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너희는 거룩한 산제사의 제물을 드리라(필독 말씀)

제라늄A 2024. 7. 5. 12:18

로마서 12:1~2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된 거룩한 삶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예배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의 제물은 진리와 성령의 의해서 거룩하게 변화된 너희 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산이나 수입의 일부를 헌금으로 드리는 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된 자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재물이란 세상의 (재물)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면 그것을 재물이라 하고, 또 제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몸을 드리는 것을 제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성전 된 몸에 저장해서 그 말씀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드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의 십일조인 헌금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득의 십일조로 드리는 헌금은 땅의 소산으로 드린 가인의 과 똑같은 것입니다. 땅의 소산이란 어두움에서 육신적인 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유대인이나 오늘날 기독교인이 드리는 제사를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제물은 하늘의 제물 곧 아벨의 (진정) 기름(신령)으로 변화를 받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아벨이 드린 제물은 (진정) 기름(신령)으로 드렸는데 (예수)은 진리를 상징하며 곧 진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에 진정과 신령으로 아벨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진정과 신령이란 말씀의뜻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거룩하게 된 너희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십일조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온전한 십일조가 으로 생각하며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말라기 3:10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통해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보아라,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시험해 보아라, 오늘날 목회자들이 문자적인 해석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우롱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거듭난 장성한 자들 하나님의 성전 된 몸 안에 즉 창고(몸)에 하나님의 양식(말씀)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채우는 이유는 갈급한 심경들 고아과부나그네를 위하여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자들에게 영의 양식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전 된 집인 창고에다 양식을 쌓으라는 것입니다(신14:28~29) 이 말씀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6항아리(말씀)을 아구까지 채우라는 것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항아리는 사람의 몸을 비유하며 6(6일 창조) 거듭나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장성한 자들 몸 안에 있는 말씀으로 말씀을 사모하는 갈급해하는 이교회 저 교회 문전걸식하며 거지나사로와 같은 영적 고아과부나그네 즉 영적부모와 남편과 본향이 없는 자들에게 배불리 먹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이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드릴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재물은 안 받으시고 아벨이 드린 제물만 받으시는 것을 알고 심히 분개하고 있는데 가인에게는 아벨과 같이 기름과 양이 없고 자격도 없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장자인 첫 사람 아담이며 겉 사람(육)을 상징하는 것이며 아벨은 첫 아담이 거듭난 둘째아담(예수)을 상징하고 속사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유대인들이 하늘에 속한 예수(아들)를 죽인 것은 이미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창세기의 예언된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양과 기름은 아벨이나 예수님같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만 소유할 수 있고, 가인은 땅의 소산밖에 없었던 것은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하루속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성장해서 장성한 자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드리는 십일조헌금은 가인의 재물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외식과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 이니라, 헛된 재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책망하시면서 제발 누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무수한 재물() 즉 각종 수많은 헌금의 종류로 축복을 받기 위해 교회강대상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물이란 뜻은 돈이 아니라, 내 안에 소유한 하나님의 말씀을 재물이라고 하고, 또 제물을 바친다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변화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재물을 소유해야 하는데 땅에 속한 재물()을 드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린 헌금 위에 목회자는 손을 올려놓고 하나님께 재물()을 드렸으니 이들에게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재물을 누가요구 하였느냐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을 받기 위해 욕심으로 드리는 재물은 헛된 것이고 가증한 것이며 교회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자라고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자들이 예배를 드리려면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고 거듭난 생명을 드리는 것이 제물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은 제사를 천 번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변한 상태를 천 번제라 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금씩 변한다면 변한 만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몸이 일천이라면 매일 진리말씀으로 천분의 일이 변화가 되었다면 천분의 일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이 다 변화가 되었다면 이것을 천 번제라는 것입니다. 미물이나 물고기 같은 인간의 존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받아 창조된 자를 이것이 창세기에 땅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6일 천지창조의 완성이며, 온전한 십일조이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제물과 재물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제물과 재물을 안 받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말3:8)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