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해설

요한복음 6장 해설

제라늄A 2024. 4. 16. 17:16

요한복음 6:1-2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해설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큰 무리가 따라가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무슨 이상한 표적을 보지 않고는 믿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이적과 표적만 행하면 능력이 있다 참 목자다 하면서 모두 벌 때처럼 몰려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도 성경문자 해석을 통해서 가나안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표적과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 그리고 물 위를 걸으시는 표적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 등등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모두 영적인 비유비사로 영혼을 구원하는 요나의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오직 죽은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는 목적으로 비유비사로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이적이나 기적을 베푼 분이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마술사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흐름은 비유와 비사로 말씀하신 것이지 문자 그대로 기적을 베푸신 일은 한구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베풀 수 있는 분이라고 목회자나 교인들이 다 문자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모든 말씀은 형이상학의 말씀을 형이하학으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아시고 성경을 보는 눈을 문자 복음에서 비유복음으로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성경이 풀리지 않으며 성경을 풀지 못하면 모두 죄 사함을 받지 못하니 비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성경은 모두 비유비사라는 것을아시고 성경을 보셔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모든 말씀을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하게 비유비사로 말씀하시니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라고 예수님께 물으니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고전 2: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비사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거짓복음에 속고 있는 오늘날 거짓복음을 믿고 있는 사탄의 무리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게 이렇게 비유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7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해설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사 자리에 앉으셨는데 마침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들어 큰 무리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바라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시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빌립이 친히 어떻게 말할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먹일 양식을 걱정하시고 빌립에게 질문을 하신 것인데 예수님은 빌립이 어떻게 대답하실 것을 이미 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걱정하는 무리에게 먹일 양식은 영적인 양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인데 빌립이 걱정을 하는 것은 육신적인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빌립은 예수님이 예상하신 대로 각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을 가지고 떡을 사도 좀 부족할 것 같다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항상 영생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의 양식인 생명의 떡인 생명의 말씀을 말씀하고 있는데 에 속한 존재들은 언제나 육신이 먹고 배부를 육신의 양식을 염려하며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은 항상 의 말씀을 하시는데도 육신의 존재들은 항상 의 말씀으로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른 무리들이 바라는 목적도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육신의 양식, 즉 육신의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육신의 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기독교목사들이 교인들에게 기복을 강조하며 예배의식도 축복기도로 시작해서 축도로 예배를 끝내며 예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도만 하면 들어주시는 기복의 예수님으로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도 무리에게 먹일 양식을 육신적인 양식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려 오신 분이지 이적이나 기적을 베풀어 육신의 기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6:8-13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5000쯤 되더라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5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12 바구니에 찼더라,

해설이 말씀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라 해서 오늘날의 기독교인 외에도 타 종교인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육신의 안목으로 모두가 잘못된 비 진리의 말씀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이 말씀은 비유비사로 예수님께서 깊이 감 추워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의 영적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감춰진 보화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빌립은 무리가 먹을 떡을 염려하고 있는데 제자 중의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에게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습니까하고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을 잔디가 많은 이곳에 모두 앉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잔디에 앉은 사람의 수는 약 오천 명이나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줄지 제자들은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가 차고 넘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능히 하실 수 있다고 말하며 또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큰 표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유대인들도 믿고 따른 것이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지금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속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인 비밀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모두 비유비사로 감춰진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비 진리로 만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소유하고 있는 어린아이는 예수님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떡이 5란 뜻은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은 자를 말씀하십니다(고전14:19)

