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地獄)에서 천국(天國)까지

08, 지옥(地獄)에서 천국(天國)까지(1번) 육바라밀(六波羅蜜)

제라늄A 2023. 12. 25. 11:57

지옥(地獄)에서 천국(天國)까지(1번)

불교의 육계와 육바라밀(六波羅蜜)

육계(六界)와 육바라밀(六波羅蜜)은 지옥(地獄)에서 천국(天國)까지 가는 길과 그 과정(過程)을  말씀하고 있다. 즉 무명(無明)의 중생이 지옥계(地獄界)에서 나와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계를(人間界) 거쳐 천상계(天上界)로 올라가 부처가 되는 길과 그 과정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계에 살고 있는 중생이 천국으로 들어가 부처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바라밀(六波羅蜜)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육일(六日) 창조(創造)와 동일하게 (혼적 존재)이 말씀을 통해 하늘(영적 존재)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육계(六界)와 육바라밀(六波羅蜜) 속에 감추어진 화두(話頭)의 비밀을 말씀드리겠다.

첫째 길 : 지옥계(地獄界)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 - 보시(布施 )

지옥(地獄)이라는 단어를 문헌에서 찾아보면 "지하에 있는 감옥, 고통이 가득한 세계, 현생에 악업을 행한 자들이 사후에 고통받는 곳" 등으로 나타나 있다. 때문에 오늘날 불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지옥(地獄)이 현생에서 죄를 범한 사람들이 죽은 후에 들어가서 고통받는 곳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즉 지옥은 뜨거운 불가마속과 같은 곳이나 혹은 귀신들이나 독사 같은 뱀들로부터 고통받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지옥을 장소적 개념보다 존재적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생에서 욕심으로 지은 악업으로 인해 받는 고통이 너무 괴롭고 힘이 들어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자는 이 세상이 지옥이며 전생에 쌓은 선업으로 복을 받아 고통 없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는 이 세상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옥이나 천국은 어느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옥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에 종노릇하며 온갖 수모를 당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옥(地獄)은 육신으로 인한 욕심 때문에 발생되는 고통으로 항상 괴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들을 말하고 있으며 천국은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항상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성자(聖者)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옥(地獄)과 천국은 죽은 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생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은 천국이 어떤 존재인지 지옥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본래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만든(地水火風) 질그릇으로 지옥이란 땅(흙)에 갇혀 있다는 말로 곧 영혼이 몸(땅)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옥은 자신의 영혼이 몸의 집착(執着) 때문에 몸에 노예가 되어 종처럼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해탈(解脫)이란 몸 안에 갇혀 있는 영혼이 몸의 집착(執着)에서 벗어나 자유자재(自由自在)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생의 지옥은 전생에서 지은 악업(惡業)과 현생에서 짓고 있는 악업으로 인하여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말한다. 

이런 자들이 현생에서 선업을 쌓아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악업만 쌓다가 죽는다면 내생(來生)에 더 깊은 지옥으로 떨어져 더 큰 고통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선업을 쌓지 않아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업만 쌓으며 살다가 죽는 영혼은 내생에 더 열악(劣惡)한 환경에서 지체 부자유자의 몸을 갖고 태어나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생에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육바라밀(六波羅蜜)에 따라 보시(布施)행, 즉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자들은 지옥계에서 벗어나 아귀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지옥은 욕심 때문에 육신의 고통과 번뇌망상의(煩惱妄想)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말하며 천국(天國)은 현생에서 육바라밀을(六波羅蜜) 통해서 해탈하여 성불(成佛)한 부처님을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지옥(地獄)은 사후에 고통받는 어느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옥(地獄)도 다 같은 지옥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와 차원에 따라 각기 다른 지옥으로 구분이 된다. 이렇게 지옥은 사람들이 지은 죄의 양(量)과 질(質)에 따라 상 지옥, 중 지옥, 하 지옥으로 구별되어 있다. 즉 하 지옥은 태어날 때 기형아나 저능아 혹은 축생이나 미물로 태어나 평생을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며, 중 지옥는 종이나 노동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평생을 육신적인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자들을 말하며, 상 지옥은 정신적인 고통은 받으나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말한다.

현생에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전생에서 탐, 진, 치(貪, 瞋, 癡)로 인한 욕심 때문에 악업을 쌓고 살다가 이생에 다시 태어난 자들이다. 이렇게 중생들이 전생(前生)에 지은 죄업(罪業)은 현생에서 받고 현생에서 지은 악업은 내생(來生)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옥계는 중생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삼독(三毒) 즉 탐(), 진(), 치()의 척도(尺度)에 따라 결정되어지는데 탐, 진, 치(貪,瞋,)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심과 분 냄과 어리석음을 말한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움과 고통을 받는 근본적 원인은 모두가 삼독(三毒)인 탐, 진, 치(貪, 瞋, ) 때문이다. 

