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1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낳고 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예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2 이 아들(예수)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씨)에서 나셨고, 이렇게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다윗의 혈통(씨)을 받아 태어나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리아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시켜 예수가 태어나셨다고 문자성경을 그대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 진리”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비유”합니다. 누가복음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렇게 예수님도 “말씀의 씨”로 낳고, 낳고 해서 아브라함의 조상으로부터 “씨”를 받고 낳고 낳고 해서 다윗의 “씨”를 받고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의 족보에 꺼림칙한 이방 여인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세상을 구원할 “예수님”이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사건을 잘 이해하게 되면 사건 속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장자의 자리에 올라선 “유다”에게서 그 족보 “씨”가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의 “장자 엘”과 “차자 오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셨고, 마지막 셋째인 “셀라”까지 죽을까 봐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주기를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은 적통에게서 “씨”를 받아 대를 이어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들어 쓰실 때에 영적인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을 취하십니다. “다말”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에 아주 적합한 “여자”이었습니다. “다말”은 오직 하나님의 “씨”를 받고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주는 것이 자기 사명임을 깨달은 “여자”입니다. 이 “여자”의 영적상태를 아시는 신앙인은 이 말씀의 뜻을 곧바로 이해하실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다말”의 행위를 “영적”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인간 “육”의 개념으로 보면 “다말”의 행위는 패륜 중에도 극한 패륜된 “여자”입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다말”은 위대한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 있습니다. “다말”은 기독교인들이 깊이 되 새김질해보아야 할 위대한 영적인 “여자”중의 “여자”입니다. “다말”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육신의 정욕을 제어할 수 없어서 시아버지 “유다”(남자)를 유혹하여 욕정을 해결한 그런 “다말”(여자)이 아닙니다. 그 시대는 이웃 남자와 간음한 사실이 알려지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형벌을 감수하고 불륜을 저질러 “다말”이 “아들”을 낳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말씀은 깊이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 중에 비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러한 비밀의 말씀을 깨달아야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불륜을 저질러서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 “아들”을 낳아야 앞으로 오실 “예수”의 대를 이어준 “여자”입니다.
“다말”은 모든 수치와 멸시와 고난을 참고 “유다”의 “씨”를 받아 대를 이은 “다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씨”를 주셔서 “아들”을 생산하게 하신 목적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땅에서 만물을 다스릴 왕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침”을 즉 “도장”을 받아야 하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하고 말씀의 권세인 “지팡이”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이 “3가지”가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 없습니다. 이 “3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이제 “유다”와 “다말”의 사건에서 우리가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그 의미를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유다”는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 장자 “엘”이 있고 둘째 “오난”이 있고 셋째가 “셀라”입니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입니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다말”의 남편 “엘”를 죽이시고 “유다”가 둘째인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 “다말”에게로 들어가서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고 권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 “다말”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세상)에다 “씨”를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둘째인 “오난”도 죽이시니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너는 이제 수절하고 네 친정집에 가서 셋째 아들은 아직 어리므로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는 것입니다. “다말”이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고, 이스라엘의 관습은 장자가 죽으면 장자의 동생이 그 대를 이어주는 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들이라 항상 “영”의 눈으로 성경을 보아야 이해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시아버지의 말을 믿고 친정으로 가서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나 “셀라”가 장성하여 청년이 되었는데도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영리한 “다말”은 “유다”의 속셈을 꿰뚫고 시동생 대신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야 하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말”은 자기가 생각한 기상천외한 생각을 가지고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어느 날 시아버지 “유다”가 양 떼를 몰고 “딤나”라는 “다말”이 있는 곳으로 양털을 깎으러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말”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과부의 의복을 벗고 대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그 시아버지 “유다”가 오기를 기다리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습니다. “유다”가 “다말”앞을 지나가다가 창녀로 가장한 요염한 여자를 보고 마음이 동요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요염한 여자가 자기 며느리 “다말”인 줄 누가 꿈엔들 상상이나 했으랴 몸을 파는 창녀인 줄 알고 동침을 요구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본격적인 계약 체결에 들어갔습니다. “다말”이 “유다”에게 무엇으로 화대를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화대도 준비하지 않고 다음에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말”이 그냥 그 말을 믿고 몸을 내 줄 리가 없습니다. 