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복음 해설 2

도마복음 65 절, 소작농에게 포도원을 맡기신 하나님

제라늄A 2018. 7. 11. 09:45

 

                   소작농에게 포도원을 맡기신 하나님 ” 

도마복음 65절, 예수님께서는 어떤 선한 사람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경작자들에게 그들이 그 안에서 일하고 그가 그들로부터 열매를 받을 수 있도록 맡기고 떠났다. 그는 경작자들이 그에게 포도원의 열매를 주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종을 보냈다. 그들은 그의 종을 잡아 그를 때리고 그를 거의 죽게 하였다. 그 종은 와서 그의 주인에게 전했다. 그의 주인이 아마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종을 보냈다. 경작자들은 이 종도 때렸다. 다음에 주인은 그의 아들을 보냈다. 그는 아마 그들은 나의 아들을 존경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포도원의 상속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 경작자들은 그를 잡아 죽였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상기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원은 하나님의 교회를비유하며 포도원을 소유하신 분은 하나님을 말하며 농부는 하나님의 교회를 관리 하는 기독교목회자들을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소작으로 내어주고 추수 할 때 소출의 일부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추수 때 농작물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소출한 열매를 받기 위해 그의 종을 보냈고 농부들은 마땅히 포도원에서 거둔 농작물을 주인에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에게 소출한 열매는 드리지 않고 그 종을 때려 거의 죽게 만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를 운영하시는 기독교목회자들에게비유로 하시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경종을 울리는 말씀으로 깊이 묵상하시며 생각하셔야 합니다. 본문말씀 그들은 그 종을 붙들고 때려 거의 죽었느니라, 그 종이 돌아와 그 주인에게 고한지라 그의 주인이 말하기를 아마 그들이 내가 보낸 종 인줄 몰랐을 것이다 하고 다른 종을 보내었으나 그 농부들이 마찬가지로 그 종도 때렸느니라, 이 말씀은 농부들은 주인에 보낸 종에게 수확한 소출은 주지 않고 오히려 종을 때려서 거의 죽에 만든 것입니다. 그 종은 집으로 돌아가 그 사실을 모두 주인(하나님)에게 그 사실을 모두 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아마 그 농부들이 내(하나님)가 보낸 종이라는 것을 잘 몰라서 또 그렇게 하였겠지 하고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들은 먼저 보냈던 종에게 행했던 것과 같이 주인이 보낸 또 다른 종도 때려서 거의 죽게 만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이런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읽으실 때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기록했을까를 깊이 묵상하시면서 깨달으셔야 구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이 보낸 종은 하나님이 파송한 선지자들이고 선지자들을 때리는 농부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를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그 주인은 그의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아마 그들이 나의 아들을 보면 공경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농부들은 그가 포도원의 상속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을 붙잡아서 죽였도다 여기 두 귀가 있는 자는 누구든지 잘 들어라, 이 말씀은 포도원 주인이 소출을 받기 위해 보낸 종들이 모두 매를 맞고 빈손으로 돌아오니 주인(하나님)은 할 수 없이 하나님의 아들예수를 보내며 농부들이 상속자인 내 아들예수는 공경할 것이라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아들예수님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상속자인 하나님의 아들예수님까지 붙잡아 때려서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두 귀가 있는 자는 잘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지 깊이 잘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말씀이 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지를 감지하셔야만 합니다. 오늘날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할례받은 귀가 없으면 이런 말씀을 보아도 무슨 말씀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의 아들은 오늘날실존예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상속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실존예수님을 직접 유대교 때나 오늘날 기독교에실존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은 구원자로 오신실존예수님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파송한 선지자들을 돌로 치는 자들은 유대교와 제사장들과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을 말합니다. 유대교 제사장들이 선지자와 예수님을 돌로 치는 이유는 자신들의 교권과 재산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와 교인들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예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계속되는 일이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도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똑같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지도자들이 받을 재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8:11-13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땅의 상고들이란 오늘날 기독교를 상대로 하여 많은 이익을 남겨 큰 부자가 되어버린 기독교 목회자들을"비유"로 말합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을 보면 눈이 열린 사람들은 기독교의 말세가 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멀지 않아 상인(목사)들이 부를 축적하고 사치를 즐겼던 만큼 갑절로 애통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한 것으로 상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심히 크고 엄중한 재앙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말씀)을 파는 상고들이 이렇게 애통해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장사가 잘되어 많은 이익을 남겼고 사치하며 잘 살았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이 보장되었던 기반들이 완전히 무너져 더 이상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비관하여 울며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들의 영혼들,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목사들은 이런 말씀을 보아도 무슨 말씀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학교를 나와 목회를 하지 상기의 말씀을 이해하는 목사가 있다면 천만금을 줘도 목회는 절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사후에 받을 재앙은 영혼들을 죽인 죄의 값으로 아마 상상을 초월할 수 없는 형벌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은 종교적인 장사꾼들이 장사를 하여 큰 부자가 되었던 상품들의 목록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금은보석"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요, 장사꾼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다 조미료를 첨가해서 맛이게 육의 양식으로 만들어 사고팔면서 많은 이익을 챙겼고 사치와 부를 축적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들을 사고팔았습니다. 옷이란 뜻은 목사들의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말하며 기독교적인 장사꾼들인 목회자들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분과 직책들이 상품이 되어 사고 팔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의 참상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니 어찌하여 이와 같이 큰 기독교계가 불탄 성과 같이 되어 진귀한 상품들은 모두 소실되어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고 사방에서는 고난과 환난으로 탄식하는 소리와 절망과 좌절에서 나오는 한숨소리만 가득한 기독교계가 되어버렸다며 어안이 벙벙한 모습들을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몰라서 그렀지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목회자들이 현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기의 본문 말씀에두 귀가 있는 목회자는 잘 들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