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아는 말씀의 지식으로 받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부와 성자”는 잘 알고 있는데 “성령”은 잘 모릅니다.“성령”은 거룩한 “영”을 말하며 거룩한 “영”은 거룩한 말씀을 말하며 거룩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하나님이라고 합니다.“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성령”을 받고 "계시"가 임하니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했기에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의 “계시”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 사랑을 부어 주셨다고 했습니다.“성령”은 신앙인의 전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 눅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시 18:25-26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니라, 예수도 같은 이치를 가르쳐 말씀하셨습니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즉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 길은, 그의 이름으로 자비를 이웃에게 베풀어 주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성령”을 받으려면, 나에게 있는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기도문에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 달라” 는 말씀은 이웃의 죽은 영혼을 구원했으니 내 영혼도 구원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진리이며 사실입니다. 신앙인의 가장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을 받는 것입니다. 나의 선의를 남에게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선의를 입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우리의 죄도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이 임하기를 원했지 다른 사람의 유익은 전혀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성령”이 그 위에 임하지 않고, 그들은 언제나 영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께 “성령”이 임하기를 원해도 나에게 관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실 턱이 없습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성령”입니다.“성령”을 받으면 “계시”가 임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는 가장 두려운 일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죄에 빠졌을 때에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시 51:10-11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신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신앙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성령”을 거두어 가버리시면 “계시”가 임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이것보다 더 큰 괴로움은 없습니다. 신앙인은 다른 어떤 괴로움을 당해도 좋지만 이 괴로움만은 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삼가야 합니다. 모든 일을 정직하게 그리고 관대하게 다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아도 사회에 미움을 받는 것을 개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거나, “성령”이 떠나가 버리거나 하면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암흑과 지옥입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옵소서” 이 재앙이 내게 들이닥치지 않기 위하여서 나는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성령”의 강림이 중단됩니다. 그 결과로 신앙인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되지만 오직 이 한 가지 일만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나를 시험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말 3:10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이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절대로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상기의 말씀을 소득의 십일조(돈)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를 하는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말 3:8-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온 나라”라는 것은 기독교의 각 교단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교단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함으로 저주를 받았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적질 하는 것은 “온전한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십일조가 소득의 십일조 돈으로 알고 있을 뿐 무슨 뜻인지 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드리라는 십일조는 소득의 십일조가 아니라,“아벨”이 하늘의 소산으로 드린 “양과 기름”이며 즉 “진리와 성령”(의와 인과 신)을 말하며 “진리와 성령”은 곧 생명의 말씀을 말하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을 “온전한 십일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창고는 거듭난 자의 몸을 창고로 “비유”한 것입니다(고전3:16)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의 양식”을 반드시 자신의 성전 된 창고 안에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수1:11) 그러므로 참 신앙인이라면 날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듭난 자 안에는 말씀의 지식이 있어야 죄 지은 자를 사해줄 수 있는 것 같이 이웃의 죽은 영혼들의 죄를 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의 죽은 영혼을 구원했을 때 내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몸 안에 하나님의 양식(말씀)을 저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창고(몸)에 저축한 자는 그 말씀의 양식으로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생명의 말씀으로 구원하기 위해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의 “죄”를 사해주었을 때 내 “죄”가 사함 받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