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도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과 연단을 받고 그 시험에서 통과해야 “가나안”에 입성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성경의 “예수”와 전혀 다른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어떤 예수인가? 성경은 “비유 비사”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난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령으로 태어난 분이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태어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3번씩”이나 받은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몸은 성령 하나님이신데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인간과 똑같이 “죄”가 있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죄”가 없다면 절대로 “침례”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육신의 몸은 인간과 똑같기 때문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과 연단을 받고 그 시험에 통과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데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인 “동정녀 마리아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시켜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것은 “비유 비사”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이 “30세” 전에는 “인간의 몸”과 똑같기 때문에 아무 사역도 못하시고 성경에 기록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이 “30”세에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이때 성령의 잉태로 태어나신 것이지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성령의 잉태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라 “비유 비사”로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침례”라는 것은 물에 잠길 때는 죽음을 상징하고 물밖에 올라올 때는 “부활”을 상징함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육신의 “씨”를 받고 태어나 “죄”가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도 받으시고 나이 “30”세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30”세라는 것도 예수님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 광야, 가나안 3일 길”을 통과한 자라는 것을 “비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육신의 “씨”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으로 잉태시켜 태어나신 분이라고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굳게 믿고 있으니 “우상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육신은 다윗의 “씨”를 통해서 나셨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이 다윗의 혈통으로 육신으로 나셨다고 성경은 증거 하고 있고 예수께서도 육신은 육신을 낳고 성령은 성령을 낳는 것이지(요3:6) 육신이 성령을 낳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데도 기독교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시켜 예수를 낳았다고 고집하는 것은 곧 “우상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정녀 마리아” 몸에 성령의 잉태로 예수를 낳았다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를 말하며 “정결한 처녀”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자를 “동정녀 마리아”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만들어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중매한다.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랑”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신부인 정결한 처녀”가 아니면 결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해서 태어나신 분이라고 오늘날까지 “성탄절”을 지키고 있는 것은 곧 “우상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업을 사도바울이 하신 것입니다. 필자도 독자 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신부 “정결한 처녀”로 만들기 위해 매일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 중에 “신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등과 기름(말씀)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가 즉 “정결한 처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부와 성자는 잘 알고 있는데 성령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성령”은 “거룩한 영”을 말하며 거룩한 영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이 하나님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성령 하나님은 비 인격체로 등장되는데 성령은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기름, 혹은 바람 등의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며 진리의 성령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요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하나님 안에 게시므로 성령 하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마리아” 몸에 성령의 잉태했다는 말은 “마리아” 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인간인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이렇게 단계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과정이 있으므로 “여자”의 영적 상태인 인간이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가 되고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면 예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 이때 구원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적 상태인 “정결한 처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잉태했다는 뜻은 말씀으로 성장하여 장성한 예수로 거듭났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잉태를 모르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남자와 여자”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일 창조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는데 동일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수컷과 암컷”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씨”를 소유한 “남자의 씨”를 받아야 하는 “여자”를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남자”는 “씨”를 가지고 열매를 맺는 자이며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야 할 밭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말씀)를 받아서 다시 거듭나야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남자”는 오늘에 오실 “실존 예수”를 뜻 합니다. 하나님 형상의 “여자”는 오늘에 “인간 육체”를 뜻 합니다. 하늘의 “남자 신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된 이 땅의 인간인 “슬기로운 5 처녀”(깨달은 자)에게 임해오는 것입니다(마25 열 처녀 비유) 마태복음 1장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로 낳고 낳고의 따라 42대를 거쳐 예수님이 탄생한 것과 같이 믿음의 후손들을 낳아 오늘날까지 “영적 생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도 아브라함의 족보에 의해서 다윗의 혈통(씨)으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다윗의 혈통으로 낳았다고 하시는데도 오늘날 기독교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수컷”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성령으로 태어나신 분이라면 “왜”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또 임합니까? 성령은 두 번 임하는 것입니까? 천하의 모든 생명체는 “씨”로 의해서 낳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 오직 예수만 “씨”를 받지 않고 태어나셨다는 “성경 문자”를 보고 그렇게 인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비유 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데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탄생을 “문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적인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