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인가,

제라늄A 2023. 4. 24. 16:52

누가복음 10:30-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튼 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 하시니라,

본 문장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다는 말씀은 오늘날 타락한 세상교회(예루살렘)에서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세상교회에서 영적으로 갈급증을 느껴 방황하다(고아, 과부, 나그네) 세상교회를 탈출하여 여리고(가나안)로 내려가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강도(좌편)는 금품을 탈취하지 않고 옷을 벗기며 때려서 죽게 하는가? 이것은 세상의 강도가 아니라 영적인 강도(좌편)즉 삯꾼목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빼앗는 옷(말씀)도 세상의 의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도(삯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들을 공격하여 말씀을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교회 모든 사람의 모습은 온몸이 멍든 것과 상처뿐인 강도 만난 사람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 1:5-7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 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마음)은 황무(갈급)하였고 너희 성읍(마음)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었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이 말씀과 같이 세상교회에서 사는 모습이 다 이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인(목사)이 외면을 하면서 피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강도를 만나 상처 입고 죽어가는 자들을 외면하고 피해 간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동일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본 문장에서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날 거짓된 세상교회(애급)에서 벗어나 말씀의 갈증을 느끼고 가나안(여리고)을 찾아가는 영적인 고아, 과부, 나그네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이들은 참 목자를 찾아서 거짓 된 세상교회에서 떠나는데 목사나 장로들은 이단에 빠졌다고 온갖 핍박과 멸시천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사람은 이렇게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기름(성령)과 포도주(말씀)를 상처에 붓고 싸매며 끝까지 돌보아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기름과 포도주인 진리의 말씀으로 병들어 거반 죽게 된 자를 살려내는 참 목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그 사람은 여행 중에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라는 뜻은 진리의 생명의 말씀으로 치료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마리아인이란 뜻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민족과 이방사람과 혼합한 민족이라 해서 유대인들이 개같이 취급한 민족이라 해서 그들과는 상종치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48 예수님에게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이 말씀과 같이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는 실존예수님에게 사마리아사람 또 귀신 들렸다고 취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이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며 포도주란 생명인 피를 상징하지만 생명의 말씀인 복음으로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를 구원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다는 것은 세상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도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때도 주님이 함께하시고 주막으로 데려가서 데나리온 둘을 주고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는 뜻과 모자라면 내가 다시 올 때 갚으리라 한뜻은 주막이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하는데 이때도 예수께서 다 인도하시는 것이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올 때 갚겠다는 약속은 예수님 승천하실 때 올라간 모습 그대로 재림 때에 와서 불쌍한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어린 심령들을 보살피고 잘 양육한 대가를 상급으로 보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시는데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바로 참 목자인 오늘날 실존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전체의 축소판은 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 말씀의 뜻은 첫 번째도 하나님사랑이요, 둘째도 이웃이란 뜻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진짜사랑이냐,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이 말씀과 같이 계명을 지키는 자가 바로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