이때 “다말”은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담보로 잡히시오, “유다”가 즉각 허락하므로 계약은 체결되었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로 들어가 관계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말”은 “유다”로 부터 “씨”를 받아 잉태가 되었고, “유다”와 “다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서 시치미 떼고 시아버지 “유다”는 양털 깎으러 목장으로 가고, 며느리 “다말”은 창녀의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고 발걸음도 가볍게 친정으로 돌아갔고,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비밀은 바로 “다말”이 약조 물로 받은 “도장, 끈, 지팡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다”에게 며느리 “다말”이 임신이 되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며느리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유다”는 며느리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합니다. 그러나 그냥 죽을 “다말”이 아니죠! “다말”은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담보물을 시아버지에게 보인 것입니다. “유다”는 약조 물을 보는 순간 기절할 뻔하고 아니, 이게 뭐야 “유다”의 표정을 한 번 상상들 해보시라, 이 정도 되면 “유다”가 두 손을 들고 자수해야 합니다. “유다”가 자기가 주었던 약조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하는 말이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라”고 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는 기독교인들은 “유다와 다말”의 사건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왜 하나님은 부정한 여자 “다말”을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오게 하셨을까? 그 이유는 “다말”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씨”를 받아 성령의 잉태되어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어야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인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로 거듭나야 하고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가 죽고 부활해야 “그리스도”로 부활하고 그 다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진 “정결한 처녀인 동정녀 마리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성령의 잉태로 “남자”의 영적상태인 “아기예수”를 탄생시키는 것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도 “다말”(여자)과 같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말”의 사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교훈은 약조물인 “도장, 끈, 지팡이”에 있습니다. 그 약조 물들의 의미는. 첫 번째, “다말”이 수중에 집어넣은 “도장”에 대하여 영적인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도장”은 모든 계약을 체결할 때에 “도장”이 찍혀야 합니다. 누구의 “도장”이 찍혀 있느냐에 따라서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고 권리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침”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표를 “인침”받으면 마귀의 자식이 될 뿐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의 인 치신 자니라”(요6:27) 이 인(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인”(印)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의미합니다. 너는 “내 소유다”라고 “도장”을 꽉 찍어놓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침”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은 이미 마귀에게 “인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인침”을 받았는지, 기독교인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말”은 이 “인”의 소중함을 이미 깨달은 것입니다. 두 번째, “다말”이 담보물로 받았던 “끈”은 무엇인가? “끈”은 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끈”에 매였는지 “마귀의 말의 끈”에 매였는지, 자기를 “성경” 말씀인 다림줄로 늘 재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귀의 달콤한 말의 “끈”에 매여 있으면 그는 마귀의 종으로 어두움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끈”에 매어있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보시는 기독교인들은 깊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5) “띠”가 곧 “끈”입니다. “진리”(말씀)로 허리 “띠”를 띠고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드는 사탄의 세력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다말”은 진리의 “띠”의 소중함을 이미 깨달은 여자입니다. 세 번째, “지팡이”가 무엇인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이 “지팡이”는 소경을 인도하기도 하고, 나의 길을 갈 때에 나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나의 나그네 길에 “지팡이” 말씀인 다림줄로 늘 재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귀의 달콤한 말의 “끈”에 매여 있으면 그는 마귀의 종으로 어두움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끈”에 매어있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글을 보시는 기독교인들은 깊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5) “띠”가 곧 “끈”입니다. 진리(말씀)로 허리 “띠”를 띠고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드는 사탄의 세력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다말”은 진리의 “띠”의 소중함을 이미 깨달은 여자입니다. 세 번째, “지팡이”가 무엇인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이 “지팡이”는 소경을 인도하기도 하고, 나의 길을 갈 때에 나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지팡이”는 아주 좋은 동반자입니다. 나의 나그네 길에 천국 가는 길에 말씀의 길을 인도하는 “지팡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바로 왕 앞에 섰고 아론이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졌고, 예수님께서도 “지팡이”같은 갈대를 요한에게 주셨습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언젠가는 기독교 “거짓목사”와 변론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인 “지팡이”로 쳐야 입술의 기운에 악한 자가 죽는 것입니다. “다말”은 말씀의 “지팡이”의 소중함을 이미 깨달은 여자입니다. 신앙인에게 이 “3가지” 곧 “도장, 끈, 지팡이”가 없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침”을 받고,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고, 말씀의 “지팡이”가 있어야 오늘날 거짓된 기독교 목사(마귀)들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족보의 계열에 따라 “말씀의 씨”로 낳음을 받아야 “사탄마귀”와 싸워 이겨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이 모두 “안팎”(계:1)으로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문자”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