그리고 물고기는 세상이란 바다에 사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말하며 영적으로 어린아이 존재를 상징하며 산 생명을 비유비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아이와 떡과 물고기는 예수님이 소유하고 계신 생명의 말씀을 비유비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굶주린 자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주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온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천명이라는 사람의 숫자도 실제의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5와 같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5천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세상이란 바다에 사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말하며 영적으로 어린아이 존재를 상징하며 산 생명을 비유비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아이와 떡과 물고기는 예수님이 소유하고 계신 생명의 말씀을 비유비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굶주린 자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말씀이 갈급한자들에게 하나님의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주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온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제자들을 통해서 앉아있는 무리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저희가 원하는 대로 나누어주었는데 저희가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꽉 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 예수님은 능력의 주라 믿으며 자신에게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배가 부르도록 먹을 육신의 양식을 채워주셨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마술사이지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의 아들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이며 육신의 복이나 먹을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예수님을 믿고 따라온 무리들도 육신의 양식을 한 끼 얻어먹으려고 온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오천 명에게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나누어 주어 먹고 12광주리에 차고도 넘친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먹이시고 난후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명하시므로 남은 것들을 거두니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을 먹고 깨달아 장성한 자로 성장한 자들은 5000 가운데서 12, 즉 예수님의 12제자 밖에 없었다는 것을 비유비사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부르게 먹은 자들은 5000이나 되었지만 그 들은 육신의 떡을 원했지 영적인 떡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떠나가고 그 중에 남은 자는 오직 영적인 떡을 원한예수님의 12제자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떡에는 세 가지 종류에 떡이 있는데 “보리떡은 영적으로 어린 자들이 먹는 유교병오늘날의 기독교인들 애급의 기독교인들을 말하고 다음은 애급교회에서 조금 성장되면 출 애급을 해서 광야로 나와 불기둥과 구름기둥 즉 징계와 연단으로 훈련받는 자들이 먹는 떡이 무교병인데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의 수준에서 먹는 떡이 밀떡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과 연단을 거쳐 장성한 자로 성장하면 가나안에 들어가 먹는 떡을 진설병곧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인 산 떡이라고 합니다. 즉 제사장 급들이 먹는 떡이 진설병입니다 이 떡들도 차원적으로 “애급, 광야, 가나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도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처음에 신앙생활을 할 때는 큰 자(교만)로 와서 작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자(애급존재)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여 “율법과 징계로 작은 자로 만들어 하늘의 존재인 즉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사도들이 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부서지고 깨져서 가루가 된 부자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해서 천국으로 데려감을 당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0 -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같이 말씀의 맷돌로 잘 갈려 가루가 된 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들 갈린 자는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이 성화의 과정을 거처 부스러트려서 가루가 된 자가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묘한 진리가 예수님의 비유비사로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해설그 무리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오병 이어의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을 삼으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저희가 자기를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는 줄을 이미 아시고 몸을 피해 다시 홀로 산으로 떠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려고 금전공세까지 하는데 예수님은 자기를 임금 삼으려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산으로 도망을 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교회나 오늘날 기독교로부터 이단자로 소외된 나그네 고아 과부와 같이 영적으로 헐벗고 굶주린 자 그리고 병들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구원자이지 전통적인 보수신앙이나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모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거나 지금 실존예수님이 오셔서 계신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16-21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해설해가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는데 날은 이미 어두웠고 홀로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않아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는데 바다에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 모두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노를 열심히 저어 십 여리쯤 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유령이 오는 것 같아 무서워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라는 말씀에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였고 배는 곧 저희가 가려고 하던 가버나움 땅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홀로 산으로 가실 때 왜 따라가지 않았고 또한 예수님이 없는데 찾거나 기다리지도 않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떠났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다에 큰 바람과 더불어 파도가 일어난 것이며 제자들은 위험에 처해 두려워진 것입니다. “바다에 큰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없는 세상에 어둠이 몰려와 마음에 큰 동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교회)에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항상 위험과 고난이 따른 다는 것을 비유비사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배에 오르셨고 제자들은 무사히 가버나움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물위를 걸으실 수 있는 분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사도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 한분도 물위를 걷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것은 비유비사로 애굽의 교리나 광야의 율법을 초월해 계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위를 걸으시는 분인데 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기 때문에 위는 곧 말씀위에 있는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고 계신 분으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날 때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2-27 이튼 날 바다 건너편에 있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해설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그 이튼 날 바다 건너편에 있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예수도 없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무리는 예수님에게 랍비여 언제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하나님 아버지가 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서 축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있기 때문에 구원이나 영생을 위해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금 예수를 찾는 무리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이나 영생보다는 예수님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 잘 살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썩는 양식은 원문에 텐 브로신 텐 아폴루메넨이라기록되어 있으며 썩는 양식의 진정한 뜻은 상한 음식이 아니라 누룩 섞인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든 각종 신학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뜻은 썩는 양식 즉 기독교목회자가 주는 가감된 비 진리를 받아먹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즉 참 목자가 주는 생명의 말씀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인자, 즉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을 받아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나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의 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은 하나님의 아들만 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목회자들도 오염된 말씀을 가지고 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계시록을 통해서 거짓목자 곧 짐승이 치는 은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의 말씀으로 치는 을 맞아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짐승의 이름(말씀)으로 오른손이나 이마에 ”(666)을 맞으면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에서 영원히 제외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666을 치는 자들은 누구인가?     계시록 13:16~18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말씀)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 이니라,  이 말씀의 종들은 오늘날 목회자를 말하며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는 것은 오른손은 구원의  손길과(17:7) 말씀 전하는 자를 상징하고(1:16)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신학을 하면 목사안수()를 받는데 이 안수는 짐승의 이름”(말씀)으로 이마에 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8-33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까하시는 일이 무엇이니까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셨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해설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며 지금도 반드시 알아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일이라 착각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께서 답변하시기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곧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를 믿을 때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아직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한 목회자들을 믿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멸망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저희가 묻되 성경에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는데 당신은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게 행하는 표적은 무엇이며 또한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준 만나(율법)이며 내가 너희에게 주는 참 떡(산 떡)은 육신의 배를 채워주는 먹는 양식이 아니라 진리, 곧 생명의 말씀이라 말씀하시면서 이 생명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은 육신의 떡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 곧 하나님의 아들이 주시는 실존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34-37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도다 하였느니라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해설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통해서 육신의 복을 받기위해서 찾아온 자들이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온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의 실존예수님도 구원할 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야 구원을 시키지 보내주시지 않으면 예수님도 구원하실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자들은 영생을 얻을 준비가 된 자들, 즉 출애굽을 하여 광야”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이른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부르시고 택하신 자들, 곧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믿는다하여 아무나 구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보내준 자들만을 구원시키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내준 자들은 결코 내어 쫓지 않고 모두 구원을 시켜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아무나 구원 받는 것은 물론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거짓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해설예수님께서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보내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는데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모두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며 또한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준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이란 세상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직전을 마지막 날이라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날이라하는 것은 세상의 육적존재가 영적존재로 바뀌는 시점을 성경에서는 마지막 또는 종말이라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준 자라 해도 자기 마음대로 구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에 따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말씀으로 준비시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서 아들을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는 마지막 날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6항아리 아구까지채워지는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사도들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3동안 먹고 마셔 6항아리 아구까지채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천지창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구까지채워 마지막 날이 되면 이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예수님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힘들고 어려운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죽기 5분전의 여유만 있어도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은 즉시 구원을 시켜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1-44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해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되 이 자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우리가 그 부모를 잘 알고 있는데 제가 언제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예수께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이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라는 뜻인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육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너희를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마지막 날이 되면 다시 살릴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여 아무나 구원하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 보내주시는 자만을 마지막 날이 되면 다시 살린다고 말씀하신 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시고 부르시고 택하신 자만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여 살리시는데 택한 자들도 마지막 날이 되는 곧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혼적존재가 죽고 영적존재로 부활(거듭)했을 때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과 영생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구원관은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구원관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구원관을 믿으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은 부정을 하거나 배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5-51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해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말씀을 하시면서 저희가 모두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들은 내게 오는 것이며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올 수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4:13-14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상기의 말씀은 모든 자녀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받으면 크게 평강할 것이며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어 학대와 두려움과 공포가 모두 떠나갈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세운 선지자들을 통해서 가르치는 말씀과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게 오는 자들이라 해도 모두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실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만이 아버지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믿는다하여 하나님을 본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만이 아버지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6:47-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 하시니라,

