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고정관념”이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이 말은 “고정관념”이 머릿속(틀)에 꽉 박혀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들은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고정관념”은 인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느낀 감정이 자기 속에 상념이 되고 상념이 고정되어 인간들의 생각 속에 정착되면서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정관념”이라는 말은 요지부동이 된 자신의 생각을 뜻합니다. 이 “고정관념”은 어느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자기적인 주관적 “고정관념”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듣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익힌 자기의 주관적 요소이며 이것이 곧 자기 존재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집착 속에서 하나하나 경험하고 익혀서 그것을 쌓아 각기 가지고 있는 이 “고정관념”을 “자아”(自我)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이렇게 이 세상으로부터 만들어진 “고정관념”이 “자아”적 존재가 된 것이며 이것으로 무장하여 지금도 이 세상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형성된 자신의 “고정관념”은 결국 어느 것에도 양보될 수 없는 자신의 것이 되고 자기의 아성이 되는 것이며 이것을 가리켜 자기의 틀 속에 갇혀있는 자신의 “고정관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혀서 그 범주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어려서부터 새장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새가 그 새장 속을 뛰쳐나와 드높은 하늘을 한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그 새장 속의 삶이 전부인양 착각하면서 살다가 죽어가는 가련한 한 마리의 새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기의 “고정관념” 속에 자신이 갇히게 되는 것이며 이 “고정관념”이 자신의 함정이 되어 그 함정 속에서 한번 나와 보지도 못하고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살다가 결국 허무하게 인생을 마무리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정관념”은 바로 이 세상 속에서 “욕심과 탐심”으로부터 만들어진 인간의 허욕과 교만의 실체이며 이것이 곧 자신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각자들이 마음을 비우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세상 욕심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을 없애라는 말이며 그 욕심과 교만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고정관념”을 벗어 버릴 때에 이 세상 번뇌 망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참 자유인이 되어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자유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자가 각자의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인들의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 올바른 사람이 되고자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시작한 사람들의 신앙생활이 언제인가부터 변질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더 악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욕심과 탐심”으로부터 만들어 놓은 자신의 틀을 신앙을 통해서 더 견고하고 더 높게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더 이기적이고 더 교만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처음부터 기독교에 입문해서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 “신학교리”에 굳어져 자기의 신앙으로 다져진 “고정관념”이 틀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고질적인 신앙으로 형성된 것이며 세상 교회들은 이렇게 욕심으로 변질된 “신학 교리” 신앙을 사수하는 목회자들로 형성되었고 이렇게 견고히 만들어진 “신학 교리”에 의한 신앙의 틀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도 부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성경에서는 마귀에게 “인친 자”라고 하는데 특히 목회자들은 목사 안수를 받는 순간 “인침”을 맡기 때문에 한번 마귀에게 “인침”을 받으면 구원의 대상에서 영원히 제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내 말이 너희 안에 도무지 들어갈 틈이 없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이 세상과 세상 종교로부터 견고하게 만들어 놓은 자신들의 이러한 “고정관념”의 틀을 부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신학교리”의 틀을 만들었고 그에 따라 각종 수많은 “교단과 종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들은 그들이 만든 주관적 “신학 교리”에 의하여 각각 분열되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른 수많은 종교적 교파와 교단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렇게 교리화, 제도화된 기독교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교리와 제도의 “고정관념” 틀 속에 가두어 놓고 교육과 훈련으로 무장시키면서 자기들만이 올바른 신앙인이요, 정통 보수라고 주장하며 타 종교나 타 교파들은 불신하면서 “이단”(異端)으로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 종교나 타 교파들은 자기들의 “신학 교리”기준에 의하여 “이단”으로 정죄의 대상이 된 것이며 자연적으로 이 세상에는 자기 기준이 정통 보수 기독교가 자생됨으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 “이단”들이 도처에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 교회의 “이단”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성경적 “이단”이 아니라 인간 기준의 “신학 교리”적 “이단”들인 것입니다.
성경적 “이단”이란 하나님의 오류 없는 말씀을 인간들이 가감하여 만들어낸 각종 교리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을 가지고 인간들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교리를 만든 그 자체를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회들은 교리적 제도의 틀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둬놓고 신앙 훈련으로 무장시킨 것이며 이렇게 “신학”교리로 무장된 하나님의 교회들은 결국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실존 예수” 마저도 배척하고 그를 “이단”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학 교리”와 신앙의 틀은 오늘날 무서운 악의 실체로 나타난 것이며 이로 인하여 상호 간 교리에 의한 투쟁과 종교 간의 “아마겟돈”교리 전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고 이 교리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으니 이 모두가 하나님의 참 뜻을 모르고 오직 자기의 욕심에서 비롯된 양보될 수 없는 틀에 꽉 박힌 “고정관념”이 부른 화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현세의 기독교회들은 각기 자기의 “신학”교리로 무장하고 그 교리들을 사수하면서 기독교의 “신학 교리”를 진리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식화 된 기독교의 “신학 교리”(사람의 계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게 된 것이며 이 교리에 의하여 예수님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보수 기독교의 “신학 교리”는 예수님과 열 두 사도까지 죽이게 된 악의 근본 실체인 것입니다. 이렇게 “혼”에 속한 자들은 “영”에 속한 자들을 대적하여 무참히 죽였으며 이러한 사건은 최초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아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하며 인간들 안에 지금까지 쌓아 올린 틀에 박힌 “고정관념”과 욕심으로 꽉 차 있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이렇게 인간들은 지금까지 자신도 모르게 쌓아놓은 세상의 틀과 신앙의 틀을 과감히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무장하여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오류 없는 말씀의 터 위에 생명의 말씀으로 새롭게 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현하는 것만이 기독교회가 사는 길이요 곧 내가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이 세상으로부터 쌓아 만든 기독교인들 안의 “고정관념”의 틀인 바벨탑과 견고한 바벨론 성을 모두 헐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새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해야 합니다. 요 2:19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 이렇게 잘못 지어진 자신의 성전을 하루속히 헐고 오늘날의 예수의 말씀으로 다시 짓는 것만이 기독교인들 모두가 사는 길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로 향하신 뜻인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