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25 진실 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육신의 생명은 "죽은 자"라(마8:22)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실체가 곧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요 1:1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하나님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인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 행하면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지를 못하고 예수를 믿다가 죽습니다. 듣지 못하니 행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고, 듣고, 행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을 반드시 “믿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행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이행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이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어야 하는 구원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 예수를 기독교인들은 믿어야 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는 어떤 예수인가? 예수는 세 종류의 예수가 있는데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예수가 있고, 그리고 오늘날 현재의 한국인의 “실존 예수” 그리고 미래에 구름 타고 오실 예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천년 전에 오셨던 과거의 유대인의 예수와 미래에 오실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에 한국에 와 있는 오늘날 한국인 “실존 예수”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날 현재 존재하는 기독교인들을 구원할 예수는 과거의 예수도 아니고 미래의 예수도 아니며 현재의 한국 기독교인들 앞에 있는 한국인 “실존 예수”가 구원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어야 할 현재 “실존 예수”는 부정을 하고 배척을 하며 이단으로 몰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전혀 관계없는 2000년 전 과거에 오셨던 유대인 예수와 앞으로 구름 타고 나타날 미래의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는 “우상 예수”를 믿고 있으면서 현제 한국에 “실존 예수”는 믿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천 년 역사 속에서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우상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당시 그 당시 “실존 예수”를 믿었던 사람은 “12제자”들이었고 제자들은 그 당시의 “실존 예수”를 믿었기에 구원을 받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예수가 오늘날 실제적인 현재 예수일까? 현재 “실존 예수”는 영적으로 나를 살리면 그가 바로 현재 예수입니다. 지금 내가 죄인이고 죽은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죽어있는 지금 내가 살아나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 내가 병에 걸려서 죽게 생겼는데 과거에 왔던 예수나 다시 앞으로 나타날 예수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 영적으로 죽어 가는 나를 고쳐 주는 것이 “예수”이고 구원자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사람도 많고 자신이 예수라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수라면 내 병과 내 영혼을 책임지고 죽어가는 내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가 아닙니다. 현재 “실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내가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살아나고 있다면 그가 다른 사람의 예수는 아니어도 그는 나의 구원자 예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실존 예수”의 말씀을 믿고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거듭나서 예수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양의사"가 좋으냐 "한의사"가 좋으냐 따질 것이 아니라 내 병을 고쳐주면 그것이 "의사"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병도 내 영혼을 살리면 그가 구원자입니다. 목사가 됐든 스님이 됐든 무엇이 됐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치료가 되고 살아나는데 이단인지 삼단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막연히 믿을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나를 영적으로 살릴 수 있는 “실존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에 실존하는 예수가 나를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현재의 “실존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실존 예수”가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에 말씀을 주시기에 그래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실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이라야 합니다. “음성”은 현재 존재하는 구원자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음성”이지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음성"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음성”은 지금 살아 있는 “실존 예수”가 전하는 말씀을 "음성"이라 합니다. "음성"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을 들으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 모르는데 "음성"을 듣고 말씀을 들으면 행해야 할 것을 명확히 알려 주기 때문에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음성"을 듣고, 말씀대로 행함을 통해 아들이 될 때까지 변화를 받아 거듭나는 것입니다. 즉 현재 “실존 예수”를 믿는 다해서 모두 거듭나는 것은 아니라 현제 “실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직접 듣고 믿고 행하는 사람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실존 예수”를 만나서 말씀을 듣기까지는 하는데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듣는 다면 절대로 거듭나지 않습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하면 천국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보는 이유는 행하기 위해서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지식입니다. 이 천년 전의 예수가 왜 예수인가 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를 살리기 때문에 예수인 것입니다. 자기가 구원자라고 해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면 예수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예수든 아니든 상관없이 죽은 영혼을 살리면 그가 예수인 것입니다. 지금도 누가 내 영혼을 살리면 그가 예수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고 오직 그 심판을 아들 예수에게 모두 위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실존 예수"가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 한 자가 예수입니다. 이 예수가 심판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권세를 모두 예수에게 위임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아들 예수를 공경하게 하기 위해서 심판의 권한을 모두아들 예수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를 하나님과 같이 동등하게 공경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의 권한을 아들 예수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고 예수는 육체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처럼 공경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 심판의 권세를 오늘날 “실존 예수”에게 모두 넘겨줬으니 아들을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들어도 행치 않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아들 예수는 공경하는 공경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기독교인들이 거듭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실존 예수”가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모르기에 아들을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서 오늘날 구원자로 세운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들, 현재의 아들 “실존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을 믿지 않고서는 기독교인들의 영혼이 살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아들을 하나님처럼 믿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몸 안에만 계십니다. 그래서 아들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 예수는 이리 보아도 사람이요 저리 보아도 사람이요 아무리 보아도 사람처럼 보이지 하나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믿음이고 믿는다 말하면서 실제로는 믿지 않고 있으니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예수는 하나님과 같이 믿어야 기독교인들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모두 아들 인간예수님에게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공경치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것이고 아들을 공경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도 공경을 하는 자입니다.
입술로만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아들 인간 예수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 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들 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다면 그것은 아들이 아니며 구원자 예수도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들었기에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요 5: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보면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옮겼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그것은 바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듣는 것은 다 같이 듣지만 듣는 다고 모두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듣고 어떻게 믿느냐? 심판의 권세를 가진 “실존 예수”의 말씀을 하나님처럼 들어야 합니다. 아들을 하나님처럼 공경하는 자, 그 자가 아들을 하나님처럼 믿고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입니다. 기준은 여기에 있습니다.
아들의 말씀을 듣긴 들어도 믿긴 믿어도 하나님처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믿어도 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믿고 공경하는가? 공경의 척도는 무엇으로 측정하는가? 공경의 척도는 행함으로 측정합니다. 100% 믿고 공경하는 자는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하지 않는 자는 10% 단 1%도 믿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고, 들은 결과는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필자 새사람의 글을 읽으시고 댓글을 달고 공감을 누르시는 몇 분들은 행 할 때 믿는 자요, 듣는 자라 하는 것입니다. 곧 공경하는 만큼 듣고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말씀을 읽고 깨닫기까지는 하는데 행하기까지는 안 되느냐 하면 공경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심판의 권세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아들이 심판을 언제 하느냐? 지금 현제 이 말씀이 심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이 구원을 시키고 있는 것이고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이 심판이요 말씀이 구원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읽고 행하는 자는 구원이요, 행치 않는 자는 모든 것이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고 들은 결과가 행함이고, 행한 것이 생명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