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성경을 깨닫는 자가“구원”을 받는다.

제라늄A 2022. 12. 28. 18:56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을 했고 우리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는 자들은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 119:144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깨닫게”하려 하심입니다. “깨달아야”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성경을 “깨닫지”못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처럼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일이 됩니다(롬10:2-3)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말씀을 가까이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참 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서 자기 대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목적은  기독교목사의 일방적인 설교와 가르침이 너무 수준이 낮고 거짓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이십니다. 자신이 “깨닫는”것신(神)의 음성을 직접들을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귀를 가지지 못하면 아무리 배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깨닫지”못하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깨닫지”못하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오늘날 거짓목사와 교인들을 짐승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2)하였고, 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하였습니다. 사람과 짐승과의 차이는 깨달음여부에서 구분이 됩니다. 짐승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사람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짐승과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과 짐승을 구분 지우실 때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생기를 받은 사람은 성령이 임재하셔서 동거하시면서 가르치실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목사에게 배워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모셔야 할 성령의 자리에 기독교목사의 설교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짐승의 특성을 들어 거짓목사들을 질책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지”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들어가서 거짓된 다른 교훈을 가르치면서 거짓목사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서로 섬기면서 사랑하라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빛 앞에서는 그 무지가 드러나고 맙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실상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짐승처럼 우매한 기독교목사들은 자기 악한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싫어 세상에 오신 생명의 빛 오늘날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아 “깨닫지”못하면서도 주의 종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려 (신학교)을 넘어 교회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목사의 소리에만 귀를 고정시킴으로 성령의 가르침을 전혀 듣지 못했기에 거짓목사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위가 우매함인데도 오히려 목사들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49: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에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  욥처럼 자기의 우매함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요 5:25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사람에게 듣고 배웠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 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아침마다 듣는 귀를 “깨닫게해주시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예수님은 빛을 싫어하여 “깨닫지못하는 자들에게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13:13)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깨달음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마13:23) 신앙의 농사는 말씀을 읽고 성령에게 듣고 깨달아알면서 결실합니다.“깨닫는 사람”은 순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농사도 식물처럼 생명을 가진 “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눅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씨를 뿌리는 자가 없으면 한 알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되 하늘에서 비”(말씀)가 내려야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결실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일반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영혼의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씀”의 하늘에서 내리는 “비”(말씀)를 맞아야 싹이 트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힙니다. 저절로 농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말씀을 “깨우쳐”줄 성령이 함께 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목자라고 다 성령이 함께 한 목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먼저 “깨닫는 자라야 합니다.“깨닫는 자”가 깨달은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깨닫지못한 자가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절대로 잉태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깨닫도록”가르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가 비밀스러운 말씀들을 비추실 때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안에서 가르치시는 성령의 기름 부 음을 강조하십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말씀을 가르쳐서 “깨닫게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모해야 할 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입니다. 기름 부음이 없으면 “깨닫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매한 오늘날 기독교 거짓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들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은 절대로 “깨닫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가르치심보다 훨씬 보암 직도 하고 먹음 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만 한 선악과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목사들의 설교말씀인 “선악과”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깊이 읽고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자신의 몸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