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깨어있으라 예수님은 도적 같이 오신다.

제라늄A 2022. 7. 12. 17:59

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도적”과 같이 임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그때 자기 옷을 찾아 입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4:42~43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상기의 말씀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께서 “도적” 같이 오신다는 이 경고는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은 세상천지가 천지개벽으로 마지막 종말 때에 주님이 아무도 모르게 도적 같이 재림하시므로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재림 예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종말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말씀은 마지막 때 종말에 재림예수님이 “도적” 같이 아무도 모르게 재림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 “비유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25장의 열 처녀 비 유중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의 영적 상태에서 신부 단장하고 있을 때 하늘의 “신랑”이 혼인을 하기 위하여 이 땅으로 오시는데 신랑 되시는 분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도적 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슬기로운 5 처녀”란 뜻은 “비사”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를 말하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화된 “동정녀 마리아나 정결한 처녀”와 같은 “여자”의 영적 상태를 말하는데 이들이 곧 “남자”의 영적 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과정을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는 것을 도적 같이 오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변한 “정결한 처녀”가 된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거듭나게 되면 주님이 도적 같이 임해오시면 “여자”의 영적 상태에서 “남자”의 영적 상태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면 한 단계씩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태산 같은 말씀이 바다의 물이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차고 넘쳐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그 물을 마시면 그 영혼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 기독교에서 탈출해서 이교회 저 교회 찾아다니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만나 말씀의 “예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으면 즉 “정결한 처녀”와 같이 준비된 자가 거듭나면 이때 성전을 준비한 그 몸 안에 주님이 “도적”같이 오셔서 그 몸 안에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말씀)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가 된 자에게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촉구하고 계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재료가 바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건축이 완성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임하셔서 그 성전 된 몸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제7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이며 창세기의 “6일 천지창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성전)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원히 속죄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적은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이 “자기 옷”을 찾아 입고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깨어있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깨우는 것을 말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살려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자를 깨어있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자기 옷”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말하며, 의의 옷이요, 진리의 옷이요, 빛의 옷이요, 세마포 옷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예복을 입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체인 말씀의 “예복”을 입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며 내치십니다.  마태복음 22:12~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옷”(예복)을 대단히 중요시하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는 예수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예수와 똑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들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그 “옷”을 찾아 입어야 하는 “자기의 옷”이요 이것이 우리의 참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옷”을 입은 자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인들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자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요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들이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며 “말씀이 육신”이 된 자들은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와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의의 옷”을 입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계시록 19: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