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예수님

나무토막 속에 계신 예수님

제라늄A 2020. 10. 3. 20:46

 

예수님께서는  나무토막을 쪼개 보라 내가 그곳에 있고 돌을 들어 올려보라 너희가 그곳에서 나를 발견할 것이다 도마복음 77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의미를 모르면 정말 예수님이 “나무토막“속에도 계시고 “돌”속에도 계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도마복음서”가 이런 말씀 때문에 신학자들이 성경에서 “도마복음”을 삭제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마13:34-35)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모두 “비유 비사”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 13:10-17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저희는 2000년 전에 예수님을 이단으로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하는 말씀이 오늘날은 오늘날의 예수를 대적하는 기독교인들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의 말씀 속에 깊이 숨겨진 비밀을 실존으로 계시는 오늘날 예수님께서 풀어주시지 않는다면 이 말씀을 영원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무토막“은 무엇을”비유”한 것인가? “나무토막“은 나무를 쪼갠 죽은 나무를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어둠의 존재들을"짚, 풀, 채소, 나무"(사37:26-27) 이러한 것들을"비유"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둠의 존재로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죽은 자“들이라 하며 “나무토막“으로”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나무토막“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를 성경에서는 “죽은 자”라고 “비유”로 말합니다. 그러면 “죽은 자”는 누구를 “죽은 자”라 하는가?   마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이렇게 성경에서 “죽은 자”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인간의 존재를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무토막“을 쪼개면 예수님이 그곳에 있다는 뜻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인 “죽은 자”들이 소유한 “비 진리 신학”의 말씀을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나무를 쪼개고 깨트리면 그곳에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쪼개고 깨트리면 ”혼”의 존재인 인간이 “영”의 존재인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 말씀은 “유대교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던 유대인 죽은 자들이  예수의 음성을 들으면 죽은 자 유대인들이 예수의 실체로 부활하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죽은 자“들이”실존 예수님 “의”음성”을 듣는다면 “죽은 자”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로 부활되어 부활하는 것입니다.”음성”이라는 것은”실존 예수님 “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을”음성”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죽은 자”가”실존 예수님 “의“음성”을 직접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면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토막을 쪼개 보라 내가 그곳에 있다”는 말씀은 “나무토막”인 “죽은 자”로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소유했던 “비 진리”를 쪼개고 깨트리고 버리면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돌을 들어 올려보라" 너희가 그곳에서 나를 발견하리라, “돌”역시 땅바닥에 있는 “돌”이 아니라 “영적인 돌”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도 “죽은 돌”이 있고 “산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돌”은 “죽은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기독교 목사들의 말씀을”비유“로 말하며 “산돌”은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예수님 “의 말씀을”비유“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을 들어 올린다는 것은 생명의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나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예수”라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들이 ”산 자”인 “실존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고 살아나면 그때 영안이 열려 “실존 예수님”을 실제로 자신이 “예수”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성경말씀 속에 “비유 비사”로 감추어져 있는 난해한 말씀도 모두 “영안”이 열려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산자인 “실존 예수”와 대화를 하면서도 그분이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자신이 “죽은 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실존 예수님”을 실제로 그 말씀을 듣게 되면 누구든지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며 배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유대교 때도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구원하어 오셨으나 모두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실존 예수님”을 보고 이단으로 배척하며 결국은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이같이 오늘날도 “실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실존 예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산자“들은”실존 예수“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볼 수가 있는 것 같이 확실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말씀 ”씨“로 낳고 낳는 것입니다.”필자 새사람“도 예전에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이었으나 이제는 새사람으로 부활되어 “실존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이렇게 담대하게 매일같이 “실존 예수님”을 소개하며 “비유“로 기록된 “도마복음서”를 한눈으로 보고 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