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은 후에 한 평 남짓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거나 화장터에서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납골당에 안치되는 것이 전부란 말인가? 그러면 사람이 죽은 후에 내생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사실일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지 내생이 어디 있느냐고 내생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생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내생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다 온 전생도 부정을 합니다. 이렇게 전생이나 내생이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조차도 모르고 덧없이 살다가 이 세상을 허무하게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내생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늙어서 죽음 앞에서 한시라도 더 살려고 몸부림을 치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온 전생과 다시 태어나는 내생을 알고 현생에서 내생을 준비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내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문제는 내생을 모르는 사람이나 내생을 아는 사람이나 모두 육신은 죽는다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분리된 혼은 죽지 않는 불멸성이므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내생이 존재한다면 현생의 존재는 내생에 태어날 때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죽은 후에 그 혼은 내생에 바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혼들이 머무는 사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은 후에 혼들이 들어가는 사후의 세계는 어떤 곳이며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이렇게 사후의 세계는 지금까지 베일(미궁)에 가려져 있어서 불신자들은 물론 종교인들도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후의 세계는 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된 혼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사후의 세계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인들도 사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막연히 믿고 있을 뿐이지 그 실체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일까? 문제는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도 사후의 세계를 직접 가보고 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도 분명하게 드러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사후의 세계는 단지 목사들이나 스님들의 말씀을 통해서 들은 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기도나 참선을 할 때 환상을 보거나 순간적인 유체이탈을 통해서 잠시 보고 느낀 것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존재와 사람이 죽은 후에 혼들이 들어가는 사후의 세계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육신 안에 들어 있던 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들어가는 곳이 곧 사후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들이 머물고 있는 사후의 세계를 모른다면 인생을 올바르게 살 수 없는 것은 물론 신앙생활도 올바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야 하며 또한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그리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나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이 살다가 이 세상을 허무하게 떠나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병이 들거나 늙어서 죽을 때가 되면 인생은 무상하다 혹은 인생은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러면 인생은 진정 잠깐 보이다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같이 무상하단 말인가? 모두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불경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성경과 불경을 기록했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가치와 무가치는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인생 자체는 무상하거나 유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온 곳과 가는 곳을 알고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내생을 준비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현생에서 사는 인생이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인생의 의미도 모르고 또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는 사람은 인생이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 정,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존재와 그리고 자신이 온 전생과 죽은 후에 혼이 들어가는 혼들의 세계와 또한 자신이 다시 태어날 내생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세상을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그 몸에 생기 곧 혼을 불어넣어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육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육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만 몸에서 분리된 혼은 불멸성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은 후에 몸에서 분리된 혼은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일정기간을 머물고 있다가 새로 잉태되는 어린 아기의 몸속으로 전생의 기억이 모두 없는 순수한 혼만 들어가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 시점부터 내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죽은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혼이 새 몸인 갓난아이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현생이 되는 것이며,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육신의 몸을 입고 있을 때를 전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육신의 옷을 입고 내생에 다시 태어난 사람도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면 그 혼이 다시 새 몸으로 갈아입고 태어나게 되는데 이를 내생이라 말합니다. 즉 현생은 혼이 육의 몸을 입고 있을 때를 말하며 내생은 현생에 죽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혼이 다른 아기의 몸으로 들어가 새로운 몸을 입고 태어나는 시점부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듯이 사람의 몸도 병들거나 늙으면 입고 있던 몸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난 몸도 늙고 병들어 죽으면 헌 몸을 벗어 버리고 새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이렇게 사람의 혼이 육의 몸을 갈아입으면서 현생과 내생을 오고 가며 태어나고 죽으면서 돌고 도는 것을 성경이나 불경에서는 윤회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혼이 육을 입고 있으면 현생이고 혼이 육을 벗고 새 몸을 입으면 내생이고 전생은 현생의 몸을 입기 전에 혼이 옛 몸을 입고 있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서 현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윤회를 하면서 이 세상에 왔으며 또한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윤회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지옥계의 미물이나 축생계의 축생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기간도 수백, 수천 년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혼인 무명의 중생이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성불하여 부처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런데 무명의 중생이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려면 몇 억겁 년이 걸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출가 한지 6년(6단계)만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셨다고 말씀하고 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6년은 년 햇수로 6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계 즉 지옥계에서 아귀계와 축생계와 수라계와 인간계를 거쳐 천상계로 올라가서 부처가 되는 과정인 육바라밀을 화두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창세기육일천지창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모르는 스님들은 몇 년 혹은 몇십 년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되려고 하며 어떤 무지한 스님들은 중생이 곧 부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아는 스님들은 살아 계신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는데도 몇 억겁 년이 걸린다고 날마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 난조우(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를 외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부처님의 말씀은 더 이상의 위가 없고 깊고 깊은 기묘하고 심오한 말씀이기 때문에 백천만겁의 세월이 지나도 만나기가 어려운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명의 중생들이 진리를 깨달아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지옥계에서 아귀계로 나오는 것조차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려고 이 세상을 수백 번, 수천 번을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으면서 윤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극락이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99.99%가 내생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육신의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몸 안에 들어 있던 혼이 바로 새 몸을 입고 즉시 내생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혼의 세계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머물면서 가르침과 그에 따른 수행을 한 후에 내생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이 7~80세를 넘어 100세 시대라고 하여 백 년을 넘게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몸이 죽어서 내생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혼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기간은 혼에 따라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혼이 머물고 있는 사후의 세계를 중간 계 혹은 연옥이나 구천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은 후에 혼들이 머물고 있는 사후의 세계 곧 혼의 세계는 어떤 세계이며 혼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종교인들도 현생이나 죽어서 들어간다는 천국이나 극락은 잘 안다고 하면서 막상 자신들이 죽은 후에 들어가는 사후의 세계 곧 혼의 세계나 다시 태어나는 내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온 전생과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내생을 알아야 하며 또한 육신의 몸이 죽은 후에 혼이 머물고 있는 사후의 세계 곧 혼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전생과 윤회가 없다고 부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전생과 윤회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전생이 없다고 부정을 하는 것은 3세기경에 존재하던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전생이 있다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왕의 권위가 약화된다는 염려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전생과 윤회의 구절들을 모두 삭제하라고 명하고 그때부터 전생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이단으로 처형을 하여 그 때부터 기독교에서 전생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전생과 윤회의 구절들이 조금 남아 있어서 전생과 윤회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전생과 윤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과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성경 전도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전생과 윤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과 인간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할 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이미 전생에 있던 인간들이 현생에도 존재하는 것이며, 이미 전생에 하던 일 곧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받는 일을 사후의 세계에서도 행한다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