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6:1-2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해설: 일곱 인으로 봉해진 성경 중, 그 첫째 인을 떼시게 될 때에 흰말을 타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 자는 예수님의 영(새 말씀)이다. 즉 말을 탄자는 봉한 성경을 예수님이 낱낱이 해석하신 말씀(성령)입니다. 그리고 탄자의 손에 들려진 화살 역시 진리의 새 말씀이 됩니다. 그러면 말씀을 태운 흰 말은 누구인가? 첫째 인을 떼니 흰말은 탄자가 보입니다. 흰색은 하늘의 색이요 하나님의 색이요 빛의 색이며 깨끗하고 의롭고 거룩함을 나타내고 있으며 말은 육체를 가진 사람을 말하니(사31:3) 흰말을 타고 있다는 것은 의인들을 타고 있다는 것이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타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예수를 타고 있는 자를 가리켜 흰말을 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흰 말을 탄 자라 해서 지례짐작해서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흰말을 탄자란 표면적인 하늘의 진리로 옷을 입고 있는 거짓목자를 말하며 표면적인 예수의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을 말하니 본문에서 흰말을 탄자는 예수를 빙자한 적그리스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뢰의 재앙을 발하시는 대상이며(계6:1) 하나님을 모시다가 타락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6:2-5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홍마, 흑마, 백마, 어룽진 말, 들은 하늘에 있는 네 바람(영)인데 주를 모시다가 나가는(타락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종류의 말들은 주(主)를 모시다가 자기 처소를 떠난 거짓목자들을 말하고 있으니 상기의 본문의 흰말을 탄 자는 예수를 빙자한 적그리스도를 말하며, 마태복음 24:10-12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흰말을 탄자는 활을 가지고 있습니다. 활이란 약속이 없는 자들이요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하여 거짓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비 진리의 무기들을 활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 들은 활을 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여 포식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에스겔 13:17-18 너 인자야 너의 백성중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부녀들을 대면하여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 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시편 37:14-15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 지리다. 백마를 타고 있는 충신과 진실은 하나님 말씀으로 면류관을 쓰고 있으니 곧 의의 면류관이요 생명의 면류관이요 영광의 면류관이요 썩지 않는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흰말을 타고 있는 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은 오늘날 거짓목사들이 교회와 교단과 교권과 교인들을 자기들의 면류관으로 삼고 여황처럼 군림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계 목사들을 빙자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는 것을 보았던 적그리스도들은 활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이기고 또 이기더니 많은 성도들을 모아 승리하고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말하며 예수님의 보좌에 앉아 기사와 이적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흉내를 내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비기려 하며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으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해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늘날 예수님은 말씀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게 아니고 칼을 주러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을 주시면 반드시 그 말씀을 반대하는 무리가 일어나 말씀과 말씀이 대적하는 전쟁이 발발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풀어주신 성경 말씀이 세상에 나가자, 즉 흰말을 탄자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가자 그 시시비비로 종교전쟁이 시작됩니다. 종교전쟁은 무기전쟁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새 말씀과 기존의 교리들이 서로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 교리전쟁이 피 흘리는 색깔 붉은 말입니다. 따라서 붉은 말이 나왔다는 것은 교리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붉은 말이, 즉 교리전쟁이 화평을 제하여 서로 죽이게 한다고 했습니다. 교리전쟁이므로 물론 이 죽음은 육적 죽음이 아니고 영적 죽음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는 반드시 영적 피를 흘리게 마련이며 피의 색깔은 붉기 때문에 교리전쟁의 상황이 붉은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계시록 6:5-6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하더라,
