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라,

제라늄A 2024. 11. 16. 06:16

마태복음 22:15~22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 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 가니라,

성경은 모두 오늘에 있을 일을 예표와 예언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표가 되고 전개되는 사건은 예언서가 됩니다. 성경은 “비유비사로 봉해진 말씀으로 성경기록 당시인물이나 사건을 놓고 오늘에 있을 일을 예표와 예언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성경은 반드시 오늘에 대한 “비유비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인물로는 예수님이 나오고 외식하는 유대종교 지도자 바리세인이 나오며, 사건으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모두가 오늘에 있을 예표와 예언서로 문자 속에 “안“밖으로 감추어 놓은 오늘에 대한 “비유비사”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하여 예수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 바리세인들이 하는 질문은 예수님이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게 되어있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셋돈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면 하나님께 걸리고,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면 “가이사”에게 걸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셋돈을 내게 보이라고 하시며 “이 형상의 글이 뉘 것이냐라고 말씀하시며 “가이사 형상”과 글이 새겨진 것은 “가이사”에게 드리고 “하나님형상”과 글이 새겨진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이 시험을 지혜롭게 넘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 속에 “큰 비밀”이 감춰 있습니다. 이 “큰 비밀”을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이 비밀을 깨닫는 목사가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데나리온 동전은  하나님의 백성을 비유비사”로 말씀하신 것이며 “동전에 새겨진 것이라는 것은 곧 사람의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의 마음 가운데 세상 것이 들어있으면 즉 “가이사 형상”이 마음 안에 새겨진 자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마음 가운데는 오늘날 기독교목사로부터 “가이사 형상” 즉 세상의 것을 새기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지옥”으로 들어가고,  오늘날 “실존예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고 있는 자들은 모두 천국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말씀은 모두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있을 일을 예표와 예언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은 “안팍으로 봉해진 말씀으로 성경기록 당시 인물이나 사건을 놓고 오늘날 기독교에 있을 일을 예표와 예언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성경은 반드시 오늘에 대한 “비유비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기록은 모두가 오늘에 있을 예표와 예언서로 문자 속에 “안팍으로 감추어 놓은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비유비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필자는 성경이 문자 속에 깊이 감추어진 오늘에 대한 “비유비사”임을 수없이 전했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계속 흘러간 지난날의 문자로만 읽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는 말씀에  외식하는 유대종교 지도자들 바리세인들이 당시에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도록 시험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모습을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거룩한 복장을 하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구약성경에 기록된 문자적 경건한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의 참 뜻을 깨닫고자 하는 사유는 전혀 없이 오직 구약성경 문자에 갇혀서 문자가 가르치고 있는 경건한 복장과 경건한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이 “영안이 없어서 육안으로만 문자 그대로 읽을 수밖에 없는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영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안쪽”으로 기록된 말씀은 “영안이 있어야만 그 성경의 참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안쪽”으로 기록된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은 “죄 사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같이 “영안이 있어야만 그 성경의 참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린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 된 실존예수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영적눈이 없이 육적”눈만 가졌으므로 성경을 겉모습 문자대로만 읽고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는 자들이 모두 바리세인이요, 외식하는 율법주의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속은 텅텅 빈 수박 겉핥기만 하면서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기독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