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2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다.
해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유대인들 중에서 구별된 자로 율법과 그에 따른 규례를 철저히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니고데모는 유대교 신학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놀라서 이분이 혹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가 아닌가를 알아보기 위해 야밤에 몰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께 다가가서 말씀드리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런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감각으로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시는 외적인 표적을 보고 혹시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고 예수님께 묻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중의 바리새인이며 이스라엘인들을 가르치는 자로 율법과 선지 서를 모두 알고 가르치면서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실존예수”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구약성경은 모두 오실 메시야, 즉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을 올바로 알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 “실존예수”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들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회 목회자들도 이미 오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하늘의 뜬 구름만 바라보며 구름 타고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파(시작)와 오메가(끝)”로 예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항상 우리 가운데 “실존예수님”은 계시다고(계1:8)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영안이 없어 보지 못하고 오시지 않았다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존예수님”이 안 계시면 어느 때를 막론하고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실존예수님”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실존예수님”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해설: 니고데모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거듭나는”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는”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날기독교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막연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잉태”(임)되어 태어나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다 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먼저 기름(말씀)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은 “동정녀마리아”와 같은 “정결한 처녀”의 몸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을 잉태할 수 있는 “정결한 처녀”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니고데모와 같이 “거듭”(부활) 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체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에게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도 말씀이요 “성령”도 말씀이나 기름(말씀)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며 기독교목회자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목회자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거짓증거를 하고 있는데도 기독교인들은 목회자의 말은 잘 들어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니고데모와 똑 같이 “물과 성령”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예수”와 같은 자들이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 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천국에 들어가려면 기독교 목회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삯군목자나 거짓목회자의 말을 믿거나 들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전하는 말씀은 신학을 나온 목회자들이기 때문에 신학을 믿고 신학을 전하는 자들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의 본질과 같은 종족을 이어가는 “계시복음”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첫 장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라 해서 누가누구를 낳고, 낳고 하면서 끝에 가서는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낳고 낳는 것이지 신학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27 계시를 받은 자가 아니면 아버지(말씀)를 알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영안이 열린 자들만이 볼 수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6-9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해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내가 네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하겠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목회자의 말은 잘 들어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니고데모와 똑 같이 “물과 성령”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예수”와 같은 자들이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 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천국에 들어가려면 기독교목회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거짓목회자의 말을 믿거나 들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다르게 성령으로 잉태해서 육신이 태어났다고 주장을 하고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육은 육을 낳고 성령은 성령을 낳는 것”이지 성령으로 육신을 낳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는 것이요, 사람은 사람을 낳고, 성령은 성령을 낳는 것이지 성령으로 사람을 낳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육신 안에 성령이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번역자들이 “임”하는 것을 “잉태”로 오역을 한 것입니다. 만일 성령으로 육신이 잉태되어 아들을 낳는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자연의 질서가 모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신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육신이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으로 육신이 잉태되어 낳음을 받아야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 모두가 니고데모와 같이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목회자들의 거짓증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상기의 말씀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렇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람은 보이지 않고 임의로 불기 때문에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으로 낳는 사람도 언제 어떻게 낳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도적같이 혹은 번개같이 임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낳는 자들은 본인도 언제 낳음을 받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너무 놀라서 예수님에게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경탄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올바로 듣는다면 당연히 놀랄 것이고 고민이 되어 잠도 못잘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3:10-1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해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을 하시면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네가 이러한 일도 모르냐고 책망하시는 것은 니고데모는 일반 교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영적 지도자, 즉 오늘날 신학교 교수나 목회자에 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우리는 분명히 아는 것을 말하고 확실하게 본 것을 증거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니고데모는 물론 오늘날 목회자들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증거 하는 것을 거짓증거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는 분명하게 아는 것을 말하고 확실하게 본 것을 증거 하여도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엘로힘)라고 말하는 우리는 복수로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거듭난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나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나 증거를 받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기독교목회자들의 말씀을 듣고 알고 있는 것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먹는 양식, 즉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먹는 “유교병”인 누룩섞인 말씀과 “광야”에서 먹는 “무교병”누룩이 없는 말씀과 “가나안”에서 먹는 “진설병”생명의 말씀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굽교회”(기독교)에서 “유교병”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주는 각종교리를 양식으로 먹으면서 기복신앙으로 굳어진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진설병”생명의 말씀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히브리서 5장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지금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남들을 가르치고 있어야 할 터인데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너희는 지금도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존재, 즉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제는 말씀의 초보신앙에서 벗어나 단단한 식물, 즉 의의 말씀인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이 젖이나 먹고 있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크게 잘못된 제도는 목회자는 평생을 자기교인들에게 젖을 먹여주고 교인들은 평생을 목회자의 젖을 먹고 살다가 생을 마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에게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애굽”이라는 기독교 세상교회에서 교리와 기복신앙으로 젖을 먹는 자는 모두 어린아이로 의의 말씀인 생명의 말씀은 맛도 보지 못하고 허공을 치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애굽 세상교회”에서 교리와 기복신앙으로 젖을 먹는 자는 모두 어린아이로 의의 말씀인 생명의 말씀은 맛도 보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단단한 식물, 즉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장성한 자들의 것으로 저희는 이미 “광야”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시험과 연단을 