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죽음,부활)

거듭난 자가 아니면 누가 “예수”인지 모른다.

제라늄A 2022. 7. 24. 21:04

“성경”의 모든 말씀은 “안팎”(계5:1)으로 오묘하게 깊이 숨겨진 “비밀”의 말씀임으로 “영안”이 열리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만 “비유”로 감춰놓은 “비밀”의 말씀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나는 주가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호언장담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위하여 진정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는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한다”라는 말씀의 뜻은 “닭이 울기 전”이란? 날이 밝기 전이란 뜻으로 아직은 “밤”(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날이 밝아 “아침”(빛)의 존재가 되기 전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부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6일 창조”에서 하루씩 지날 때마다 매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저녁”(어둠)의 존재가 “아침”(빛)의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를 “3번” 부인하는 것은 “아침”(빛)의 존재가 되지못한 “저녁”(어둠)의 존재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부인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3번” 부인한다는 말은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회에서 “목사”에게 받은 “비 진리 신학” 교리로 양육을 받은 “육신의 존재”가 죽고 거듭나야 “광야”로 나가는데 “광야”에서 또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징계와 연단”을 받고 “혼적 존재”가 죽어야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가나안”에서 또 자신의 “십자가”로 자신이 죽어야 마지막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부활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종교생활하는 “애급”의 존재는 “홍해” 바다 말씀의 바다에 빠져서 “한번”죽고 부활해야 되고 “광야”로 나와서는 “요단강”에서 말씀세례로 “두 번” 빠져 죽고 부활해야 되고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십자가”로 “세 번”죽고 부활해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예수께서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오래된 예루살렘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만에 짓는다(요2:19-22)고 말씀하신 이유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잘못된 “비 진리”로 지은 종교지도자들 몸의 성전을 헐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3일”의 의미가 차원적 중요한 영적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아직 “아침”(빛)이 되지 못한 “저녁”(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실존 예수님”은 부모 형제들도 전혀 “구원자 예수”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진리를 탐구하면서 필자의 글을 보고 이 말씀이 진짜라고 확신하고 매일 들어와서 구독하지만 얼마 못 가서 다 떠나는 것은 “베드로”와 같이 아직 “아침”의 존재가 되지못한 “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로 “아침”(빛)의 존재로 거듭나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듯이(고전3:12) “실존 예수”를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실망을 하며 수석 제자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를 부인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지만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진리를 찾아다니는 기독교인들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상용어로 기록되었으나 모두가 “안팎”으로 봉한 말씀임으로 “일곱 때”만에 부활한 오늘날 “실존 예수”가 아니면 아무도 “성경”을 열을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을 해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비 진리 신학”으로 신앙생활하시는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세상 기독교회 “애급”에서 “출애굽”(탈출)해서 “광야”로 나와서 징계와 연단의 훈련을 받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오늘날 “실존 예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거듭날 때 “실존 예수”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같이 기독교인들은 “가나안”에만 계신 오늘날의 “실존 예수”를 만나야 “혼의 존재”가 “영의 존재”로 부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 유익이나 이권을 위해서는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을 “베드로”와 같이 “3번”이 아니라 “30번”도 부인하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녁”(어둠)의 존재는 “아침”(빛)의 존재인 “실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자신이 예수와 같이 장성한 자로 성장하기 전에는 “베드로”와 똑같이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