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진리의 성령(말씀)이 함께 하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성령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과 예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한 년대 수가 각각 다르지만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한 자이기 때문에 40여 명의 성경기록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정확히 하나님의 뜻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잉태와 부활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마태, 누가, 사도바울도 예수님의 잉태사건을 보지 못했어도 자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잉태”와 “부활”은 누구에게 듣고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처럼 자신 안에서 말씀의 “씨”(눅8:11)를 소유한 사람은 성령잉태가 되고 부활이 되어야 이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는 것이고 구원받은 것을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씨”를 갖은 한 알의 밀알과 똑같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4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씨앗과 열매는 성분이 똑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와 같이 한 알의 밀에서 똑같은 많은 아들을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맏아들이란 형제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심어지므로 예수님과 똑같은 제자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으로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명칭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누구나 “예수”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낳음을 받아야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씨”로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같이 아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예수”가 된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소유하고 있는 말씀자체가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6:13~14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가 열리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던 “예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요, “예수”가 가지고 오셨던 진리의 세계가 환하게 열리면서 “예수”의 분량까지 장성하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말한 성경의 비밀들이 밝히 드러나면서 이상과 예언들이 모두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유대교 가말리엘의 그 당시의 최고 학부를 나온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성경학자로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자신은 소경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세상에서 쌓은 모든 지식을 배설물 같이 버렸다고 고백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빌3:8)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같이 신학교에서 학문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을 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의 씨”로 거듭나게 되면 성령께서 모든 것을 인도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1서 2:27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그러므로 진리의 성령(말씀)에 사로잡히고 약속의 성령에 포로가 되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성령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예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고 계시는 곳이요, 하나님께서 거처로 삼고 계시는 집(성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보좌로 삼으셨고, “예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보좌로 삼으셨으며 오늘날 신앙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좌로 삼고, “예수”의 보좌에 앉아(계3:21)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성경)이 하나님의 보좌요 성경의 진리가 “예수”의 보좌이며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다는 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그 위에 앉을 수 있는 보좌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올라간 자들은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보좌가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하늘에 올라가 보니 보좌가 베풀어져 있었다고 한 것은 하늘에 올라간 자들이 좌정할 수 있는 보좌가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21:3~7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시록 21:2~4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