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1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할 수 있는가?

제라늄A 2023. 9. 8. 16:57

갈라디아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며 성경의 모든 “율법”“네 이웃을 사랑하여 네 몸과 같이 만들라”는 이 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율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드는 것”이 곧 온 “율법”을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웃을 사랑하여 자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야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은 구원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윤리 도덕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만들어야 “율법”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며 십자가를 상징하는 말씀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고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 계명이 성경전체의 핵심이며 하나님의 “온 율법”“강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율법”이 있는데 이웃을 “사랑”함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롬 13:8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너희는 “사랑”“빚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모두 이룬 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율법”이 있는데 이웃을 “사랑”함으로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인데 기독교 안에는 그런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바로 아가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필로 스 인간의 “사랑” 하나님이 “사랑”하라는 그 “사랑”이 인간의 “사랑”이라면 되는데 하나님이 “사랑”하라는 그 “사랑”“아가페사랑”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인간의“사랑”“필로스사랑만 있을 뿐 아가페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에게도 없던 사랑이 바로 “아가페사랑”입니다. 이 “아가페는 원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글자는 같으나 내용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세 번씩이나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서로 다른 차원의 문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아가페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는 인간의 윤리도덕적인 필로스사랑”으로 “사랑”한다고 세 번씩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질문과 “사랑”한다고 대답한 베드로의 “사랑”은 글자는 똑같으나 전혀 뜻이 다른 차원의 대답인 것입니다. 원문을 통해서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 수 있지 한글만 보는 사람은 “사랑”이라고 하니까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도덕적인 “사랑”으로 불쌍한 사람을 도아주고 이웃을 찾아다니며 “사랑”이라는 명목아래 도와주고 구제도하고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라는 “사랑”인줄 알고 “율법이 완성된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테레사수녀나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몸을 희생하며 세상을 울린 구제활동 그리고 기독교단체에서 해외선교목적으로 하는 의료선교 물질선교 등등 이 모든 “사랑과 선”을 행하는 이들의 선함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희생의 베풂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과 선”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랑”이 아니며 오직 땅의 소산으로만 베푸는 “윤리도덕적”인 육신의 “사랑과 선”인 것입니다. 육신의 사랑이요 육신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에 따라 할 수 없는 이들의 “사랑과 선”을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그 의로움을 나의 생명의 “사랑과 선”으로 바꾸어 너희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난 “아가페사랑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사도들 이외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애급, 광야, 가나안을 통과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한 자만이 “사랑과 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은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예수의 제자들은 사도바울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자. “사랑”이 성취되어 율법이 완성된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이 성취된 자만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사랑”도 중요 하지만 피차 서로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의 “빚”이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의 “빚”을 말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빚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서 “사랑”에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사랑을 하나님께 갚으려면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어 그들을 살리므로 하나님께 진 을 갚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난 것처럼 희생의 피를 흘려 그들을 살려서 나와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피차 사랑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졌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며 그들은 또 사랑의 빚을 지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하는 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받았을 때 나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이룬 자는 “율법”을 완성시켜 모든 것을 이룬 자인 것이며 성취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올바르게 지킬 때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이 성취되는 것이며 그 성취된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아가페사랑”이 성취 된 자만이 할 수 있고,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자는 이러한 말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아가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율법”을 흠도 티도 없이 잘 지킨 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빚 이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서 내 몸같이 만든 자가 “율법을 다 이룬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 찌라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는 이 십계명보다 더 많은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다 이루었고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성취한 실체는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가 신앙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며 아들이 된 자는 이웃에 있는 영혼을 구원하여 내 몸과 같이 만들어야 구원의 완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열두 제자를 자기 몸과 같이 만들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그것은 열두제자에게 자신과 같은 몸을 다 만들었다고, 고백하신 것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