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오늘날“문둥 병자”들은 누구인가?

제라늄A 2022. 7. 15. 17:32

막 1:40-43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신구약 성경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등장하고 예수님께서는 각종 병자들을 치유해 주시는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소경, 벙어리, 귀머거리, 앉은뱅이, 혈루 병, 중풍, 문둥병” 등등 각종 질병 들린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이 실제로 육신의 질병으로 병든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각종 질병들을 “비유”해서 기록된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보지 못하는 것이 “소경”이요, 영적인 말을 못 하니 “벙어리”요, 영적인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귀머거리”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앉은뱅이”요, “죽은 피”(말씀)를 쏟아내는 자가 “혈루 병”이요, “비 진리”로 자신의 몸 반쪽이 마비된 것이 “중풍병”이요, “비 진리”로 자신의 몸이 썩어 죽어가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문둥병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육신의 질병”을 가진 각종 병자를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 큰 오해를 일으키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성경”으로 읽고 이해하면 모두 “비 진리”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안팎”(계5:1)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밖으로 기록된 말씀은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안쪽으로 기록된 말씀은 “영안”이 열린 사람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문둥병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병으로 신경계의 합병증으로 인해 온 몸이 무감각 증상이 발생하게 되고 촉감 통증 온도 감각도 소실되어 있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런데 본문 40절을 보니까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여기 꿇어 엎드리어 간구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을 보면 “문둥병자”를 고치기 위해 당연히 엎드리고 간구하는 것이 마땅한데 예수님의 반응이 불쌍히 여겼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야 합니다. 물론 육체의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예수님께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기적과 표적이 모두 영적으로 “비유와 비사”로 기록하고 있음을  기독교인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마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근본을 다루는 뜻깊은 “비밀”이 창세부터 “비유”로 감추인 것을 드러내신다고 했던 대로, 창세기의 깊은 뜻을 먼저 이해를 해야 신약성경의 모든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부터 감추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빛과 어둠”을 창조하시고 “궁창 아랫물과 궁창 윗물”을 만드셨는데 이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물”이라고 비유하셨는데  이것을 “아랫물과 윗물”로 나누셨는데 이 “아랫물”은 “어둠”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유”로 감추시고 이 “어둠”인 “비유”의 말씀을 깨달으면 “위에 물”이 되며 “빛”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근본 원리입니다.

고전 2:9-10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막 4:11-12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문둥병자”도 실제 육신의 “문둥병자”가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의 잘못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오해한 데서 오는 병을 “문둥병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각종 질병이 들었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 말씀에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니 “문둥병”이 깨끗해졌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육신의 “문둥병자”로 읽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문둥병자”는 자신이 잘못된 기독교의 “비 진리 신학”의 거짓된 말씀으로 “문둥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찾아올 수 있고 그분 앞에 꿇어 엎드려 간구할 수 있습니까? 사실 아무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무기력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절대로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내가 잘못된 거짓된 “비 진리”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중풍병, 문둥병자”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꿇어 엎드렸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모두 회개하고 오늘날 “실존 예수”앞에 나와 꿇어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꿇어 엎드리지 않습니다.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본질 자체가 “문둥병자”로 있는데 무엇을 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 “문둥병자”는 내가 병든 자구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구나!  이런 사람이 오늘날 “실존 예수”에게 나와 예수님의 “옷자락”(말씀)만 만져도 자신의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잘못된 기독교 “신학”의 말씀으로 모두 “문둥병”에 걸려있는데도 무감각하며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문둥병자”인 줄 아는 사람은 당연히 기독교에서 “탈출”해서 오늘날 “실존 예수”앞에 나와 “진리의 말씀”으로 치료를 받아야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세도 당당하게 그동안 전통을 자랑하는 기독교의 모태신앙이요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이지만 온몸이 “문둥병”으로 문드러지고 썩어져 갔던 본질의 “죄”인 육체를 깨닫지 못하고 육체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었던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기독교인들에게 잘못된 말씀으로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기짓된 “육체의 성전”을 헐지 않으면 아무리 “선한 일, 좋은 일”을 행한다 해도 믿음도 헛되고 또한 여전히 “죄”가 해결되지 못했으므로 “죄”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2:19-20 예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이렇게 예수님은 “비유”로 46년 된 오래된 성전을 헐면 3일 (애굽, 광야, 가나안)만에 다시 짓는다 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비 진리”로 쌓아온 자신의 “육체의 성전”을 하루속히 헐어버리지 않으면 모두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단 모든 것을 헐어 버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면 예수께서는 “3일”동안 다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