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하나님)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하나님)로 말미암아진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하나님)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하나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자들이니라, 상기의 말씀은 각 사람에게 비취는 “참 빛”은 오늘날 하나님의 실체인 “실존예수”를 말하며 세상은 “어둠”에 속한 기독교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실존 예수”는 20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항상 하나님께서는 “실존”으로 세상에 계시는데 원문을 보면 미완료 능동의 상태로 언제나 시대와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항상 “실존”으로 존재하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실체이신 “실존 예수”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영원히 하나님은 “실존”으로 계시다고 계 1:4,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로 “처음과 끝”이 되시기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든지 항상 하나님은 “실존”으로만 계셔야만 하나님의 실체이신 “예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신 “영” 이시기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오늘날도 “실존 예수”가 계시지 않으면 절대로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신 “실존 예수”를 반드시 유대인들이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실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했으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 예수”를 이단으로 배척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는 유대인의 “독생자 예수” 한 분 밖에는 없는 것으로 기독교인들이 인식되어있기 때문에 오늘날 “실존 예수”가 있다는 것은 무조건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이 고정관념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실존 예수”를 영접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 예수”가 계시지 않는 다면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실존 예수”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실존”으로 계셨으며 세상은 하나님의 실체이신 “실존 예수”로 말미암아 지어진바 되었으나 세상(존재)은 “실존 예수”를 알지 못하였고 “실존 예수”가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상기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실존 예수”가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다리던 자들이 왜?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실존 예수”를 불신하고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였을까요?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기다리는 “실존 예수”는 성경적인 초라한 모습의 “실존 예수”가 아니라 구름 타고 오시는 권능과 능력이 무한하며 위대하고 장엄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실존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실존 예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그대로 고운 모양이나 풍채도 없이 그리고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말씀의 집 말구유에서 태어나 오십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는 “실존 예수”는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단으로 배척하며 멸시 천대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실존예수님”께서는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같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아주 볼품없는 천한 사람같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며 오직 생명의 말씀인 “버터와 꿀” 즉 “생명의 말씀”을 먹고 “30세” 까지 장성한 자로 성장한 것입니다. 사 7:14-15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惡)을 버리며 선(善)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이 말씀은 “실존 예수”가 “30세” 전에 이미 “예수”의 탄생과 성장과정과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예언서로 이미 성경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예수”께서도 우리 인간과 똑같이 “버터와 꿀” 즉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장성한 자로 성장하면서 인간과 똑같이 인간의 본능인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하며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초라한 인간 “실존 예수”를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의 “이름” 즉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영접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예수”라는 이름 두 글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나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예수”의 이름 두 글자가 아니라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몰라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예수”만 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직접 듣는 자가 살아나게 되며 또한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직접 받아 먹는 자만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음성”이라는 것은 현제 “실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을 때 “혼적”인 죽어있던 자들이 “영적”인 존재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살아나려면 오늘날의 “실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 목소리를 직접들을 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존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그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되는데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자들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도 오늘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낳고 낳음”을 받은 자들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낳고 낳음”을 받은 자들은 “예수”의 사도들과 같이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며 죽은 영혼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 신학”은 “씨”의 본질인 혈통이 아니므로 “낳고 낳는” 것이 아니며 교인으로 평생을 기독교 목회자의 말씀을 먹다가 허공을 치는 “우상”을 섬기다 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사람이 만든 “신학”이므로 “혼적”인 죽은 자의 생명을 “영적인 생명”으로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