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8: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씨”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하기 때문에 “씨”의 본질은 똑같은 것을 낳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실존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말씀을 영접하게 되면 “예수님”과 똑같은 생명을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사람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요1:14) 오신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수”와 같은 “말씀”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죽은 자”라는 것은 육체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을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라고 합니다(마8:22) 때문에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요6:63) 이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은 살아있는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음성 “생명수”와 같은 말씀이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육의 속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의 영혼을 살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성”이라는 것은 “실존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므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은 “실존 예수님”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씀”을 먹을 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주는 “물”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다시 목마르지만 “실존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의 “물”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물”을 마시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목회자들의 말씀의 “물”을 먹고 들어도 다시 목이 갈한 것이며 목회자들이 주는 “물”은 평생 먹어도 목이 마르는 갈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며 죽은 영혼들을 구원해서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같이 “죄”를 사해주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예수”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독교 목회자도 많고 신학박사도 많은데 하나님의 생명으로 실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사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대교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실존 예수님”이 계셨고 또한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직접 받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12제자들은 예수님과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 예수”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비밀들”을 모두 드러내어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살리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오늘날 실존으로 계시는 오늘날 “인간 예수님”입니다. 결국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같이 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살아계신 한국인 “실존 예수님”이 실제로 기독교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밖에는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이단으로 배척하는 살아계신 “실존 예수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실체이신 “인간 실존 예수”가 없다면 기독교인들을 영원히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2000년 전에 오셨던 유대인의 “인간 예수”는 잘 믿으나 오늘날 한국인으로 오신 “인간 예수”는 인정하지도 않고 이단으로 멸시 천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예수”는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로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구원자 “예수”가 반드시 “실존”으로 계셔야만 그 나라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2000년 전에 “구원자”로 오신 유대인의 “실존 예수”를 믿지 않고 이단으로 핍박하며 배척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의 한국인 “실존 예수”를 믿지 않고 이단으로 핍박하며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되고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계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니라, “알파와 오메가”라는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느 때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에 “실존 예수”로 계시기 때문에 그 나라의 사람이 “실존 예수”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계 3:20 볼 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와 같이 “실존 예수님”은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 예수님” 같이 오늘날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그 나라의 “실존 예수님”이 계실 때에 그 나라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필자 새사람”이 외치는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을 깊이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는 독생자로 오직 한분 밖에 없는 “예수”로 알고 있으나 독생자라는 뜻은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지 예수가 한 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므로 “예수”의 부활의 실체가 제자들에게 “예수들”로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죽고 부활하심으로 많은 “예수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같이 한 알의 밀에서 똑같은 많은 “예수들”을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맏아들 “장남”이 되시고 그 많은 형제들은 예수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차남”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은 “어느 시대, 어느 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그 나라의 하나님의 실체이신 “실존 예수”가 계실 때만이 그 나라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지 목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을 못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의 구원은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육신”을 입고 오셔야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요1:14)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깊이 묵상하시고 깨달으셔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