해설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올바로 모르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처럼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영생을 얻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자는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고 계신 예수님을 가졌다(외적으로)는 뜻이며 내적으로 영생이 이루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씀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산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원문을 찾아보면 완료가 아니라 가정법으로 내가 주는 산 떡 즉 생명의 말씀을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살았다가 아니라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어지는 말씀도 가정법으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을 얻었다가 아니라 영생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만일 예수님이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산 떡이 곧 예수님의 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식인종처럼 예수님의 을 먹으라는 것이며 만일 예수님의 을 먹지 않으면 영생할 수 없다고 오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 되신 분으로 예수님의 은 말씀이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이라고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어도 즉시 살아나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으로 성장해서 마지막 육신이 거듭나는 날, 즉 말씀이 내 안에 꽉 찰 때 다시 살려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 을 먹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내가 주는 생명의 말씀을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는 생명의 말씀은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으로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만나(율법)와 같지 아니하여 이 말씀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들이 살 수 있는 말씀은 오직 산 자,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인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는 아무리 유명한 목사나 신학박사라 해도 살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52-59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해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말하되 이 사람이 어찌 제 을 우리에게 줄 수 있으며 어떻게 자기 을 먹게 하겠느냐고 수군거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모두 비유비사로 되어있기 때문에 영적인 감각이나 영안이 없으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말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 문장에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는데 참된 양식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이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산떡이란 즉 예수님의 ()은 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내 “(포도주)는 참된 음료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도 비유로 를 포도주로 비유하는데 이것도 생명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이 살이나 피도 생명의 말씀을 뜻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떡과 살” “피와 포도주생명의 말씀(복음)으로 상징이 되지만 떡과 살은 하위개념이라면 피와 포도주는 상위개념입니다.

