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과 율법

예수께서 십자에서 폐한 의문의 계명과 율법(아주중요)

제라늄A 2018. 10. 16. 21:41

                ※  예수께서 십자에서 폐한 의문의 계명과 율법  ※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에베소서 2장에 기록된 말씀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모두 폐하셨다고 주장을 하며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더 온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폐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기독교이며 목사들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2장에 예수님께서 폐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아니라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은 에덴동산의 간교한 뱀과 같이 에베소서에 기록된 말씀을 변형시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십자가에서 모두 폐하셨다고 거짓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해서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의 진실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15-16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을 자기 육체(예수님)로 폐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원수 된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을 십자가로 소멸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목회자들이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자기 십자가에서 폐하셨다고 거짓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대손손 영원토록 지키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않고 기독교가 만든 “신학교리”와 법 그리고 신조나 유전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폐하신 것은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아닙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에베소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문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문”이라는 단어의 뜻은 원문성경에 “도그마”로 기록되어 있으며 단어의 뜻은 교회의 “교리와 법, 신조, 교조”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의문”의 뜻은 하나님이 만드신 “계명과 율법”이 아니라 기독교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들어놓은 기독교의 “신학교리”와 법(짝퉁) 그리고 신조와 유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의문”이라는 것은 거짓을 진짜같이 만들어 지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폐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은 즉 기독교의 신학 교리와 법과 유전들을 폐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은 하나님의 진짜 계명과 율법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생명의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을 대적하고 핍박하고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교회에서 만들어 지키고 있는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곧 각종 “신학교리”와 법과 유전들을 상기의 말씀에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폐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아니라 기독교목사들이 만들어 지키고 있는 “의문에 속한 교회의 계명과 신학 교리와 유전”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목사들은 지금도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모두폐하셨다고 거짓증거를 하며 의문”에 속한 기독교의 신학교리”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모두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문에 속한 계명과 율법을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6:1~6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 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상기의 말씀은 사도신경을 근거로 한 그리스도 도의 초보적 신앙으로 지금 기독교에서 행하고 있는 “신학교리”이며 법이며 그리고 신조이며 유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에 속한 교리와 유전”들은 그리스도 도의 초보적 신앙으로 “죽은 자”들이 행하는 것이라고 지적을 하시면서 이제 “의문을 버리고 완전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진리 곧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으로 나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의문”을 버리지 않고 계속 의문”을 지키는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 없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본래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4세기 말경에 존재하던 “루피누수와 암브로시우스”가 기록한 문서에서 발췌하여 천주교회에서 세례 문답을 할 때 사용해 온 것이라 전해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에 기록된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문에 속한 교리와 법과 신조와 유전”들은 사도신경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지키며 행하고 있는 “의문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어떻게 다른지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속- 

※ 골로새서 2:14~16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성경문자는 구원이 아니고 인간의 죄를 드러내주는 율법임에도 구원이라고 착각하며 열심히 성경문자에 매달려 달달 외우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나 성경은 인자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9) 이는 성경문자의 계명을 아무리 지켜도 그것은 영생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그 예수님을 만나야 영생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을 만나야 구원일까요? 하나님은 이시기 때문에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예수를 보내시는 것입니다(계1:8)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은 성경문자를 풀어주실 분이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안과 밖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중에서 일부) ※

※  마태복음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모두 이루어지리라” ※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