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 눈에 보이는 성경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성경 ※

제라늄A 2022. 3. 14. 20:36

계시록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 하였더라,   성경책을 “일곱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 외에는 아무도 열을 수 없도록 자물쇠로 채워 났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성경”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성경”이렇게 두 권으로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기록한 “보이는 성경”은 일상용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깊이 감춰 놓으셨기 때문에 아무나 열어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형체는 “육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이 “육과 혼”으로만 구성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육과 혼”이 거듭나 “육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과 혼”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보이는 성경”은 읽을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성경”은 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은 “보이는 성경”은 물론 “보이지 않는 성경”도 모두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과 혼”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요, “육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나는 것은 “혼”의 생명에서 “영”의 생명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예수”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니 천국을 소유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막 4:11-1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제자)에게는 주었으나 저희(유대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한 말씀을 모두 “비유”로만 말씀 하셨습니다.  마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어찌하여 저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유대인)에게는 아니 되었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하니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2000년 전 유대인들과 똑같이 오늘날 “실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대적하는 자들을 “저희”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하게 “비유”로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유”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저희”들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 5:2-5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이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요한)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 말씀을 보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기록한 책이 있는데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이 책을 “계시”를 받아 기록하면서 천상천하에 펴서 열어볼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광경을 본 사도 요한이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봉해져 있는 책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성취되어야 할 사건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면 크게 울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일곱인”으로 봉해진 성경을 신학자들이 열어서 “신학”을 만들고 그 “신학”으로 기독교목사들을 양성하여 교인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비 진리”라는 것을 지각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선지자들과 제자들이 “안팎”으로 “계시”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므로 “밖”으로 기록된 말씀은 “육(肉)과 혼”(魂)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보이는 성경”은 볼 수 있으나 안쪽으로 기록된 “보이지 않는 성경”은 절대로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안팎”으로 “비유”로 감추신 근본적인 원인은 창세기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1:7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물”이라 “비유”하는 것입니다.  요 4:14 예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물”이라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기의 하나님의 말씀을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궁창 아래의 물”은 “어둠”이며 “비유”의 말씀이기 때문에  “비유”의 말씀을 깨달으면 “궁창 위의 물”이 되며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궁창아래의 물”은 “비유”의 말씀으로 “땅”의 세계요 “어둠”의 세계입니다. 반면에 “궁창 위의 물”은 “비유” 말씀이 해독된 “하늘”의 세계요 “빛”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오늘날 “육(肉)과 영”(靈)으로 구성된 오늘날 “실존 예수”를 만나야 “궁창 위의 물”을 마셔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악한 “어둠”의 권세아래 있기에 아무리 마셔도 “육과 혼”의 존재의 죄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구원을 받으려면 오늘날 “궁창 위의 물”을 주시는 오늘날 “육과 영”으로 구성된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해야 “궁창 위의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마셔야 할 물은 “궁창 위의 물” 참 빛 되시는 “육과 영”으로 거듭난 사람을 만나 신령한 영생수를 마셔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요 2:9-10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궁창아래의 물”을 먹고 취한 자들은 이 좋은 “궁창 위의 물” 포도주의 맛을 모르지만 인간이 “육”의 생명에서 “영”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좋은 포도주”의 맛을 이미 느끼고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생명에서 “영”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이 맛을 느끼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 “궁창위의 물”을 마셔야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고 죄로부터의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오늘날 “육”의 생명에서 “영”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 오늘날 “실존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궁창 위의 물”을 마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나는 “궁창 아래의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궁창 위의 물”로 “성령세례”를 줄 것이라고 합니다(마3:11)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궁창 위의 물”을 마실 수 있는가?  그것을 “수가 성 사마리아 여자”을 통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날마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날마다 “궁창 아래의 물”을 길어먹었지만 계속해서 갈증을 느끼다 우물가에서 “실존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아무리 먹어도 갈증을 느끼는 것은 “궁창 아래의 물”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의 일방적인 설교말씀만 먹었기 때문에 항상 갈증이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수가 성 여자”(인간)한 사람을 국한시켜서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수가 성 여자”(인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6일 천지창조”에서 첫째 날부터 물고기와 짐승들을 지으시고 다섯째 날에 “여자”의 영적 상태인 인간을 지으시고 “남자”의 영적 상태에 있는 예수를 지으셨는데  “수가 성 여자”는 마지막 날에 창조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자”의 영적상태에 있는 자로서 “세례 요한”과 같은 똑같은 영적 상태를 소유한자입니다.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라는 것은 “여자”의 영적 상태인 인간에서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기 직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가 성 여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한 처녀”로 “신부”로 준비되어 “신랑 예수”를 만나 구원을 받으라는 그림자로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수가 성 여자”의 전남편이 “5명” 있다는 말은 창조 “여섯째 날”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가 신부 단장한 인간이 “신랑 예수”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궁창 위의 물”이고 생수이고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요4:34) 이 양식은 일용할 양식인 주기도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양식이고 이것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정결한 처녀”로서 기름(성령)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가 되어 “동정녀 마리아”같은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하늘의 신랑과 실제로 혼인이 되어야 “육(肉)과 영”(靈)으로 구성된 사람의 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