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룻기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기에 기독교인들은 안팎으로 기록된 룻기서의 비유비사의 말씀을 깨닫고 룻의 신앙을 본받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구약 모든 말씀을 일상용어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기록하였으나 오묘하게 안팎(계5:1)으로 비유비사로 비밀 중의 비밀로 깊이 감추어 놓으신 것을 필자가 해설한 것이오니 주의 깊게 읽으시면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들께서는 잘 관찰하셔서 이해를 못 하신다 해도 끝까지 참고 읽으시면 룻이 어떤 신앙을 소유했기에 천국의 존재로 거듭나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족보에 룻의 이름이 기록되었는지 말씀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기서”를 통독하시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실상을 바로 깨달을 수 있으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깨닫게 됩니다. 끝까지 잘 관찰하셔서 읽어주시면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룻기서 해설 제 1장
룻기서 1:1-2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해설: 사사들이란 종교지도자 오늘날의 기독교목회자를 비유하며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에 비 진리가 만연되어 진리의 말씀이 없는 영적기근을 말하며 즉 “진리의 말씀”이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란 참 진리의 말씀을 먹는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고 모압 지방에서 유한다는 뜻은 비 진리 신앙에서 젖먹이 신앙으로 머물고 있는 오늘날 애급이라는 세상 즉 2000년 전유대교 때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비유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엘리멜렉”이란 사람과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있는데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를 비유하며 “나오미”는 “엘리멜렉”이라는 기독교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상징하며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라는 뜻은 “병이 들다, 약하다,라는 뜻”으로 이 말씀을 다시 정리를 해보면 “엘리멜렉”이라는 기독교 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성경말씀이 “비 진리”의 말씀으로 “병들고 약하다”는 뜻입니다. 또 “에브랏”사람이란 뜻은 오늘날 기독교목회자의 말씀이 하늘의 별수와 같이 태산같이 많아도 영적상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병들고 연약한 “비 진리”의 말씀으로 “모압 지방”에 진리의 말씀이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기독교에 진리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룻기서 1:3-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 지 십 년 즈음에 말론과 기련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해설: 나오미의 남편 “엘레멜릭”이 죽었다는 것은 “비 진리”의 말씀을 더 이상 소유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나오미의 남편 “엘레멜릭”이 죽었다는 것이며 두 아들이 “모압”지방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큰아들 “말론”의 부인의 이름은 “오르바”요 작은 아들 “기룐”의 아내의 이름은 “룻”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레멜릭”의 두 아들이 남았다는 것은 두 아들의 말씀은 소유할 가치가 점점 없어지는 “비 진리”의 말씀이 조금 남았는데 이들이 “모압”여자 중에서 아내를 삼았다는 것은 여기 “모압”여자란 어린아이와 같은 젖이나 먹는 오늘날같이 기독교인들의 “비 진리”의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거기 거한 지 “십 년”이 됐다는 것은 “비 진리”로 병들은 말씀으로 장성했다는 것입니다. 또 두 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모압”여자들인 “오르바와 굿”이 두 아들에 “비 진리”의 말씀을 더 이상 소유할 가치가 없어 두 아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룻기서 1:6-10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 오려하여 있던 곳을 떠나고 그 자부도 함께하여 유대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 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해설: “오르바와 굿”이 동서 간인데 “모압”지방에서 “비 진리”의 수준 낮은 젖 먹는 신앙생활을 하다 여호와가 주신 양식 수준 높은 진리의 말씀이 “유대”땅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두 남편인 말론과 기련이 현재 먹던 말씀이 필요 없으므로 두 남편이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오늘날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자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진리를 찾아 “출 애급”(탈출)을 해서 “광야”로 나가 자신이 소유했던 거짓된 비 진리의 모든 것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훈련과 연단을 받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입성해야 장성한 자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르바와 루스”은 더 빛 밝은 진리를 찾아 “애급”이라는 세상교회에서 탈출하는데 이 “오르바와 루스”은 마음속으로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진리의 바른 길인지 아직 자신의 영적 수준이 안된 상태에서 그 길로 가는 것이 분별을 못하니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동서 간에 자신들 내면 안에서 갈등을 갖는 것입니다. 이들이 거짓된 곳에서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갈급해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혹시 잘못된 길(이단)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서로 마음으로 갈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 갖은 “나오미”가 그렇게 겁이 나면 먼저 있던 곳으로 “애급”의 “비 진리”말씀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나를 따라 이 길을 그냥 가던지 하고 작별인사를 하니깐 그때서야 “오르바와 루스”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하며 우리는 “유대 땅” 진리의 말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마음으로 결정을 하고 진리를 찾아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애급”이라는 세상교회에서 평생을 기독교목회자의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 신앙에서 그냥 머물러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빛 밝은 “진리의 말씀”을 찾아 “출애굽”(탈출)을 해야 살길을 찾는 것입니다.
