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1-4 부(富)한 자들아 들으라,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말씀)은 썩었고 너희 옷(말씀)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믿음)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씨를 뿌린 농부의 소망은 추수 때에 열매를 맺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 농부가 삯을 못 받으니 그 한탄소리가 만군의 주의 귓전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안팎”(계5:1)으로“비유비사”로 완벽하게 감춰 놓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무슨 말씀인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한 자들은 세상 재물의 부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부자를 말하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마19: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실 때에 항상 “비유”를 베풀어 말씀하시지 비유가 아니면 한마디 말씀도 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13:34) 이것은 사탄마귀를 잡기 위한 계략이며 알곡 백성들만 구원하시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막 4:11-1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육신적인 차원에서 자기 주관을 갖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듣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이런 태도는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어가는 첩경입니다. 예수께서 어리석은 자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말씀)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라고 하셨습니다(눅12:20-21)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물이 실존예수에게 받은 것이냐 기독교목사에게 받은 것이냐를 분별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요, 세상재물에 탐닉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늘에 속한 말을 하고“땅”에 속한 사람은 땅에 속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 기독교회가 그렇습니다.
마 19:21-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은 말씀입니다. 어떤 부자가 예수께 나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 고 묻는 말에 예수님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 나온 부자는 이 말씀을 듣고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네게 있는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네가 가지고 있는 세상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씀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는 것들 곧 잘못 알고 있는 기독교의 비 진리의 말씀과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팔아) 네 안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난(갈급)한 자에게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 우니라, 이 말씀도 잘못된 기독교 비 진리로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신앙의 부자들 특히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낙타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짐을 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돈)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설교)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55:2) 진리를 찾아 떠나라는 것입니다. 눅 16:19-2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상기의 말씀을 간략히 요약을 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교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세상재물의 부자가 아니라 기독교 비 진리의 말씀으로 형성된 신앙의 부자들 즉 오늘날 말씀의 부자인 목회자와 교인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진화론적 창조이므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말씀의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이단으로 배척하고 영접하지 않던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그 예수를 모두 영접하고 열심히 믿고 그 예수님께서 비유로 주신 복음에 만취해서 육신의 눈으로 문자로 비 진리의 말씀으로 배불리 안주하는 오늘날의 말씀의 부자 기독교회 교회 상을 상징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는 그 비유복음에 만족할 수 없는 심령이 가난한 자 즉 말씀의 갈증을 느끼는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말씀에 부족함을 느끼므로 진리의 새 말씀을 찾아 이 교회 저 교회 문전걸식하는 고달픈 구도자인 거지 나사로와 같이 이것이 곧 동산의 각종 나무열매를 임으로 먹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결국 비유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길 잃은 양이 바로 참 목자의 음성을 듣는 때인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결국은 거짓된 것을 버리고 진리를 만나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뜻함이 아니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연명 하던 자가 죽고(버리고) 진리의 새 말씀에서 다시 살게 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사로가 죽은 것은 자신이 소유했던 거짓된 말씀에서 죽고 진리의 새 말씀에서 다시 살게 된 것을 뜻하기 때문에 그가 죽어서 아브라함(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나사로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구원받아 천국에 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는 그와 반대로. 비 진리의 거짓된 죽은 복음에 만족해서 날마다 호화롭게 배나 더 교인들을 지옥자식들을 만드는 연회를 베풀어 평안하게 안주한 자이므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진리를 깨닫지 못한 말씀의 부자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야말로 사후에 그가 심판을 받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마8:12)가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나 교인들은 말씀의 이미 부한 자들이 되었으므로 본문장의 부한 자들아 들으라, 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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