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혼”이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면 “회색빛”을 가진 인도자나 “노란빛”을 가진 인도자를 만나 그로부터 초보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지도자 격인 스승에게로 가서 면담을 받게 됩니다. 면담을 마친 후 “혼”의 세계에 대한 예비교육을 받으며 “혼”의 세계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끝나면 마스터 급 지도자인 “보라색” 스승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그 앞에서 질문과 상담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심사과정을 마치면 “혼”의 수준이나 차원에 맞는 장소와 그룹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그곳에서 일정기간을 교육과 수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전생”에 악업을 많이 짓고 들어온 완악한 “혼”들은 그곳에서도 열악한 장소로 인도되어 강도 높은 교육과 그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받아가며 고된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혼”들의 세계에서는 육신적인 불편이나 고통은 없지만 정신적인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되는데 정신적인 고통이 육신적인 고통보다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혼”들의 세계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은 받지만 “육”의 고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의 세계에서 교육과 훈련의 과정을 모두 마친 자들은 때가 되면 “내생”에 새로운 몸을 입고 태어나게 되는데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한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혼”의 세계에서는 “육”이 없어 고통을 받을 수 없었지만 다시 “육”의 몸을 입고 태어나면 그때부터 고통을 받는 조건이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신적”인 고통의 강도는 “혼”마다 각기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의 강도는 “전생”에 자신이 지은 “업” 즉 “생전”에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정해지며 또한 “전생”에 자신이 행한 “선업”이나 “악업”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라디아서 6장 7절을 통해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대로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생”에 지은 업들은 “혼”들의 세계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육”을 입고 태어나는 “내생”에서 모두 받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전생에 선업”을 쌓은 사람은 좋은 환경과 부요한 가정에 태어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며 “전생에 악업”을 쌓은 사람은 “내생”에 “열악”한 환경에서 “지체” 부자유자나 “저능아”나 혹은 각종 “지병”을 가지고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이 바라고 원하는 “천국과 지옥”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환경이 좋은 나라, 부요한 가정 그리고 좋은 성격과 건강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 부족함 없이 천국과 같이 행복하게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환경이 열악한 나라와 불우한 가정에서 못된 성격과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으며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천국과 지옥”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이 세상의 현실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죽으면 모두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실제 거듭나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들어가는 자는 “1%”가 아니라 “0.01%”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부자들로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마19:24)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부자 청년과 같이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99,9%) “혼”의 세계를 거처 “내생”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시편 53편과 로마서 3:10 을 통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의인이라는 자나 말씀을 깨달았다는 자나 “선행”을 행하는 자나 하나님을 찾는 자들도 모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충성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자나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 봉사한 공로와 교인들을 전도한 공로 그리고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드린 공로로 하나님께 큰 상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 앞에 서면 “예수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지옥문을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최선을 다해 충성 봉사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가 충성 봉사한 것은 내 이름만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목사님을 위해서 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상급을 받기 위해서 모두 욕심으로 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평생 동안 목회를 하며 영혼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보내고 있는 목사님들은 예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실까? 예수님은 목사님들 역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상기에 예수님의 이름 곧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은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시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시는 것은 이들이 모두 예수님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목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의 목사님들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를 운영하는 종교 사업체이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교회들은 말만 하나님의 교회이지 실상은 모두 자기 교회이며 교인들도 모두 자기 교인인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천국 문을 닫아놓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막고 있는 자들로 교인 하나를 얻으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들고 있는 자들이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입니다(마23:13~15) 때문에 이런 자들은 사후에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 죄 값을 혹독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생”에서 “악업”을 지은 “혼”들은 “내생”에 태어나 고통받는 것이 두려워서 “혼”의 세계에서 계속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세상에서 “선악 간” 행한 일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그에 따른 “상과 벌”을 주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인간들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들은 어느 누구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들의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전”에나 죽어서나 항상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고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예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나)에도 이루어져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혼”들의 세계는 “생전”에 하던 일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받는 일을 이어서 행하는 곳이며 “내생”에 다시 태어난다 해도 동일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 인간들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산자나 죽은 자나 또한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리고 “전생”이나 “현생”이나 “내생”이나 “사후의 세계”에서도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가 되면 “생로병사”가 계속되는 “윤회”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후의 세계”를 기록한 목적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려서 사람들이 모두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청종한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 끝 -
※ 인간들의 인과 응보(因果應報)와 하나님의 공의(公義) ※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가페 사랑”인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어떠한 죄를 범해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으나 사람들이 심은 대로 거두신다는 “인과응보”에 대해서는 생소하거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두시는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하는데 사람이 태어나는 환경이나 조건을 보면 모두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 백인과 흑인으로 주인과 종으로 부자와 거지로 건강한 자와 지체부자유로 미녀와 추녀로 태어나는 등 하나님은 너무나 불공평하며 편견적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이요 공의라 말할 수 있겠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생”에서 지옥과 같이 심한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자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원망하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과 벌을 받느냐고 한탄을 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공의롭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도 덜도 없이 사람들이 “전생”에 자신이 행한 그대로, 즉 자신이 심은대로 행한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 그 보응을 받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만민에게 평등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천국이나 지옥을 가는 것도 오직 믿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자신이 행한 “선과 악”의 결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이 이 세상에 죄인의 몸으로 태어나게 된 것도 “전생”에서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죄, 즉 욕심과 탐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생”에서 모든 죄를 회개하여 의인이 되었다면 천국으로 들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은 “전생”에서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여 “현생”에 육신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현생”에서도 자신의 죄를 모두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음 생인 “내생”에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죄악 된 세상에 다시 태어나 자신이 지은 행위에 따라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 죄는 곧 자신이 “전생”에서 지은 죄를 말하며 자 범죄는 “현생”에서 짓는 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인간들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과 탐심을 말합니다. 이렇게 “전생”에서 범한 죄업은 “현생”에서 받는 것이며 “현생”에서 짓는 악업은 “내생”에서 모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생”에서 선한 일을 많이 행한 사람은 “현생”에서 많은 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은 “내생”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담의 원죄와 관계없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면 의인이 되는 것이며 죄인으로 계속 머물러 있다면 예수를 믿는 믿음과 관계없이 “현생”이나 “내생”에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공의이며 이것을 “인과응보”라고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심은대로 거두게 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잠11:16~31)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윤회”되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길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어서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오직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요1:14) 오늘날의 “실존 예수”를 영접해서 그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미 인간에게는 “윤회”를 통해서 “전생과 현생과 내생”에 대헤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선지자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예언하셨으며 예언하신대로 “전생”에 존재했던 “엘리야” 선지자가 예수님 당시에 “세례 요한”의 몸을 입고 다시 “윤회”되어 오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너희가 오리라 하고 기다리는 “엘리야”가 이미 “세례 요한”의 몸을 입고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즉 “전생”의 대한 말씀은 들을 귀가 없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신학 박사라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세례 요한)이니라, 이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가 다시 오리라고 예언한 “엘리야”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의 몸으로 “윤회”되어 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전생”에 있었던 “엘리야”가 “현생”에 다시 “세례 요한”의 몸을 입고 이미 와 있다고 “전생”과 “윤회”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 17:11-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이렇게 성경은 이미 “전생과 현생과 내생”과 “윤회”를 기록되어 있으나 오늘날 소경 된 기독교인들은 문자 성경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이런 말씀들을 전혀 생소하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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