강림의 실상입니다. 주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것은 육체로 이 땅으로 재림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가 진리의 말씀으로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하면 하늘의 “신랑”이 “정결한 처녀 신부”인 이 땅에 사는 인간에게 강림하신다는 말씀이며, “부활”한다는 말씀은 무덤에 있는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는 말씀이 아니라  거짓된 몸의 “자아”를 죽이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하였고(고전3: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롬8:9) 하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 골로새서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 골로새서 3:1~10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엤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엤 것을 생각하고 땅엤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을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 골로새서 1:26~29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골로새서 4:2~4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 마태복음 6:25~30~34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천국)와 그의 의(생명의 말씀)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