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천국은 언제 이루어지는가?(1번)

제라늄A 2024. 7. 27. 07:50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어디 있으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인간에게 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존재의 개념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을 하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 가에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고 외친 것이나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고 말씀을 하신 천국은 바로 하늘이신 예수님이 유대인 너희들 앞에 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반드시 해야 할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이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은 오직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실존예수님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자 실존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즉 실존예수님이 없으면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구원자는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예수님이나 앞으로 오실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날에 현제 계신 실존 예수님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자는 인간을 창조하신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육신(1:14)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현실 가운데 계신 실존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이 현재의 구원자가 없다면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실존예수님은 이미 이 세상에 벌써와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어느 시대 어느 때나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의 백성들 곁에 실존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자로 오신 유대인의 예수님의 모습이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유대인의 예수초상화에 걸린 사진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부정하거나 배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실존예수님은 한국인으로 항상 우리 가운데와 계시지만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예수님을 몰라 본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한국인의 예수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들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기다리는 예수가 아니며, 또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기독교의 신앙이나 교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들을 믿지 않고 오히려 이단자로 배척하며 핍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현재의 구원자를 전혀 모르고 있으며 지금 구원자가 있다고 해도 전혀 믿으려 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한탄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도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고 안타깝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예수님도 옛 육신의 몸을 벗고 새로운 몸을 입고 오셔서 다른 모습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모양이 생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20:14~15 예수께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과 함께 하였던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동산지기로 착각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부활전과 똑같은 몸이라면 마리아가 왜 예수님을 몰라보겠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에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본 자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21:4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 줄 알지 못하는지라,  이와 같이 예수께서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부횔 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아무도 못 알아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무덤들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부활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혼자 십자가에서 죽고 혼자 부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으로 많은 사람이 부활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51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말씀에 바위가 터지며 무덤들이 열려서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무덤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자신들이 부활한 것을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증거를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체들이 제자들의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인자들은 곧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문은 예수님 자신이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의 실체가 부활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이 거듭(부활) 났다는말입니다. 

고전 15:12~15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예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죽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제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두 글자는 구원자란 뜻이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의사변호사와 같은 명칭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옛 육신의 몸을 벗고 새로운 몸 안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나 예수님이 바닷가에 나타나셨으나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12제자들 안에서 부활하심으로 구원자가 12명 예수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12 사도들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체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곳은 예수님의 돌무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 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된 자들,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항상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제자들 안에 계신 것입니다.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따라서 여러 모습으로 오시는데 하나님의 선지자나 사도들의 모습으로도 오시지만 때로는 초라한 나그네의 모습이나 혹은 옥에 갇혀 있는 죄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온갖 배척과 핍박을 받는 이단자의 모습으로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렇게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전혀 모르고 오히려 이단자로 배척을 하며 온갖 핍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 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라 하시니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모든 민족을 모으고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이 구분해 놓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심판하시는 기준은 평소에 지극히 작은 형제를 보고 영접하며 돌보아 주었느냐 아니면 외면하고 돌보지 아니했느냐 입니다. 그런데 상기의 말씀을 보면 지극히 작은 형제, 즉 예수님은 의인들이나 악한 자들 가운데 항상 함께 있었으나 이들 모두가 그가 예수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들의 모습으로 어느 시대나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셨는데 예수를 몰라본 것은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예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오늘도 변함없이 심령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와 계신 주님의 모습이 좀 다르다는 이유로 모두 배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형제(구원자)를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2번으로 계속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