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4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 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포도원 품삯을 가지고 일어난 논란이 그중 하나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포도원 주인이 어느 일꾼을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고용해서 그는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꾼이 부족한지 주인은 점심이 지나 다른 일꾼을 데려왔는데, 품삯을 물어보니 자신과 똑같은 한 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아니 먼저 온 자는 아침 새벽부터 땀을 흘리며 일했어도 한 데나리온인데, 나중온자는 시작하자마자 해가 져서 더 이상 할 수도 없는데 한 데나리온이라니?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처사가 어디 있나?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찾아가 따져 묻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나는 네게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냐 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는가? 아침 새벽부터 저녁 가까이 일한 자신과 늦게 와서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한 그 사람이, 어떻게 자신과 같은 품삯을 받는가 말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주인이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많이 주든 적게 주던 그것은 주인의 마음입니다. 신학적으로, 이런 주인의 뜻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주권이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며 천국의 자격을 측정하는 잣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불평하거나 불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끝에 하신 말씀을 덧붙여 보면
마태복음 20:13~15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세상의 일반론적 견지에서 보면 포도원에 일찍 들어와 하루 종일 일한 자와 늦게 들어와 조금 일한 자에게 주는 품삯은 반드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천국비유에서는 그 둘에게 주는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영생의 상급이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일한 품삯이라니, 세상 적 관점에서는 얼마나 불공평하게 느껴지겠는가?
하지만 성경은 어디까지나 세상 적 관점이 아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누구이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의 상급이 주어지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있을 수 없으므로 “한 데나리온”의 동일한 품삯이 주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영생이라는 품삯을 주실 때, 가장 늦게 들어온 자에게 가장 먼저 주시고, 가장 일찍 들어온 자에게는 가장 늦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나중 된 자 먼저 되게 하시고 먼저 된 자 나중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나중 된 자에게 영생의 상급을 먼저 주시고 먼저 된 자에게 영생의 상급을 나중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을 살다가 육체가 죽으면 죽는 순간 개별적으로 그 영혼만 천국에 가는 줄 아는데, 이는 한참 잘못된 무지한 오늘날기독교의 거짓의 신앙입니다. 영생의 유업을 받는 상급이란 우리의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입성하는 천국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무조건 2000년 전 예수를 믿으면 당장 구원(영생)이라는 기독교 신학 교리에 현혹되어 있고 믿지 아니하면 지옥행으로 떨어지는 선악 간에 재단을 미리 해버리고 선악 간에 판단을 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2000년 전 예수를 믿는 기독교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교만하게 선악판단을 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는 일이므로 이것이 곧 “먼저 된 자”입니다. 먼저 된 자는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이 창세부터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을 도무지 듣지 아니할 터이므로 천국백성으로 구성된 오늘의 구원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영접한 늦게 들어온 자가 천국에 먼저 들어가고 먼저 들어온 자들은 인간의 수명을 다하여 죽게 되면 “윤회”를 통하여 돌고 돌면서 언젠가 “실존예수님”의 바른 진리의 길로 들어설 때 “윤회”가 없이 다음 생에는 천국으로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먼저 된 자는 나중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 된 자는 먼저 되는데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이 바로 기독교거짓의 신앙에서 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입니다. 오늘날 기성교단에서 2000년 전의 유대인들의 구원자 예수 그 우상의 예수를 영접하고 이미 구원받았다고 큰소리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먼저 된 자로서 회개하고 돌아오면 나중에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실존으로 계신 예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먼저 될 자들은 기성교단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실존으로 계신 예수의 진리의 복음으로 구원받는 자들이 나중 된 자들이 먼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먼저 되지 아니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비 진리의 신학의 말씀을 먹지 않는 뜻에서 먼저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비 진리의 말씀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진리의 새 말씀을 찾아 여기 저기 문전걸식하며 문을 두드리고 찾고 찾는 거지나사로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뒤에 오시는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을 듣게 되는 자들입니다. 즉 “나중 되는 자들이 먼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오묘한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고 인내하며 오랜 세월 인고의 끝에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진리의 새 말씀을 듣고 나중 되는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인간십일조이며, 신부반열이며, 끝까지 기름(말씀) 준비에 철저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 반열이며, 왕과 제사장 반열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성급하게 달콤한 마귀(뱀)의 속임수로 이미 2000년 전의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천국 갈 일만 남았다고 마귀가 주는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워 덥석 먹은 자들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는 길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의 구원자예수가 아니라,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예수”를 믿어야 “나중 된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00년 전의 예수는 유대인들이 믿어야 하는 예수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의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2000년 전의 예수를 믿지 안 했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의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