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45-47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본 문장은 번역이 약간 잘못되었습니다. 원문에는 첫 사람 아담은“영”(르아흐)이 아니라“혼”(네페쉬라)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은“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둘째 사람이라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둘째 사람으로 거듭나“영”의 존재가 된 하늘에서 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적”인 첫 사람 아담이 거듭나 둘째 사람으로 “영적”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 말씀은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이렇게 바로잡아야 정확한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오역된 글이 많음으로“원문성경”을 대조하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은 그가 어떻게 흙이 아닌“뼈”로 생명을 낳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첫 사람 아담이 그 몸을 흙으로 지음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깊은 잠을 통해 그 “살과 뼈”로 그의 아내 하와를 낳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깊은 잠(죽음)을 통해, 예수의 신분에서 그리스도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살과 피”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라면“살 중에 살과 뼈 중에 뼈”는 상위개념인“예수그리스도”의 실체의“생명의 말씀”이 되는“생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는 영혼을 구원할“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인 오늘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실존예수그리스도”의“생명의 말씀”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5장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등과 기름을 준비한“슬기로운 5처녀”가 하늘의 신랑을 맞이함으로 인간육체 속에 하늘의 그리스도 영이 땅으로 내려와 혼인함으로 인간이 하늘의 신(神)과 한 몸을 이루므로 인간이“실존예수그리스도”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란 하나님의 본체 영(靈)을 말하고 본체“영”이 들어간 사람은 곧“인간 예수그리스도”가 되시는 분입니다. 이 분이 창 3장에서 말하는 모든“산 자의 어미”하와가 되신 오늘날의 이 땅에 계신“실존인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아내 하와를 명명될 때는“예수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 삶을 통해 무엇이“죄”인지, 무엇이“의”(義)인지, 어떻게 육신을 가진 인간이 그 육신가운데 근본적인“죄”를 벗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다 보여 주셨습니다.“예수”가“그리스도”가 되시는 그 전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전 과정이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입니다. 그 전 과정이 주님이 말씀하신 인자가 영광을 얻는 길이요 우리 인간도 반드시 따라야 할 진리의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반드시“십자가”(세례)에서 죽지 않고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히1:5) 이것은 비단 예수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하여 믿음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십자가와 부활로 육신을 벗으시고 “예수그리스도”로 인정되신“실존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시고 날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예수그리스도”나 “그리스도예수”가 같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목회자들이“그리스도”가 헬라어로는“메시야”로 왕, 제사장의 직분을 나타내는 단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나“그리스도”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여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한 자가“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리고“그리스도예수”라고 하는 말씀은 죽어있는 영혼을 복음으로 살려야 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그리스도예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예수그리스도”나“그리스도예수”나 그 말이 그 말이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와 같이 영적으로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복음을 받는 자의 입장은“예수그리스도”의“떡”(살)을 먹는 것이고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그리스도예수”의 자신의 희생의“피”(포도주)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식입니다. 이같이“예수그리스도”와“그리스도예수”의 뜻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진리가 숨겨진 것입니다.
요 6:55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같이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희생의 피”(포도주)를 주고 복음을 받는 자의 입장은“살”(떡)을 먹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살아난 자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죽어있는 이웃에게 복음을 주어 살리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첫째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둘째로 거듭 난자는 이웃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자신의 희생과 피를 흘려 이웃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십자가의 모형”입니다.
영혼구원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웃에게“생명의 양식”을 주어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 3:10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창고는 거듭난 자의 몸(창고)에 양식(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영”의 양식을 반드시 자신의 창고인 성전 안에 준비해야 그 말씀의 양식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에게“구원의 빚”을 지게 된 것인데, 그 빚을 하나님에게 되돌려 갚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인 창고에 있는“양식”인 하나님의“말씀”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의“죄”를 사해 주어야 내가 하나님께 빚진 것을 탕감받고 내가 완전히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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