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8:3-5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의 뜻은 무엇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비유비사“입니다. 때문에 이제 “어린아이”도 뜻으로 풀어야 합니다. 만일 대다수 어떤 사람들처럼 성경이 비유임을 외면하고 철저히 문자주의로 본다면 “어린아이”에게만 말씀을 나타내시고“어린아이” 가 천국에 간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 자신도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말씀도 깨닫지 못해야 되고 천국에서도 불청객이 되고 말 것이니 이게 말이 되겠는가? 굳이 왜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가 하면 사람들은 또 필자의 비유를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죄도 짓지 아니한 천사 같은 존재이니 이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단순하게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어린아이”는 어떤 자인가? 이는 예수님을 일컬어“어린 양”이라고 하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말씀을 깨닫는 차원에서 예수님처럼 어린양이 되어야 하고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왜 성인은 안 되고 어린이 여야만 하는가? 성경은 어디를 읽어보아도 첫 것(어미)은 안 되고 둘째(어린 자식)가 승부수입니다.
창세기의 아담은 첫사람을 상징하고 하와는 둘째사람을 상징합니다. 성경전체의 말씀 중에는 인물들과 사물들이 둘씩 짝을 지어 등장하는데 모두가 둘째가 승리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했을 때 둘째 아담이 승리함으로 살려주는 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이렇게 모두 둘째가 승리 했고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둘째가 승리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지점에서 반드시 깨달아야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장자도 “나”이고 둘째도 “나”라는 점입니다.
즉 구원받지 못할 겉 사람도“나”이고 구원받을 속사람도“나”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촉구함으로써, 처음에 내가 물로 났을 때는 기성교단의 초림 주 백성(겉 사람)을 뜻하고 다음에 재림 주로 성령으로 다시 낳음을 받았을 때는 내가 택한 백성(속사람)을 뜻하는 이중적 존재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기존의 처음 비유의 말씀에서 벗어나 오늘의 재림주로 말미암아 그분이 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으로 깨달으면 그것이 곧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며 이렇게 새롭게 성령으로 거듭남이 있으면, 이를 어린아이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인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는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며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때 물은 초림주의 말씀이라면 성령은 재림주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생을 육적 출생을 말하지만 그리고 성경도 그러한 육적 출생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표면적 비유의 말씀이고 그에 대한 말씀은 육적 출생 속에 영적 출생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지해야 합니다. 영적 출생이란 육인 내가 어미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 태어남을 말함이 아니고 기성교단에서 복음을 받은 내가 오늘의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는 영적 출생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아주 귀히 여기심은 이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뜻하며, 그리하여 어린아이(거듭남)만이 천국백성이 되는 절대조건이라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실 초림 때는 어린양이 될 수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초림 주는 어미양인 것입니다. 처음엔 구원이 아직 아닌 비유의 말씀을 가져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 자신이 반드시 죽어 다시 부활하셨는데 그분의 육적 죽으심과 육적 부활의 뜻이 곧 영적 죽으심과 영적 부활한 어린양으로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곧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밟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의 육적인 장자인 겉 사람이 죽고 차자인 속사람으로 새로 태어나야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하며 새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겉 사람의 죽음을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종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누구든지 초림 주 예수를 영접하면 처음 기성교단에서부터 시작합니다(물로 남) 그리고 다시 재림주인 오늘날의“실존예수님”의 진리의 새말’씀으로 거듭나게 됩니다(성령) 이렇게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 새로난 자 그가 곧 예수님이 귀히 여기시는 “어린아이”의 참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천국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 출생하는 자 그가 곧 예수님이 귀히 여기시는“어린아이” 의 참 뜻입니다.
*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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