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육일 창조(六日創造)와 여섯 가지의 색
성경은 땅에 속한 혼적 존재가 하늘에 속한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는데 육일(여섯째 날), 즉 여섯 번(과정) 거듭나야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된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부처님은 불경을 통해서 무명(無明)의 중생들이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려면 육바라밀(六波羅蜜)의 과정을 거쳐 여섯 번 해탈(解脫)해야 성불(成佛)하여 부처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혼적인 사후 세계의 여섯가지색 곧 흰색, 회색, 노란색, 황금색, 푸른색, 보라색은 성경에 육일 창조와 불경의 육바라밀(六波羅蜜)과 같이 하나님께서 땅에 속한 육적 존재(첫 아담)를하늘에 속한 영적 존재(둘째 아담)로 창조하시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경에 기록되어 있는 육바라밀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육일 창조는 동일하며 따라서 성불하신 부처님이나 부활하신 예수님도 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동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생명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종교만이 부활의 종교이며 해탈의 종교라 주장하며 자기 종교만이 참이며 진실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영적인 비밀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지금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라는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목사님이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만 믿고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으며 불자들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지옥계(地獄界)라는 것과 또한 자신의 존재가 지옥계(地獄界)의 미물(微物)이라는 것도 모르고 중생이 곧 부처라는 스님의 말을 믿고 모두 부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간계(中間界)에 존재하는 여섯 가지 색(六色)과 창세기의 육일(六日) 창조와 불경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은 모두 하나님께서 땅(육신)에 속한 존재들을 하늘(영)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는 과정을 비유(譬喩)와 화두(話頭)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는 기간이나 불자들이 부처님으로 태어나는 기간은 수천 년 혹은 수억 겁(劫) 이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님들이나 스님들이 이러한 구원과 영생의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거짓 증거를 하고 있으며 스님들은 불자들에게 중생이 곧 부처라고 속이며 기복(祈福)만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거짓 목자와 거짓 스님들 때문에 천국으로 가는 길이나 성불(成佛)의 길이 모두 막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거짓 목자와 교리(敎理)의 틀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참 목자를 찾아야 하며 불자들은 거짓 스님들과 각종 제도(制度)와 의식(儀式)의 틀에서 벗어나 오늘날 성불(成佛)하신 생불(生佛)을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참 목자나 생불(生佛)을 찾아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부처가 된다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輪廻 )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영혼들이 사후(死後) 세계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생각을 날마다 깨끗이 씻고 흰색의 존재가 회색과 노랑색과 황금색과 푸른색으로 거듭나서 보라색의 존재가 되기까지 열심히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을 해야 한다. 때문에 혼령들의 세계에 들어간 영혼들이 내생에 바로 태어나지 않고 일정한 기간 동안 혼령들의 세계에 머물며 인도자와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여러 수행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은 영혼들이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서 자신의 영적 수준과 차원에 따라 인도자나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輪廻)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사후의 세계에서 자기 수준에 따른 가르침과 수행의 과정이 모두 끝나면 마스터 급 지도자인 보라색 스승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그 동안 수행한 결과에 따른 심문(審問)을 받게 된다. 그리고 보라색 지도자들은 심판대에 서 있는 영혼들이 영혼의 세계에 수행한 성적과 전생에 쌓아 놓은 선악간의 업을 근거로 하여 등급을 분류하여 태어나는 환경과 영혼의 수준에 맞는 육체 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내생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생에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혼의 세계에서는 육신이 없어 정신적인 고통만 받지만 다시 육신의 몸을 입고 태어나면 그때부터 육신의 고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신적인 고통의 강도(强度)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의 강도는 전생에 자신이 지은 업(業), 즉 생전에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생에 선업(善業)을 쌓은 사람은 그 선업에 따라 환경이 좋은 가정에서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악업(惡業)을 쌓은 사람은 현생에 열악(劣惡)한 환경에 태어나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내생(來生)에 태어나 받게 되는 화(禍)와 복(福)은 전생(前生)에 자신이 행한 업(業)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만사(萬事)를 인과응보(因果應報), 즉 사람마다 자신이 행한 대로 거두도록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계속=
원문 출처 (베레쉬트 서원) 글 : 道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