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예수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라,

제라늄A 2024. 7. 11. 10:46

로마서 6:5~9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믿음의 모습이 아닌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순된 삶을 사는 이유는 인간의 본질과 성경이 말하는 의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성경이 말하는 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생명적인 기쁨, 은혜, 감사를 경험할 수도 없고, 설령 그러한 것들을 느낀다 해도 그것은 영적인 기쁨 은혜 감사가 아닌 혼적인 즉 감성적인 감사인 것입니다. 본 문장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죄의 몸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처럼 너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도 ‘함께’ 못 박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 ‘함께 못 박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믿음의 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함께 못 박히지 않는다면 죄가 우리에게 왕 노릇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결국 율법과 육체, 그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죄에 대한 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요한 1서 3:4~9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십자가를 통해 에서 벗어나는 것을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에 이르니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교훈의 본을 말하는 것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죄에서 벗어나는 즉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이제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는데 이런 마음으로 순종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분을 믿는 자들로서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다는 이런 내용들을 너희가 순종하면 의에 종이 될 것입니다. 결국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훈의 본을 너희 마음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너희가 가지라는 것입니다. 죄인 된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예배는 다 주님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본질적인 문제 즉 죄의 몸 사망의 몸 옛사람 육체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된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죽었고,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에 의존해서만 그리스도에 근거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머리시요, 근본이시요, 으뜸이라는 데서 복음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없는 복음은 복음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죄인 된 나를 위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셔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라는 것을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적은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가르침을 직접 받고 그분이 행한 기사와 이적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분을 부인하고 떠나갑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실천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고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이것을 믿음이요,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은 점점 세속화되고 변질되었으며 교회 안에서 주님의 영광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심판의 자리에 섰을 때 주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을 하고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낸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행위는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육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순된 삶의 모습이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육체를 십자가 주님과 함께 못 박은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안에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사는 믿음의 지체로 살아가야 합니다.  갈라디아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