받아서 지각이 있기 때문에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니고데모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일은 어떠한 일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늘의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시는 일로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죽은 영혼을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기의 말씀에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는 인자는 곧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는 것이며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로 낳음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 외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예수님과 영적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이 하시는 이러한 영적인 말씀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교만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실존예수님”의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 그리고 사도바울과 같이 계시의 눈, 곧 영안이 열린 자만이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려면 하루속히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해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4-19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해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할 것인데 그 이유는 인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놋뱀을 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것을 보고 여호와께서 불 뱀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모세에게 놋뱀을 장대에 매달게 하여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민21:9) 이렇게 예수님도 모세와 같이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영혼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이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믿음으로 모두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믿기만 하면 어느 누구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기준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자들을 아래의 말씀을 통해서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19 하나님이 세상(존재)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해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 즉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는 말씀 때문에 자신들은 예수를 믿는다하여 모두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본문에 “독생자”라는 말씀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한분뿐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생자”는 원문에 “톤 휘온 아우투 톤 모노게네 에도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진정한 뜻은 “독생자를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독생자” 즉 외아들이 아니라 “맏아들”입니다. 로마서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이제는 “맏아들”이 되시고 그 형제들은 예수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차남들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 이같이 하나에서 똑 같은 형제를 탄생 시키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라면 이 세상에 예수님이외에 하나님의 아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독생자”라 말하면서 자신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은 하나님의 친 아들이 아니라 양자 곧 양아들이라 말하는데 양아들이란 아버지의 씨를 받지 않은 가짜 아들 즉 상표만 붙어놓은 짝퉁 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예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뜻은 예수를 믿으면 믿는 즉시 영생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는 앞으로(미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예수를 믿는다 하여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잘못 믿고 있는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던 예수님이나 성경 속에 계신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날의 “실존예수님” 즉 오늘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신 현재의 “실존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시켜 영생을 주시는 분은 이천 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이나 미래에 나타날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날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오늘날 “실존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당시에 “실존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때 당시에 “실존예수님”이 안 계셨다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과거의 예수나 미래의 예수 혹은 성경 속에 있는 예수가 아니라 현존하는 “실존예수님”이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현재의 예수가 없다면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를 믿을 수는 있으나 죄 사함을 받거나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실존예수님”을 보내주시면서 구원자로 믿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시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실존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은 이름석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말씀”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심판이나 정죄의 기준은 곧 빛(예수님)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예수님)보다 어둠(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 안에 들어있는 악, 즉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자신이나 세상목회자를 더 사랑하며 신앙생활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하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사후에도 천국에 가서 더 잘 살기 위한 욕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고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해도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만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며 이런 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3:20-21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해설: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곧 예수님을 미워하여 예수님께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잘못된 행위가 모두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를 좇는 자는 예수님께 오는데 이런 자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이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신앙생활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로 해야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자기 욕심대로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실존예수님”을 미워하고 이단으로 배척하여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과 비리들을 모두 책망하시고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배척하며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예수님”도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으로 배척을 받으며 온갖 핍박과 모략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고 있는 자들, 즉 기독교에서 소외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실존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22-24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해설: 예수님께서 구원과 심판의 기준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그곳에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세례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는데 그곳에 “물”들이 많기 때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물”들이 많다는 것은 강이나 샘물이 많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찾는 자, 곧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고 요한이 지금도 세례를 주고 있는 것은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앞으로 “옥”에 갇힌다는 것과 또한 “목 베임”을 받아 죽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옥”에 갇혀서 “목 베임”을 당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세례요한이 거듭나 예수가 되는 과정을 “비유비사”로 “옥”에 갇혀서 “목 베임”을 당해 죽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인이라면 세례요한같이 “옥”에 갇혀서 “목 베임”을 당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없다는 말을 이렇게 “비유비사”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을 깨닫는 자만 구원시키기 위합니다.(막4:11-12)
요한복음 3:25-28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 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 할 자는 너희니라,
해설: 요한의 제자 중 하나가 유대인과 결례에 대하여 변론을 하다가 요한에게 와서 말하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 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례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께서 그에게(예수)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를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말한바와 같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와 유대인이 서로 변론을 하다가 요한을 찾아가게 된 것은 결례, 즉 “세례”때문입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은 그동안 세례요한뿐 이었는데 지금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세례”를 주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말씀)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행하는 결례에는 머리에 물을 세 번 찍어 바르는 “물세례”가 있고 안식일 교회에서 행하는 목욕탕에 물을 담아놓고 물속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오는 “침례”가 있고 천주교회에서 행하는 “영세”가 있는데 형식만 다르지 모두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는 다는 의미로 동일 한 의식입니다.
