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0:4-5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의 이마와 손에 표를 받고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누구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 13:16~18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 이니라, 666표를 받은 자를 자세히 설명할 수 없으나 여기서는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의 종들은 기독교목회자를 말하며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는 것은 오른손은 구원의 손길과(시17:7) “말씀” 전하는 자를 “비유”하고(계1:16)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목사안수(표)를 받는 것이요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것은 오늘날 신학교를 나와 목사안수 받은 자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매매)가 없도록 기독교 헌법에 못을 박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마와 손에 표를 받고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기독교인들의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없고 혼의 생명 밖에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 살아있는 자가 살아서 믿는 “믿음”이 실질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의 생명밖에 없는 “죽은 자”가 어찌 기도를 하며 죽은 자들이 무슨 예배를 드립니까? 그러면 죽은 자들은 성경에서 어떤 자들을 말하는가? 마 8:21-22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들 안에 혼의 생명은 존재하나 하나님의 생명인 영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혼의 존재들을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 나리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먼저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찌 “죽은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회칠한 무덤이요 외형은 회칠을 해서 하얗게 보이지만 안에는 썩은 냄새들로 악취가 가득합니다. 마 23:27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인 위선자들이여 화 있을 진저,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기 때문이니 겉은 실로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와 온갖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있도다. 바로 이 말씀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자칭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기독교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존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은 반드시 “실존예수”가 있어야만 구원을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실존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는 어느 때와 시기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예수”로 계실 때만이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실존예수”가 오신 것입니다.
“실존예수”가 없이는 구원을 시 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요1:14)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오늘날의 “실존예수”가 없이는 절대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2000년 전 유대인들의 구원자 “실존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모두 허공을 치는 우상 신앙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당시에 유대인의 “실존예수”를 믿어야 구원인데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해서 십자가에서 죽인 그 예수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오늘날의 “실존예수”의 믿음으로 바꾸어져야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본 문장의 천년이란 하나님의 시간이며 구원의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시 공간을 초월합니다. 시편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라, 전 6:6 그가 천 년의 두 배를 산다 하여도 아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였으리니, 모두가 다 한 곳으로 가지 아니하냐, 2.000년을 살아도 사는 그 의미는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천년의 시간에 대해서 하나님의 시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고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있을 때 예수와 고난과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며 “성령”(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는 항상 살아 있는 현제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고 그 말씀이 살아서 내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살아서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삶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이 아니면 그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야 합니다. 고후 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자신이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들이니라, 여기서 너희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하게 되어 있지 않으면 이미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예수님을 안다고 무엇을 어디까지 믿고 안다는 것입니까? 내가 거룩하게 완전하게 되어 있다고 확증해야 합니다. 반드시 기록된 말씀이 생명으로 역사하여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요6:63)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은 “말씀” 충만입니다. 주님은 반석이시고 우리는 살아 있는 돌들이며 그 돌들이 연계되어 교회들을 이루고 있고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벧전 2:5 너희도 살아있는 돌들로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될 지니라,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믿음의 대상은 십자가전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 후 부활하신 오늘날의 재림하신 “실존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유대인의 실존예수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실존예수”가 되신 것입니다. “실존예수는 알파와 오메가”이시기 때문에 어느 때 어느 시대 항상 “실존”으로 계실 때만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완성을 말씀하시고 마 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모두 이루어지리라, 그 결과로써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고 거룩하게 된 자들이 모여지는 곳이 바로 왕들의 모임입니다. 또한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자들이 다 한 분으로부터 났나니, “실존예수”께서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같이 하나에서 똑같은 형제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 말씀의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영이 없는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려면 오늘날의 영이 살아있는 “실존예수”의 “믿음”으로 바꾸어져야 “구원”이 성립(완성)될 때까지는 즉 천년이 차기 까지는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살아있는 자가 살아서 믿는 “믿음”이 실질적인 믿음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