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2:9~12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상기의 본장의 말씀은 “여자”위에 “남자”라는 상, 하의 단계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육신의 “남자와 여자”를 말함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영적으로 “남자의 영적상태와 여자의 영적상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한다면 이 땅의 사람을 “신부”라고 합니다.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는 자연계를 “비유”해서 “어둠”의 존재인 인간을 하늘의 “빛”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인데 성경에서는 인간의 어둠의 존재들을 “비유”하는데 창조되는 과정을 나열하는데 “물고기~ 기는 짐승~ 걷는 짐승~ 가축~ 여자~ 남자” 이렇게 “6번”거듭나 “6일 창조”를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6번”거듭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을 때 “7째”날에 하나님께서 그 몸 안에 “안식”하시는 것이 최종목표인 것이며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고전3:16)이 되는 것입니다. “제 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천국은 바로 “6번”거듭난 자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 문장에 “여자”위에 “남자”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의 영적상태인 “여자”의 영적상태인 인간으로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존재를 바다의 물고기나 각종 짐승들로 “비유”합니다. 욥기 12:7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말하리라,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존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물고기, 짐승”들에게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물고기, 짐승”들은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영적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고기, 각종짐승”들이 “6번”거듭나는 과정을 창세기의 “6일 천지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거듭나는 과정을 보면 “물고기에서~ 기는 짐승으로~ 걷는 짐승으로~ 가축으로~ 여자로~ 남자로”이렇게 “6번”거듭나는 과정을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6번”거듭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을 때 “일곱째”날에 하나님께서 그 몸 안에 “안식”하시는 것이 최종목표인 것이며 하나님의 성전(고전3:16)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 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바로 “6번”거듭난 자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 문장에 “여자”위에 “남자”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의 “여자”의 영적상태인 인간으로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고전 11:3~9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와 같이 본문은 “여자 위에 남자요, 남자 위에 그리스도요, 그리스도 위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인간의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이고, 예수가 죽고 부활하면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본 문장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문제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영적 수준을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동일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수컷”과 “암컷”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양과 음” 이것은 “씨”를 소유한 “수컷”의 “씨”를 받아야 하는 “암컷”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모두 인격을 갖추고 있는 동일한 사람 같지만 “남자”는 “씨”를 가지고 열매를 맺는 나무이며,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야 할 “밭”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자”는 “남자”로부터 “씨”를 받아서 다시 거듭나야 인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하나님 아들 “예수”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이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럼 본 문장을 보면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말씀)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고,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들은 “남자”들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아담한 “세마포 옷”(말씀)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염치와 정절로 단장한 아담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염치라는 것은 순결한 정숙한 마음으로 단장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로서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른 말씀의 “옷”즉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영적상태가 “남자”의 영적상태인지 “여자”의 영적상태인지 또는 “축생”의 영적상태인지 “짐승”의 영적상태인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종교 생활하는 “물고기”상태인지 이러한 것을 먼저 알아야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기의 본문의 말씀은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값진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땋은 머리”는 무엇이고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가감한 말씀을 오늘날 신학자들이 만든 기독교 “신학”교리가 “땋은 머리”입니다. “금이나 진주”는 화려하고 신화적인 “신학교리”주석 책 성경적인 예수가 아니라, 신학자들이 만든 “신학”교리적으로 만든 “우상예수”를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안”이 열려있는 사람만 볼 수 있게 “비유”로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거듭나지 못한 자에게는 볼 수 가없는 것입니다.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는 인간들이 만든 신화적인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의 말씀이란 모두 가감된 “비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인들의 “비 진리”의 신앙 “금과 진주”와 같은 “값진 옷”들을 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자신의 거짓된 성전을 헐고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전통이니 정통이니 하는 기독교신앙의 고정관념을 모두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46 된 예루살렘성전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짓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옛날 신앙의 옷을 입고 있는 한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빨리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선행으로 하라는 것은 거짓된 기독교에서 받은 “금과 진주”를 벗어버리고 “진리의 옷”을 입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여자”들이 해야 할 선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는 무조건 먼저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에게 조용히 순종하는 것부터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여자 남자”라는 것은 다 영적으로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귀 있는 자만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또 본 문장은 “여자”는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인간은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예수”에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서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축생이나 짐승이 물고기의 영적상태에 있는 인간에게는 가르쳐도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지 “여자”가 먼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적으로도 “여자”가 “남자”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여자”는 말씀의 순종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자세인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본문의 말씀처럼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뱀의 꼬임에 빠지지 않고 “여자”가 먼저 뱀에게 꼬임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아들을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들이 구원받는 길은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며,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을 이것을 해산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여자”가 거듭나 “남자”가 되었으므로 이런 경로를 다 거쳐 왔기 때문에 “남자”는 안 하는 것입니다. 상기의 이런 말씀은 기독교 신학박사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말씀들이라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감독의 직분이란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예수”는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이란 진리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자”가 거듭나 “남자”가 됐을 때 그 직분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인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인 “동정녀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남자”의 영적상태인 아기 예수를 낳는 것은 인간인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의 영적상태에서 본 문장의 말씀같이 “아담한 옷”(진리의 옷)을 입어야 “남자”의 영적상태인 하나님아들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종목표이며 이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들이 된 “예수”몸 안에 “안식”하시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은 이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거듭난 자들이 가르쳐야 할 대상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갈급해하는 방황하는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먼저 조용히 순종하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히 조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는 “남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