그런데 안식일교회에서 행하는 “침례의식”은 물속에 잠김 때는 잘못된 신앙으로 더럽힌 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는 죽음을 상징하고, 물 밖으로 나올 때는 깨끗한 몸으로 부활(거듭)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행하는 “세례”식은 한번으로 끝나지만 성경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 팔일 만에 받는 “유아세례”가 있고 출 애굽할 때 모세를 통해 홍해바다에서 받는 “세례”가 있고 광야의 훈련을 마친 자들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받는 “물세례”가 있고, 가나안에 들어가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물과 성령”은 생명의 말씀을 말하는데 “물”은 사람의 외면을 씻는 것이며, “성령”은 내면을 씻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는 표면적 세례와 이면적 세례”가 있는데 이러한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적으로 “세례의식이나 침례의식”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짓된 비 진리로 더러워진 육체의 성전이 생명의 말씀으로 죽고 생명의 말씀으로 부활(거듭)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에 충만 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해설: 요한은 이어서 말하기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옆에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에 충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은 예수님을 말하며 신부는 신부단장을 하고 세마포를 입은 “동정녀 마리아”같은 “정결한 처녀”를 말하며 그리고 신랑 옆에서 신랑의 음성을 듣고 좋아하는 자는 세례요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신랑 곁에 서서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는 것은 요한(여자)도 곧 예수님과 혼인을 하여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중에 제일 큰 자”이기 때문에 요한이 “여자”의 영적상태에서 신부의 입장에서 “남자”인 신랑예수님과 혼인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예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세례요한은 “여자”의 영적상태이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거듭나면 “남자”로 거듭나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흥”해야 하며 나는 “쇠”해 없어져야 예수님과 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으로 요한 안에 그동안 자리 잡고 있던 잘못된 고정관념과 더러워진 마음이 모두 깨끗이 씻어지고 “쇠”하여 없어져야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된다는 것을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1-34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 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하여 인 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해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하늘에서 난자, 곧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난 예수님을 말씀하시며 땅에서 난이는, 곧 육으로 나서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난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위에 계시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말을 하지만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로서 오시는 예수님은 만물위에 계시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와 “혼”의 세계가 다르고 “혼”의 세계와 “육”의 세계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애굽”의 세계가 있고 “광야”의 세계가 있고 “가나안”의 세계가 있는데 “애굽”은 “육”의 세계이며 “광야”는 “혼”의 세계이며 “가나안“은 “영“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세계와 예수님이 하시는 증거와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이 참 되다하여 하나님께서 “인”을 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의 말씀과 증거를 받아들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침”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을 불신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배척을 한다면 “적그리스도”의 “인침”을 받게 되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적그리스도”의 “인침”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인침”은 하나님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실존예수님”의 말씀의 “인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어서 그 입에서 나오는 “생수”곧 생명의 말씀이 한량없이 나오기 때문입니다(요14:26)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데 모두 “적그리스도”의 “인침”을 받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5-36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해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사랑하여 만물을 다 아들 “예수”의 손에 주셨기 때문에 아들 “예수”의 말씀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아들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믿으라고 하는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인지를 모르고 이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만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천년 전에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던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보내주신 유대인들의 구원자이며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믿으라는 구원자는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는 항상 “실존”으로 계실 때만이 구원이 성립되지 “실존예수님”이 안계시면 구원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딩시에도 “실존예수님”을 영접한 제자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유대교인들은 “실존예수님”을 배척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예수님”을 영접해야지 과거에 오셨던 예수님이나 앞으로 미래에 나타날 예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로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 영원토록 “실존예수님”으로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영”으로 계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체의 몸으로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계1:8) 왜냐하면 구원이나 영생을 주시는 분은 성경속의 예수님이나 과거에 오셨던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오늘날 살아계신 “실존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존예수”는 예전에 오셨던 예수님과 똑같이 오늘날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님, 즉 육신 안에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인간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병자들은 오늘날의 의사가 병을 고쳐 주듯이 구원도 오늘날 “실존예수”가 없다면 절대로 죄 사함이나 영생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살아 계신 “실존예수님”이 실제 계시느냐 하는 의문을 같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을 통해서 너희가 오리라고 기다리고 있는 예수님은 이미 벌써 와서 계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운데 와 계시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영안이 없어서 “실존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일 4:3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같이 “실존예수님”은 벌써 세상에 와 계시다고 성경은 말하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을 시인도 하지 않으며 이단으로 배척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인침”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시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미 와 계신 “실존예수님”을 영안이 없어 보지 못한다고 말해야지 오시지 않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전에 오셨던 모습 그대로 오늘날도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 오늘날도 기독교인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금 오셔서 계신 예수님을 유대인들도 당시에 오신 예수를 믿지도 않고 이단이라고 핍박을 하고 결국은 죽였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단이라고 핍박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마8:20)고 오늘날도 한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무지한 기독교인들에게는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문 앞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누구겠는가?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요한 복음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5장 해설 (0) | 2024.04.16 |
---|---|
요한복음 4장 해설 (0) | 2024.04.15 |
요한복음 2장 해설 (0) | 2024.04.13 |
요한복음 해설 서론과 1장 해설 (0) | 2024.04.12 |
성경에서 요한복음이 제일 중요한 이유 (0) | 2024.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