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3~21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 하나이다. 저에게 물어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서 눈을 뜨게 한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때문에 “안식일”은 절대로 일을 하거나 환자가 생겨도 치료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서 눈을 뜨게 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곧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안식일”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 교인들과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기독교인들 간에 논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만 “안식일”을 임의로 변경하여 일요일로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그 소경이 어떻게 하여 눈을 뜨고 보게 된 것인지 물으니 소경이 말하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실로암”에 가서 씻고 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자는 세상의 죄인으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또 어떤 자는 죄인이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때문에 바리새인이 소경 된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소경은 그는 선지자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기 병을 고쳐 주는 자가 의사이듯이 눈먼 소경은 자신의 눈을 열어주면 선지자이며 구원자인 것입니다. 때문에 눈을 뜨게 하여 주신 예수님이 자신에게는 선지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확인하기 위해 이 아이가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고 물으면서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을 들은 소경의 부모는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이 분명하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내 아들이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하니 저가 장성하였으니 직접 물어보라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말해 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망이라도 잡아서 예수를 고소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걸림이 되는 말씀을 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되었던 그의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는 교회에서 내어 쫓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에 두려워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도 누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라 말하면 무조건 이단으로 몰려 그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2~4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하는 말씀을 말하며, 적그리스도의 “영”은 거짓목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방법은 오늘날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이며, 오늘날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육체를 입고 와서 계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오늘날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도 오늘날 육신을 입고 오신 “실존예수님”을 이단으로 배척을 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하지 않으며 지금도 구름 타고 오신다는 재림 예수님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천 년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예수님은 앞으로 이만 년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름이라는 것은 부활된 말씀을 말하며 예수님은 이미 부활된 말씀으로 오셔서 지금 “실존예수님”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너희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리라 한 말을 들었거니와 예수님은 지금 벌써 오셔서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오셔서 지금 계신 “예수그리스도”는 곧 말씀이 육신 되신 분으로 예수님의 영(생명)이 육체 안에 오신 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육체 안에 성령(말씀)이 임(잉태)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셨던 것처럼 오늘날 “실존예수님”도 자신의 육체 안에 하나님의 영(말씀)이 오셔서 계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재림 예수는 이미 사람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 지금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육체 안에 있던 영(생명)이 사도들의 육체 안에 임하고 사도들 안에 있는 “영”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임하고 “디모데와 디도”에게 있던 “영”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계속 임하고 임하면서 낳고, 낳고 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생명(영)은 낳고 낳고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오셔서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예전에 입고 계셨던 육체만 다를 뿐 지금도 동일한 생명으로 성령(말씀)이 육신 안에 임하여 지금도 구원자로 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지금 육체로 오셔서 계신 “실존예수님”을 부인하며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육체로 오신 “실존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오늘날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실존예수님”를 시인하지 않고 배척을 하면서 미래에 나타날 재림 예수님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의 거짓 증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목사들이 성경적인 현재의 구원자를 올바로 알려주었다면 지금까지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의 구원자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목사인 적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말고, 상기의 말씀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보내주시는 “실존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라고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기독교목회자들이 인도하는 멸망의 넓은 길에서 벗어나 참 목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가 여러분을 구원하고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유대교 예수님 당시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하면 출교를 당하기 때문에 지금 그 소경의 부모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말하지 못하고,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 아이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 부모가 하는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소경 되었던 그의 아들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을 아노라 하니 그 아들이 대답하되 나는 그가 죄인인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었는데 그가 내 눈을 뜨게 하여 지금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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