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영생의 과정

“마귀”는 어떻게 멸할 수 있는가,

제라늄A 2022. 5. 8. 17:56

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예수)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니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  인간의 생명은 “혼”(魂)의 생명입니다.​ 인간은 “육”에 속해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육신은 껍데기요 육신은 “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요 육신 안의 “혼”의 생명이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이 “혼”의 생명이 하나님의 “영”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혼”의 생명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이 “혼”의 생명이 “영”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계속 영원한 “지옥”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혼”의 실체가 바로 “귀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생의 삶에서 “혼”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현생에서 자신의 모든 삶을 혼신을 다해 내생인 천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한다면 반드시 “혼”의 생명에서 “영”의 생명으로 내생인 천국으로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옥”(地獄)이란 “땅”(地)에 갇혀있다는 것으로 “육신”에 갇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자는 “지옥”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천국”이란 “지옥”에서 벗어난 자를 말하며 “육신”에 속한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영”의 존재로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예수”이며 천국인의 실체는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의 실체이며 “혼”은 육신의 집에서 왕 노릇하며  죄의 종노릇 하며 살기 원하고 안간힘을 다 쓰면서 무너지려 하지 않는 것이 “혼”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는 육신의 죽음으로 “육”과 “혼”이 분리됨으로 “혼”이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지옥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없이 “혼”의 존재로 오고 간다면 그 “혼”의 존재는 “귀신”의 존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가 있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의 세계가 있습니다. 또한 “영”의 세계는 “육”과 “혼”을 초월된 “영”의 세계로 바로 부활이 되어 하나님 안에 계신 자들의 세계입니다. “혼”은 사람이 죽어서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면 “혼”은 거쳐할 집이 없으므로 공중에 떠있는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즉 “혼”이 살아있는 육체 안에 들어 있으면 사람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육체에서 분리되면 “혼”은 “귀신”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의학계에서 “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운명 직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관찰을 해본 결과 운명 직전 사람의 체중과 운명한 후의 체중을 달아본 결과 21그램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죽는 순간 21그램의 “혼”이 몸에서 분리되는데 몸에서 빠져나온 “혼”을 “귀신”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의 “혼”이나 죽은 사람의 “혼”은 동일한 것입니다. 이 말은 현생에 살아있는 사람들도 육신의 옷을 입기 전에는 모두가 “혼령”들이요 “귀신”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귀신”과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생물은 넓은 의미에서 눈에 보이는 “영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이 “영”으로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영”차원이 낮은 것은 짐승이고 가장 “영”차원이 높은 것은 사람입니다.

“귀신”은 주로 가장 “영”차원이 높은 사람에게 범접해서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행동 무대를 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육신”을 벗으면 “혼”의 실체가 바로 “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의 “혼”이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어서 “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면 상기의 본문 말씀처럼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귀신”을 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죽으면 “혼”의 처소가 없어지므로 죽음을 통하여 “귀신”을 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평생 “귀신”에게 매여 종노릇 하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귀신” 혹은 “마귀”을 쫓아낼 수 있는가?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육신이 죽으면 “귀신”은 자신의 처소가 없어짐으로 “귀신”은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육체를 죽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육체가 원하는 “소욕”(所欲) 즉 “자아”(自我)를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아”(自我)가 범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 십자가 죽음과 예수님이 30세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육체의 “자아”(自我)를 요단강에 빠져 죽는 것입니다. 요단강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이 요단강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강에서 “자아”(自我)가 죽고 말씀의 강에서 “진아”(眞我)로 부활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혼”의 실체인 “귀신”이 떠나므로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니 “영”으로 부활하신 것은 형상이 없는 우리 소욕의 죽임을 육체로 대신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루속히 “애급”이라는 세상기 독 교회에서 “출 애급”(탈출)을 해서 홍해 바다에서 “육체”의 소욕을 “홍해” 바닷물에 장사 지내고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징계와 율법으로 연단을 받고 “요단강”에서 “혼”의 존재가 말씀의 강에서 죽고 “영”의 존재로 부활하여 “가나안”에 입성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물속에 잠길 때는 “죽음”을 상징하고 물 밖으로 나올 때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 기독교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똑 같이 “애급, 광야, 가나안”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는 것을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시며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면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비유 비사”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육신을 잡고 있는 “혼” 즉 “마귀”의 세력을 멸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예수님과 똑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세계이므로 육신의 “혼적”“자아”(自我)를 죽이고 “영적”“진아”(眞我)로 부활해야 하나님의 아들로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말씀은 보이는 “육”의 삶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의 삶은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