불자들이 흔히 말하는 삼재(三災)는 탐, 진, 치(貪, 瞋, )로 인해 발생된 모든 재앙(災殃)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탐, 진, 치(貪, 瞋, )로 인한 삼재(三災)의 고통 속에서 지옥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탐, 진, 치(貪, 瞋, )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불자들이 악업(惡業)의 근원이 되는 탐, 진, 치(貪, 瞋, )를 분명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을 말하며 ()이라 사람의 분냄을 말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욕심이 생겨나고 혈기가 일어나는가 하면 어리석고 무지한 치()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욕심과 분을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탐()과 진()의 근원이 바로 치() 곧 어리석음인 것이다. 이렇게 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어리석음은 인간의 무지(無知), 즉 진리 곧 부처님의 말씀을 모르고 있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부처님은 진리를 모르는 중생들을 무명(無明)의 중생(衆生)이라 말씀하시는데, 무명(無明)이란 빛이 없다는 뜻이며 빛이 없다는 것은 곧 부처님의 진리(眞理)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지옥이란 진리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악업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중생들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無明)의 중생들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탐, 진, 치(貪, 瞋, )를 버리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불우한 이웃에게 베푸는 보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자비심이란 상대방을 이해하고 감싸며 긍휼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다. 이렇게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취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항상 베풀며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전생에서 지은 악업은 현생에서 선업(善業)으로 갚아야만 자신이 지은 죄업(罪業)들이 모두 사(赦)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시(布施)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중생들이 보시(布施)를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욕심을 가지고 남의 것을 취하고 살았지 베풀며 살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보시(布施)를 행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헌신과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불자들이지만 지금도 불쌍한 이웃이나 수행자들을 찾아서 보시(布施)를 행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이렇게 지옥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고통받는 이웃을 돌보며 보시(布施)를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첫 단계이며 첫 관문인 보시를 끊임 없이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보시(布施)는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하여 욕심을 가지고 행하는 보시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이나 사심(私心)이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뜻에 따라 진실한 마음으로 가난한 이웃들이나 수행자들에게 보시를 행하면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벗어나 아귀계(餓鬼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길 : 아귀계(餓鬼界)

아귀에서 벗어나는 길 - 지계(持戒)

아귀계(餓鬼界)란 어떤 세계를 말하며 아귀란 무슨 뜻일까? 아귀(餓鬼)란 단어의 뜻은 "굶주려 음식물을 찾는자, 기갈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자, 음식에 걸신들린 자" 등의 의미이다. 며칠 굶은 사람이 미친 듯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면 아귀 같이 먹는다는 말을 한다. 이렇게 먹을 것을 탐(貪)하는 자, 즉 식탐이 많은 자들을 가리켜 아귀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옥계에서 보시행(布施行)을 마치고 아귀계(餓鬼界)로 나온 자들이 다시 식탐(食貪)을 한다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귀(餓鬼)의 진정한 뜻은 육신의 양식에 굶주린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진리에 굶주린 자, 즉 부처님의 말씀에 갈급한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지옥에서 아귀계(餓鬼界)로 나온 것은 육신의 양식이 없어 나온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찾아 나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귀계에 있는 자들은 육신의 양식에 굶주린 자들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이 없어 걸신들린 귀신처럼 갈급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찾아 헤매는 자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귀계(餓鬼界)는 지옥에서 벗어난 자들이 천상계(天上界)에 오르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수행(修行)하는 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귀(餓鬼)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양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지키라고 주시는 계율(戒律)인 것이다. 

때문에 아귀(餓鬼)들이 축생계(畜生界)로 나아가려면 부처님의 계율(戒律)을 받아 열심히 정진수행(精進修行)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계율(戒律)에 따라 강도 높은 훈련과 연단을 받지 않으면 지옥계에서 탐(), 진(), 치()로 굳어진 마음이 절대로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귀들은 삼독(三毒)인 탐(), 진(), 치( )를 날마다 버리고 부처님의 계율에 따라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아귀계(餓鬼界)에서 축생계(畜生界)로 나가는 길을 지계(持)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귀들은 오직 부처님의 계율(戒律)을 받아서 지키며 부처님의 계율에 따라 끊임없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지키라는 계율(戒律) 곧 십계(十戒) 속에 감추어져 있는 화두(話頭)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십계를 세상의 윤리(倫理)나 도덕(道德) 정도로 알고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아귀계(餓鬼界)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수행을 해도 축생계(畜生界)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오늘날 불자들이 부처님이 지키라고 주신 십계명의 뜻을 올바로 알고 지킨다면 축생계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천상에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귀계(餓鬼界)로 나온 수행자들이 십계를 올바로 지키려면 먼저 십계 속에 담겨 있는 화두(話頭)의 비밀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십계 속에 감추어져 있는 화두(話頭)의 비일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계속=  

원문 출처 (베레쉬트 서원)  글 : 道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