구원자의 입장에서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상위개념인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는 것이고, 복음을 받는 자 즉 먹는 자의 입장은 하위개념인 ()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흐름과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아가페)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흘려 죽으신 희생의()복음을 듣고 살아난 자는 예수님의 ”(복음)로 죽어있는 이웃에게 복음을 주어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똑 같은 말도 문장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을 받는 자의 입장은 즉 먹는 자의 입장은 ()을 먹는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는 것입니다. 성찬식의 영적의미는 복음을 영접하고 그 말씀으로 거듭나(죽고부활) “마지막 날에 구원 받은 내가 이웃에게 복음을 주어 구원 시키라는 그런 오묘한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이웃을 내 몸같이 구원할 때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교회실상은 성찬식의 뜻도 모르면서 형식적인 성찬식의 행위는 오히려 하나님께 를 범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이니라” 

요한복음 6:60-64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해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살과 피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 중 여럿이 말하되 이 말씀은 너무 어렵다. 그런즉 이런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시는 영적인 말씀은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한 말이 어렵다고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시고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하시면서 그러면 너희가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에 올라가 보게 된다면 어찌 하려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만일 인자 즉 예수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면 이 말을 모두 듣고 보고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한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은 영적인 말씀, 곧 산 자가 주는 생명의 말씀이며 죽은 자가 주는 육적인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너희 중에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또한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를 처음부터 알고 계시기 때문인데 예수를 팔자는 곧 시몬의 아들 유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5-71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롯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해설: 예수님께서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되 이러므로 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큰 충격과 더불어 많은 고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어느 누구나 믿을 수 있고 또한 누구나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데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 중에 많이 떠나가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은 본래 열두제자가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르던 무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열두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때 시몬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무리중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 떠난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며 예수님의 본래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은 것은 영생의 말씀을 위해 예수를 믿고 좇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가 너희들 12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마귀는 유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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