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해설 8 장 1:11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

제라늄A 2018. 7. 14. 05:25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   

요 8:1-9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 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 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해설: 예수는 저녁이 되어 성전에서 나와 감람산으로 가셨다가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예수께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에 앉아서 무리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무리의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렇게 간음한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를 고소할 조건을 잡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지 말라면 율법을 범하는 것이고 돌로 치라고 하면 심판자가 되고 또한 살인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퇴양난에 처한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시니 저희가 예수님이 써놓은 글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여인을 돌로 치는 자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예수님이 써놓은 글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그 자리에서 한사람씩 모두 떠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서있는 여자만 남은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몸을 굽혀 땅에 쓰신 글이 어떤 말씀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늘날까지 의문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쓰신 글은 영안이 열리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쓰신 글은 새 계명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며 두 번째 쓰신 글은 네 몸과 혼과 마음을 정성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쓰신 이 계명은 성경전체의 모든 율법과 하나님의 뜻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땅에 쓰신 후에 이 두 계명을 모두 이룬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모였던 무리들은 예수님이 쓰신 계명을 보고 양심에 가책이 되어 모두 떠나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던 무리들 중에 새 계명을 모두 이루어 죄가 없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육신적인 간음과 영적인 간음이 있는데 육신적인 간음을 한자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간음을 하는 자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지 말라는 간음은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간음은 두 주인을 섬기듯이 하나님과 재물(자신)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말하며 그보다 더 중한 간음은 다른 복음을 믿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다른복음을 따라 가면서 자신들이 간음하는 자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간음을 하는 자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혹은 육신의 복을 받기 위해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이런 자들은 죄 사함이나 용서받을 수 없고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흔히 범하고 있는 영적간음은 육신의 복을 받기위해 목회자로부터 가감된 누룩 섞인 세상 복을 받기 위하여 비 진리를 좇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이 사후에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될 것입니다.

 

8: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라,

 

설: 예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자를 보고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물으십니다. 여인이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적간음을 한 것이 아니라 육적간음을 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에게 육신적인 간음도 다시 범하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불신자는 물론 기독교인 중에도 육신적인 간음을 하는 자가 있고 또한 목회자들도 남녀간의 간음 문제 때문에 교회에서 출교당하는 사례도 볼 수 있습니다. 육적 간음은 세상의 범으로도 금지되어 있고 또한 윤리도덕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육신적인 간음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하나님과 재물(자신)을 겸하여 섬기는 것과 기복을 따라 다른 하나님(가감된 말씀)즉 비 진리를 섬기는 영적 간음죄는 절대로 범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