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8:10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유대인)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유대인)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진리)를 주고 또 흰 돌(예수)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말씀)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한다 해도 성경에 기록된 안팎(계5:1)으로 기록된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예수님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기독교인들 주위에서는 손쉽게 “실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그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위에서 쉽게 “실존 예수님”을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은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과 맹목적으로 기복신앙을 하는 자들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지 “실존 예수”를 찾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존 예수님”이 이 세상 어디인가 계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 볼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는 이 세상에는 없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찾지를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실존 예수”는 현제 이 세상에 있는데 찾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롬 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예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는 성경에 기록된 2000년 전 유대인들을 구원하고자 오신 그 예수는 믿지만 현제 기독교인들 곁에 계신 “실존 예수”는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구름 타고 오실 “재림 예수”는 잘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성경에 기록된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믿는 것이지 현제 한국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오늘날 “실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며 알지도 못하며 현제 계신다 해도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에도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유대인의 “실존 예수”를 유대인들도 몰랐었고 구원자라고 했어도 유대인들은 그 “실존 예수”를 안 믿고 오히려 이단으로 배척했고 결국은 “십자가”에 죽이 기 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인 12제자만 “실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현제 계신 “실존 예수”도 한국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그 예수를 믿지 않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을 구원하고자 오신 “실존 예수”를 유대인들도 이단으로 배척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오늘날의 한국인 “실존 예수”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단으로 배척을 하는 것 공통점이 있지 않습니까? 현제 구원자 “실존 예수”가 없다면 유대인들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인간 실존 예수님”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매, 이렇게 성경은 분명히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인간으로 오셔야만 기독교인들을 “구원”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든 “실존 예수”가 없으면 구원은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든 항상 하나님께서는 실존으로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현제 한국인 “실존 예수”가 계실 때 그분의 “음성”을 직접들을 때 “구원”이 성립되는 것이지 그분이 없으면 누가 구원을 시키겠습니까? “실존 예수”가 없어도 2000년 전의 유대인의 예수를 그냥 믿는다고 구원이 이루어집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직접 구원을 시키지 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실존 예수”가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현제 “실존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실존 예수”는 2000년 전 당시에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지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해서 그들이 십자가에 죽인 성경의 기록된 예수를 믿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만든 “우상 예수”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만든 “우상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에서는 건강과 재물과 평안의 축복을 주시고 죽어서는 반드시 천국가게 해달라고 떼쓰고 심지어는 미리 선점해 놓았으니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사는 욕심 많은 엉터리 기독교인들이 바로 “소경”이요 눈앞에 계시는 “실존 예수님”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으니 멀리 있는 데서 찾는 것이요, “십자가”를 모르니 세상 것을 찾는 것입니다. 사실 눈 뜬 소경이 아무리 보인다고 하고 귀머거리가 아무리 듣는 다고 떠벌려도 그것이 허풍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듣는 자와 보이는 자는 쉽게 “실존 예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은 절대 문제가 없다고 우기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길을 몰라 방황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니 인간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천국 가고 싶어서, 세상의 행복을 찾고자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의 가면을 뒤집어쓴 것뿐이면서도 아니라고 우기거나 “소경”이라 모르고 그릇된 길을 가면서도 아니라고 우기는 데 있습니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떠나라고 소리칩니다. 자신은 떳떳한 사람이라고 변명을 일삼는 것입니다. 세상 이야기는 모두 죄악임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항상 칭찬만 듣던 자에게 죄를 들이대니 미움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라 목사들을 흉내 내다보니 십자가의 고난과 멸시를 전혀 모르고 생소하게 느껴져 오히려 “십자가”를 말하는 자를 정죄하는 오류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손을 털면서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추종하는 교단들, 즉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등의 창시자는 사실 진짜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인물들입니다. 요한 웨슬레, 칼빈, 마틴 루터, 마저도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자는 끊임없이 이들 개혁 신앙 자들을 정죄하고 변화 없는 앵무새 신앙만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설교, 똑같은 기도, 똑같은 예배형식,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갇힌 예배가 아닌 “산 예배”를 하게 됩니다.
몸으로 보여지는 “산 예배” 매 순간 순간 어느 때고 합니다. “은밀한 예배”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기쁜 것입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아도 하나님이 예배를 내 안에서 하시기에 기쁨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에게 선택된 자는 이들을 볼 수 있고 조용한 가운데서 “전도”가 됩니다. 기독교인들의 노력으로 전도된 자는 물거품으로 변하지만 실제 계신 예수님의 선택은 영원히 변화가 없습니다.“실존 예수”는 분명히 기독교인들 주위에 예전에도 계셨고 오늘날 현제에도 계시며 이다음에도 계시며 기독교인들 주위에는 항상 “실존”으로 계십니다(계1:8) 그러나 “실존 예수”님은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함께 계시면서도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렇게 오늘날 “실존 예수님”은 기독교인들 주위에서 항상 “실존”으로 계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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