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8:3-5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 상기의 말씀은“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의 뜻은 무엇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비유 비사”입니다. 때문에 이제 “어린아이”라는 뜻도 깊이 묵상하시면서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처럼 성경이 “비유 비사”임을 외면하고 철저히 성경을“문자”로 이해를 한다면 실제“어린아이”에게만 말씀을 나타내시고 “어린아이”가 천국에 간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 자신도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말씀도 깨닫지 못해야 되고 천국에서도 불청객이 되고 말 것이니 이게 말이 되겠는가?
굳이 왜 이런 말씀까지 해야 하는가 하면 사람들은 또 필자의 “비유”를 이상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죄도 짓지 아니한 천사 같은 존재이니 “어린아이”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단순하게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어떤 자인가? 이는 2000년 전 예수님을 “어린양 예수”라고 하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말씀을 깨닫는 차원에서 예수님처럼 “어린양 예수”가 되어야 하고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왜 어른은 안 되고 “어린아이”여야만 하는가? 성경은 어디를 읽어보아도 첫 것은 안 되고 둘째가 승부수입니다. 성경 전체의 말씀 중에는 인물들과 사물들이 모두둘씩 짝을 지어 등장하는데 모두가 둘째가 승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했을 때 둘째 아담이 승리함으로 살려주는 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이렇게 둘씩 짝을 지어 나오는데 모두 “첫째”가 아니라“둘째”가 승리 했고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과 사물들이 둘씩 등장하지만 모두 “둘째”가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지점에서 반드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첫째”도 “나”이고 “둘째”도 “나”라는 점입니다. 즉 구원받지 못할 겉 사람도 “나”이고 구원받을 속 사람도 “나”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촉구함으로써, 처음에 내가 “물”로 났을 때는 기독교의 유대인의 예수를 믿음을 말하고, 다음에“성령”으로 낳음을 받는 것은 오늘날“실존 예수”를 영접하므로 다시 낳음을 받았을 때는 내가 택한 백성을 뜻하는 이중적 존재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다시 말해 내가 기존의 처음“비유”의 말씀에서 벗어나 오늘의 “실존 예수”로 말미암아 그분이 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으로 깨달으면 그것이 곧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며 이렇게 새롭게 성령으로 거듭남이 있으면, 이를 “어린아이”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인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는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며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때 “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먹는 말씀을 말하며 “성령”은 오늘날“실존 예수님”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출생을 육적 출생을 말하지만 그리고 성경도 그러한 육적 출생을 기록하고 있으나, 그것은 표면적 “비유”의 말씀이고 그에 대한 말씀은 육적 출생 속에 영적 출생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지해야 합니다. 영적 출생이란 육적인 내가 어미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 태어남을 말함이 아니고, 기독교에서 복음을 받은 내가 오늘의 진리의 새 말씀으로 다시 거듭나는 영적 출생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아주 귀히 여기심은 이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뜻하며, 그리하여 “어린아이”만이 천국 백성이 되는 절대조건이라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구원이 아직 아닌 “비유”의 말씀을 가져오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 자신이 반드시 죽어 다시 부활하셨는데 그분의 육적 죽으심과 육적 부활의 뜻이 곧 영적 죽으심과 영적 부활한“어린양예수”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곧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밟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의 육적인 “장자인 겉 사람이 죽고 차자인 속 사람”으로 새로 “어린아이”로 태어나야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하며 새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육적인 겉 사람의 죽음을 성경에서 말하는“마지막 종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 새로 난자 그가 곧 예수님이 귀히 여기시는 “어린아이”의 참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천국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 출생하는 자 그가 곧 예수님이 귀히 여기시는 “어린아이”의 참 뜻입니다. 예수께서 “젖먹이 아이”들을 보시고 그의 제자들에게 천국은 “젖먹이 아이”와 같은 자들이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같이 오늘날도 “실존 예수님”이 계셔야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영접해야 모든“죄”가 사해질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이 씻은“정결한 처녀”와 같이 마음이 깨끗하게 된“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가감된“거짓 신학”과“기복신앙”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날마다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회개”를 해도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변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죄”를 씻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잘못을 회개한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늘날 살아있는“산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인“실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생명의 말씀”으로만 “죄”를 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산 자”의 말씀은“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먹으면 “죄”를 씻는 것은 물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말씀 즉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의 말씀은“생명”이 없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씻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혼”의 존재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영”이 없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아주 중요하고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산자 실존 예수님”이나 거듭난 사도들이 꼭 전해야 그 말씀으로만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다 같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변화를 받지만 기독교“신학”은 신학 박사라 해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은 그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과 똑같다 해도 그 말씀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목회자들이 전하는 “죽은 자”들의 말씀인“신학”은 기독교인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죄”를 씻는다는 것은 곧“죄 사함 ”을 말하는데 “죄”는 유대교 제사장들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의 말씀으로 절대로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죄”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거짓된 미련을 버리고 진리를 찾아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참 목자”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으로만 “죄”가 사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실존 예수님”을 영접한 제자들이“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 사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대교 때“제자들” 앞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당시에“제자”들이“실존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사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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