룻기서 1:11-13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 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해설: 두 자부인 큰 동서 “오르바”와 작은 동서 “룻”이 정말로 세상교회에서 “출 애급”을 해서 “광야”로 가야 하는지 안 가야 하는지 서로가 마음으로 갈 팡 질 팡 결정을 짓지 못하고 망설이므로 말씀 갖은 “나오미”가 그렇게 두려우면 먼저 있던 “애급” 세상교회로 돌아가라 “나오미”상태로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는데 “참 진리의 말씀”(남편)을 네가 어떻게, 언제까지 기다리며 그 말씀을 만나겠느냐 그러니 전에 먹던 말씀 즉 “애급” 세상교회로 뒤 돌아가라고 강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애급”신앙에서 어렵게 “출 애급”(탈출)을 해서 “광야”로 나와 험난한 길을 가는데 너무 힘들면 “애급” 세상교회로 다시 돌아가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룻기서 1:14-17 그들이 다시 소리 높여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 좇았더라 나 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시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 하나이다.
해설: 여기서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미련한 큰동서 “오르바”는 생소한 곳으로 “광야”길을 가기가 너무 힘들고 두려워서 전에 먹던 말씀으로 다시 “애급” 세상교회로 돌아간 것입니다. “오르바”가 돌아가자 “룻”이 혼자서 계속 마음으로 갈등을 하니깐 “나오미”가 네 큰동서 “오르바”는 먼저 있던 곳으로 갔으니 너도 “애급” 세상으로 먼저 있던 곳으로 가고 싶으면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애급세상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말씀이 갈급해서 진리를 찾아 이 교회 저 교회로 찾아다니며 “출애굽”을 했다 해도 “광야”길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대부분 이단들이 무서워 다시 “애급세상교회”로 뒤돌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위는 너무 산만하고 오늘날 자칭 이단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겁이 나서 못 가는 것입니다. 사실은 “참 진리”는 이단 중에 하나는 진리이며 모두가 이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동서 “룻”은 담대한 마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애급”세상교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하며 “참 말씀”인 한 단계 높은 말씀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애급”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말라고 “나오미”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죽든지 살던지 그 말씀 좇아 가겠습니다. 아주 결심을 단단히 한 것입니다. 필자 “새사람”도 20여 년 전에는 세상기독교에서 “출 애급”을 해서 이단교회를 아니 가본 교회가 없이 다 돌아다니며 피를 흘린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날 필자가 “룻기서” 해설을 담대히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룻”의 담대한 결심이 보이며 하나님과 맹세까지 하며 정말 대단한 결심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신앙에서 “룻”과 같이 담대한 신앙을 본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루속히 전통기독교 거짓된 “신학교리”신앙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으로 찾아가야 하는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니 큰동서 “오르바”와 같이 평생을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기독교목회자들 밑에서 젖먹이신앙(애급)에서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애급”신앙에 그대로 머물러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100% 멸망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생소한 말씀이라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를 못 하실 것입니다.
룻기서 1:18-22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말씀의 집)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떠들며 이르기를 네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비어 돌아오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 하느뇨 하니라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할 때에 베들레헴에 오니라,
해설: “룻”이 큰동서인 “오르바”와 헤어지고 진리의 말씀을 찾아오기까지는 많은 갈등과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짓된 세상에서 “출애굽”(탈출)을 할 때에 “10대 재앙”을 치르고 “광야”에 나온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고통을 감수해야 기독교에서 “출애굽”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룻”이 말씀을 좇아 “출애굽”해서 베들레헴 떡집에 와서 “참 말씀”을 가진 자의 말씀을 먹고 보니 “룻”의 심정에 요동(지진)을 치는 것을 느끼며 그동안 “애급신앙”에서 먹었던 말씀이 참 말씀인 줄 알고 즐거워했는데 새로운 이 말씀을 먹고 깨닫고 보니 전에 먹던 말씀이 아주 수준이 낮은 “비 진리”의 말씀이란 것을 이때야 자신이 새롭게 다시 깨달은 것입니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필자의 글을 읽으시면서 “기독교 신학”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룻기서”의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에서 “나를 나오미(즐겁다)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쓰다) 칭하라” 이 뜻을 “룻”자신이 그동안 세상교회 “애급”의 “비 진리”의 말씀을 먹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나오미)했는데 이제는 “참 진리의 말씀”을 먹고 보니 “룻”안에서 심히 쓰디쓴(마라) 괴로운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오게 하시니라” 이 뜻은 그동안 “룻”이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진리의 참 말씀”을 대하고 보니 하늘의 말씀과 땅의 말씀의 차이를 깨닫고 그전에 알았던 “비 진리”의 말씀은 다 버리게 되고 빈 마음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성경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비 진리”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다의 물고기가 바닷속을 훤히 알지만 하늘의 세계가 있다는 자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물고기의 세계가 하늘의 세계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룻”이 마음 안에서 “쓰다”(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잘못 지은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다시 지으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도 자신들의 잘못된 성전을 헐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거듭나기 전에는 유대교 최고학벌을 가진 종교지도자로서 “참 진리”를 발견한 후 자신의 신학지식의 배경을 “배설물”같이 버린 것과 똑같은 심정입니다(빌3:8) = 계속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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