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52-59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 장이가 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는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말하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조상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너는 네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이 말씀을 이해를 못 하고 “동문서답”하며 죽음을 모두 “육신의 죽음”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을 통해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예배드릴 때마다 “사도신경” 고백을 하는 자들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죽은 육신의 몸”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라 매년마다 “부활절”을 지키고 있으나 성경적 부활은 “죽은 몸”의 부활이 아니라 “혼적 존재”가 “영적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생명은 육신의 몸이 아니라 육신은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혼”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생명”인 “영”이 영원히 산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영적인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실존예수님”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보실 때는 분명히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귀신이 들린 것이지만 유대인들의 기준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의 신앙 기준으로 보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귀신이 들린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나는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하려는 것인데 너희가 나를 모르고 무시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내 대신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는 곧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오늘날의 계신 “실존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영접하면 반드시 살아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내가 올 때를 기다리며 보기를 원했다는 것은 아브라함도 예수님이 오셔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14대, 바벨론부터 그리스도 까지 14대, 총 42대를 거쳐서 예수로 탄생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무슨 말이지 알 수 없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탄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처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이 잉태되어 예수가 태어났다”라고, “성경 문자”를 그대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구약 모두가 “비유 비사”로 기록된 말씀을 문자로 보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과오를 범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 “신학”의 현실입니다. 이같이 보잘것 없고 천한 예수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하되 네가 아직 나이가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육신은 태어 난지 3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즉 성령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동문서답”하기 때문에 귀신 들린 자라고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도 모르고 영의 세계도 모르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황당하게 들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하였고 예수님은 할 수 없이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을 피하여 성전을 떠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을 상상을 하시면서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입장을 유대인들의 입장에 서서 잘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필자가 매일 같이 “실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 앞에 “실존 예수님”이 계셔도 상기의 본문 말씀같이 유대인들과 똑같이 “동문서답”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오늘날 기독교 신학 박사라도 “동문서답”하기는 똑같은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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