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 교회를 가야만 구원이 있는가? ※

제라늄A 2020. 5. 7. 06:22

                                                                                                                                          

 

                  교회를 가야만 구원이 있는가?                        

인간이 예수를 믿는데 있어 교회 안에 가두어둔 예수는 교회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것이며 또 인류의 것입니다. 마치 태양은 한 권력자의 독점물이 아니라 전 세게 전 인류의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누구나가 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은 누구의 간섭 없이 예수를 내 구주로서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에게 구원되기 위해서 우리들은 교회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태양의 빛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특별한 곳에 갈 필요가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들은 푸른 하늘 밑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몸을 태양 광선에 내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이 예수에게 구원받기 원하면, 내 마음을 비우고 그의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그 때 곧 구원받는 것입니다.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는 무슨 교회라고 하는 것 같은 그런 좁은 구멍 속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우주만큼 넓습니다. 인간이란 사람은 그에게 구원을 받으려고 원하면 직접 그에게 구원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임은 성경이 밝히는 바입니다.

 

예수를 교회 안에서 찾으려는 사람, 또 교회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그리스도, 인류의 구세주로 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필자가 보는 바로는, 예수는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 교회의 포로로서 존재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보다 약한 분이라서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를 자기의 독점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의 만민에게 그가 구세주로서 받아들여지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그리스도에 관하여 옛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한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오늘날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23:13)라고, 현대 교회는 예수를 자기 독점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그 구원에 참여하지 않고, 또한 사람이 그에 의해서 구원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만민에게 보급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를 교회의 손에서 빼앗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교회의 포로에서 해방시킨다고 하는 것은 그의 빛을 가리는 교회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교회를 제거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회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예수에게 이르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를 깨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예수는 교회의 포로에서 벗어나시어 곧장 만민을 비추시는 빛으로 작용하십니다. 나의 이 말은 결코 과격한 말이 아님은 서양 여러 나라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상태를 보면 잘 압니다.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기독교와 기독교회는 동일한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기독교가 있을 수 없고, 기독교라고 하면 반드시 교회를 받드는 종교로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기독교를 버리고, 교회를 버리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저버립니다. 기독교회를 떠나도 기독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똑같이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한 사람으로서 교회에 불만을 갖고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버렸다는 것은 기독교회를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만일 기독교회란 것이 없고, 그 교리와 교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일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얼마간의 선을 행했다고는 하나 그러한 성실과 인애의 인사를 몇 사람이나 무신론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일은 참으로 씻을 수 없는 죄과입니다. 이것은 모두 교회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해독입니다. 만일 두 개를 전혀 분리해버린다면 이 해독은 아주 제거되는 것입니다.

 

굳이 현재 있는 교회를 깨뜨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주의 진리이며, 그 참 가치는 교회의 유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야 사람이 교회를 저버려도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즉 물리학의 용어를 빌린다면, 복음을 교회에서 분리시켜 이것을 우주의 진리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그리스도를 교회 안에 밀폐해 두기 때문에, 많은 뜻있는 사람과 어진 사람들은 그를 모르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한탄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이른바 기독교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해독은 또 이것을 다른 방면에서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의 일치연합을 도모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늘 주장하는 일이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필자가 보건대, 교회만큼 교인의 일치연합을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 세계에 존재하는 기독교의 교파 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들어와서 분리된 것도 수십 개에 이릅니다. 똑같은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교회로 나뉘어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며 괴롭히고 있는 것은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고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몸을 찢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수는 군대입니다(5:9) 그리하여 그들 간에 일치가 없을 뿐 아니라, 보기 흉한 경쟁을 넘어 이전투구 그것입니다여기서 이제 자꾸만 교회 일치 연합이 외쳐지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부르짖고 한국에서 부르짖는데 참으로 교회 일치 연합은 교인에게 있어 가장 큰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연 실현될 수 있는 일인가? 이것은 매우 커다란 의문입니다. 사도 시대부터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온 문제가 과연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까지 그런 일치와 연합이 계획된 일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은 교회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사실 이상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추구해야 한다지만 교회 일치 연합은 과연 교인의 이상이며 그 미경이 아닌가? 또 일치 연합은 마침내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일이십년 후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은 누가 보아도 분명합니다. 또 혹 일치 연합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주로 교직간의 직무적인 일치 연합이며 교인간의 심령적인 일치 연합이 아님은 이 또한 추측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일 진정한 일치 연합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것은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 목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가 승인하는 바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미래의 일치 연합을 기대하여 우리들의 분리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 세상은 만사에 있어 신속한 진보를 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제자만은 백 년 후를 기대하여 그 일치를 기다려야 하는가? 나는 그러한 태만에 견딜 수는 없습니다. 나의 성공의 희망은 극히 희박한 미래의 연합을 기대하며 오늘의 분리, 경쟁, 질시, 반목에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를 떠나서 연합하려고 하면 연합은 곧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연합을 방해하는 것은 몰론 신도가 아니고 복음도 아닙니다. 연합을 방해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 하나님과 자아로 돌아가면, 그 때 연합은 곧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곤란한 것은 교인의 연합이 아닙니다. 교회의 연합입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연합을 기다려서 연합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인의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막는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그리스도를 바라면 사람은 교회에 의하지 않고 직접 그리스도에게 구원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교인의 연합을 방해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떠나 서로 합하려고 하면, 오늘 곧 합할 수가 있습니다. 칼라일이 말한 것처럼 참된 일치는 각자가 독립의 사람이 될 때에 옵니다. 사람이 자기 이외의 사람에 의해 서려고 할 때 분리와 싸움은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넓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역설처럼 들리겠으나 넓은 사람이란 고독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몸을 붙일 교파도 없고 보호를 의뢰할 당파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우주적인 동정이 있습니다. 인류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교회라는 무거운 짐을 내던지고 천진스러운 그대로의 참 자아가 되면 그 때 완전한 연합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밖에 다른 연합이 없는 것입니다. 참된 나를 가지고 하는 외의 연합은 모두 거짓 연합입니다. 정략상의 연합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한 연합이 아닙니다. 악마와 정치가에 의한 연합입니다. 우리들은 교회를 경유해서 연합하려 하지 말고 교회를 떠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각자에게 내리시는 성령의 천진함을 가지고 연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시편 118:22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누가복음 20:17~18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에베소서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베드로전서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원문출처:라일락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