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예수님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

제라늄A 2022. 6. 8. 21:02

요 4:13-1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올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상기의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자들이 한 사람도 해석할 수 없는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자연 만물 창조”가 아니라 땅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로 창조하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만물창조로 이해하는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난해한 말씀입니다. 각 교단마다 수많은 “신학” 주석 책이 있지만 모두가 거짓이며 “비 진리”의 말이라는 것을 먼저 아시고 그 말을 그대로 받으면 그 말씀의 “독”으로 본인의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 본 문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물”이라 해서 다 같은 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생수”를 마시는 자는 영생한다는 뜻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매일 교회라는 “우물 물”을 마시지만 갈증을 면하지 못한 것은 참 진리에 말씀인 “생수”를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매주일 먹어도 갈급한 심령으로 지냈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물”이란 뜻은 오늘날 교회를 “비유”하는데  기독교 목사들의 설교(말씀)는 아무리 마셔도 갈증을 면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씨”가 없는 “신학 비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우물 물”을 길어다 먹는 자마다 매일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 본 문장에서 뜬금없이 예수님께서 “수가 성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니깐 나는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다고 하시며 네가 “다섯 남편”이나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다섯 남편”이 있다는 것은 육신의 남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남편”을 말하는데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창세기 육일 천지창조”를 이해할 때만이 “다섯 남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만물장조로 이해할 때는 모두가 거짓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천지창조”기사는 자연계 창조를 “비유”해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기사인 것입니다.

“땅”의 “육적 존재”인 인간을 “하늘”의 “영적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천지창조”의 깊은 뜻이 있으며 이것이 성경 전체의 핵심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둠의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는 것이 “육일 천지창조”입니다. 그 전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지 못함으로 성경에서는 인간을 물고기나 각종 짐승으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욥 12:7-8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런 것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물고기나 짐승에게 물어보고 가르칠 수 있습니까?  이같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인간을 “물고기 짐승”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므로 창조 첫째 날에서부터 여섯째 날까지 모두 어둠의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 형상으로의 창조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육일 창조”기록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을 상징한 “물고기, 기는 짐승, 들짐승, 육 축, 여자, 남자” 이렇게 여섯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이것을 정리를 한다면 물고기 상태에서 거듭나면 기는 짐승이 되고 기는 짐승이 거듭나면 들짐승이 되고 들짐승이 거듭나면 가축이 되고 가축이 거듭나면 여자가 되고 여자가 거듭나면 남자로 거듭나 6일 창조가 완성되는 것이 “천지창조”입니다. 이것은 “여섯 단계”로 한 단계씩 성장해서 즉 여섯 번 거듭나는 것이 창세기 육일 천지창조입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애급”세상에서 신앙생활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비유”하는데 기독교인들은 뜻도 모르면서 “물고기”그림을 자동차나 집에다 부치는 교인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는 짐승과 들짐승과 가축”은 “광야”를 “비유”합니다.

그리고 “여자(인간)와 남자(예수)”는 “가나안”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여자”가 거듭나 “남자”가 되는데 “여자와 남자”는 동일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암컷(네게 바)과 수컷(자칼)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인간은 “남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예수”에게 “씨”를 받아 잉태를 해서 해산을 해야 “남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모두 동일한 사람 같지만 “남자”는 “씨”를 가지고 열매를 맺게 하는 자이며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야 할 “밭”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같이 인간인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가 성 여인, 동정녀 마리아, 슬기로운 5 처녀, 정결한 처녀”나 똑같은 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말하며 “여자”가 낳은 자중에 제일 큰 자 “세례 요한”과 같은 영적 존재로서 이들이 하늘의 “신랑”을 만나 “씨”를 받으면 “실존 예수”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6일 천지 창조”입니다. 창조라는 것은 “6번”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6일 천지창조”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성되기 까지가 “6일 천지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 말씀에 “수가 성 여인”은 “6시”(요4:6)에 온 여자로 “가나 혼인잔치”에 “여섯 독”에 물을 아구까지 채운 여인입니다. 이렇게 “수가 성 여인”은 세마포가 준비된 “정결한 처녀”로 지금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나고 있는 장면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다고 하면서 네가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지금까지 찾고 기다리는 진장한 “영적인 남편”은 지금 우물가 앞에 계신 “실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기독교 신학 박사라도 처음 대하는 말씀이라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 말씀의 “수가 성 여인”이 “다섯 남편”이 있었다는 것은 마태복음 25장에 기름(말씀)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와 같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인간의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들이 하늘의 “신랑”과 이 땅의 “신부”와 혼인을 하면 한 몸을 이루어 이 땅의 인간이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남으로 창세기 “6일 천지창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자 성전 몸 안에는 하나님이 “안식”하시면 “천국”은 내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탄생을 “동정녀마리아” 몸에서 예수가 탄생했다고 성탄절을 지키고 있으니 곧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은 “천지창조”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이 “수가 성 여인”을 “다섯 남편”이 있다 해서 창녀로 해석하는 것은 모두가 거짓된 “비 진리”를 남발해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모두 죽이는 형국입니다. 이와 같이 본 문장에 나오는 “수가 성 여인”이 참 목자인 “실존 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할 때 인간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장면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