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영적인 의미로 “비유 비사”로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영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살인”은 육신적인 “살인”과 영적인 “살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더 귀중히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은 몸이 살아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혼”은 “육”이 죽은 후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육”은 “혼”을 담고 있는 질그릇에 불과하며 “육”의 생명의 실체는 “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혼”보다 “육”을 생명처럼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 옷을 입을 때는 모두 즐거워 하지만 그 옷이 낡아지면 벗어버리고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혼”도 입고 있는 “육” 즉 몸이 병들거나 늙어 죽게 되면 입고 있던 “육”은 버리게 되지만 “육” 안에 있던 “혼”은 다른 “육”으로 들어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사람의 죽음은 “육” 안에 들어있던 “혼”이 “육”을 떠날 때 죽었다고 말하며 “혼”이 새로운 “육”의 옷을 입을 때 태어났다 혹은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혼적”생명은 이 땅에서 죽고 태어나고 다시 죽고 태어나길 반복하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윤회”라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생과 윤회”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생과 윤회”가 있다는 것을 여러 곳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인간들의 “전생과 윤회”가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파괴되고 “사람이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인과 응보”가 모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에 하나님이라면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동일하게 태어나게 하셔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나쁜 환경에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의에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전생"에서 “선”을 행하고 살은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악”을 행하고 살은 사람은 나쁜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시는 것은 자신이 행한 대로 일점의 오차도 없이 “현생”에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며 “내생”에 태어남도 “현생”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환경과 조건을 맞추어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전생”이 없다거나 부정을 하는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폐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전생과 윤회”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만일 너희가 내가 하는 말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너희가 오리라 기다리고 있는 “엘리야”가 이미 “세례요한”으로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귀가 있는 자들은 들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너희와 유대인들이 다시 오리라 기다리고 있는 “엘리야”가 이미 “세례 요한”의 몸을 입고 지금 와서 있는데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전생과 윤회”를 “전생”에 존재하던 “엘리야”와 “현생”에 “세례요한”의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난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생과 윤회”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마 17:11-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 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이렇게 성경은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윤회”하여 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기독교 “신학”이 “윤회”를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윤회”를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들 중에 이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자만 들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전생”에 육체를 위해 심은 자는 “현생”에서 썩어질 것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며 “전생”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성령을 심은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어 이미 천국으로 들어가서 “현생”에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현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거듭난다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천국으로 들어가 “내생”에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되지만 “현생”에서 육체 즉 자신을 위해 사는 자들은 “내생”에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를 입고 다시 태어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 바로 “공의에 하나님”이십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영혼”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이웃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영”이 없는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믿고 그 말씀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영”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들은 이웃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멸하거나 변질시키자 말라는 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육”을 위해서는 “육의 양식”을 매일같이 먹듯이 “영”을 위해서도 “영의 양식”을 매일같이 먹어야 “살인하지”않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영의 양식”을 매일 “육의 양식”을 먹듯이 “영의 양식”도 쉬지 말고 먹어야 “살인하지”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걱정으로 인해서 어떠한 유혹이 다가오면 미혹되어 타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타락한 천사의 존재들이 나타나는 것이며 삯꾼 목자와 거짓 목자들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이 세상의 악한 존재들로부터 오는 핍박과 각종 유혹으로 인하여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의 말씀”을 소멸하게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생명을 살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로 나가 마귀에게 온갖 시험과 유혹을 받으신 것을 성경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지 못하셨다면 지금 타락한 천사들의 하나가 되어 유대인들을 말씀으로 미혹하며 영혼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소유하고 있는 생명의 말씀도 마귀의 미혹을 받아 변질이 된다면 그때부터 거짓 목자가 되어 변질된 말씀으로 “영혼”들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멸하거나 변질시키지 말라는 뜻이 “살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타락하여 말씀을 변질시키게 된 것은 결국은 “비 진리”를 소유한 뱀들과 마귀로부터 오는 미혹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자기 안에 있는 욕심으로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떠난 기독교 목회자들은 변질된 말씀으로 기독교인들을 더 이상 미혹하거나 “살인하지 말고” 하루속히 회개하고 “비 진리”에서 벗어나 생명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지금이라도 넓고 평탄한 길을 가는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