해설: 검은색은 슬픔과 기근을 나타내는 것으로 영적인 기근의 재앙을 몰고 오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렘4:27-28) 흰말을 탄 적그리스도들과 붉은 말을 탄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면서 이미 온 종교계는 기근의 때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흰말과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의 큰 칼(진리)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양식이 풍부할 것 같으나 먹을 수 있는 양식은 모두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때 검은 말을 탄 자들이 나타나 손에 저울(은사)을 들고 믿는 자들의 필요에 따라 양식을 공급해 줄 수밖에 없는 절박한 기근의 때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흰말과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이 가지고 왔던 기사와 이적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화평을 깨뜨리는 유혈 전쟁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결과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습니다(겔4:9) 붉은 말을 탄 자들은 육체의 축복과 땅의 축복을 들고 나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영적인 기근을 몰고 왔으며 그때 검은 말을 탄 자들이 손에 저울을 들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검은 말이 등장하였다는 것은 많은 신흥종교 단들이 우후죽순 일어나 불같이 일어나 땅의 축복을 부르짖으면서 개개인들에게 필요한 영육 간에 양식을 저울에 달아 공급하여 주는 자들이 사방팔방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 음성이란 어떤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음성으로 네 생물들 사이를 왕래하고 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말합니다. 일곱 인을 떼고 계시는 예수님이 말하기를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반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을 말하며(마20:2) 되는 건강한 남자의 하루 식량을 나타내는 단위였습니다. 그러므로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라는 것은 종교생활 하는 자에게는 심각한 기근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마24:7) 한 목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영의 양식이 겨우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양식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영혼들을 살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밀의 영식을 먹을 수 있는 자는 광야에 나온 자들이 먹는 양식이지 애급의 종교인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는 것은 애급이라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종교생활 하는 자들이 먹는 양식으로 광야에서 먹는 밀의 양식보다 애급에서 먹는 보리 양식의 수준이 삼분의 일 정도의 값어치가 없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것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가나안의 이른 자들의 소유로 기름성령과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말하니 이들은 검은 말의 재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더라는 것을 말합니다.
계시록 6:7-8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1/4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해설: 넷째 인을 떼실 때는 사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황색 말이 나왔다. 그 이름들은 검, 흉년, 사망, 짐승 이렇게 넷이다. 검으로 죽이고 흉년으로 죽이고 사망으로 죽이고 짐승으로 죽이니 세상은 사망 일색입니다. 다시 말해 검의 죽임 1/4, 흉년의 죽임 1/4, 사망의 죽임 1/4, 짐승의 죽임 1/4, 이렇게 각각 1/4씩 모조리 죽이니 그야말로 킬링필드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풀어주신 새 말씀이 전해질 때, 처음엔 아무도 듣지 아니하고 반발만 심할 것이므로 말미암아 100% 모두 죽은 자로 간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엔 심지어 택한 자 144.000까지도 예수님이 풀어주신 말씀을 의심할 것이므로 모든 사람의 죽음이 됩니다. 4자는 세상 사방을 뜻하는데, 1/4씩의 죽음이 네 번 있기 때문에 온 세상 사방사람들의 전멸을 뜻 합니다.
여기서 검의 죽임, 흉년의 죽임, 사망의 죽임, 짐승의 죽임 등은 각각 무슨 특별한 뜻이 부여되는 죽임들이 아닙니다. 다만 온 세상 사방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새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단순히 모두 죄인이요 죽은 자로 처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공포스러운 죽음의 색깔들이 형형색색으로 곰팡이를 피우기 때문에 청황색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정리해서 넷째 인까지 네 종류의 말이 나왔다는 것은, 마지막 때에 흰말이신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말씀을 풀어서 전파하시게 되자 예수님의 새 말씀(탄자)과 기존의 교리들이 충돌하게 되는 총체적인 교리전쟁과 그 상황들을 뜻한다. 교리와 교리의 말씀 전쟁이므로 영적 전쟁이며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다시 말해 첫째 인에서 최초로 백마이신 오늘날의 실존예수가 말씀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의 교리를 이기고 동시에 적그리스도의 비 진리도 이기시려고 나오시자 그 뒤를 따라서 나온 것들이 흑마, 적마, 백마, 청황색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네 종류의 말들은 모두 교리와 교리의 전쟁이 된다는 뜻입니다. 크게 대별하면 예수님의 말씀, 기독교인들의 교리, 적그리스도의 비 진리, 이렇게 세 집단의 교리들이 싸우는 종교대전이 됩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해 기존의 교리도 무너지고 적그리스도도 죽게 됩니다. 이처럼 교리전쟁 중에 당하는 전 방위적인 사망은 너무나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청황색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계시록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해설: 흰 두루마기는 오늘날 새 말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죽임을 받을 동료는 누구를 말씀하신 것인가? 예수님이 복음을 주시고 떠나가신 후, 그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하다가 예수님처럼 죽음을 당한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과 제사장이 될 자들로 택함 받은 자들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도 이 땅에서 왕 노릇하신 일이 없고 죽음을 당한 자들도 왕과 제사장 노릇을 한 일이 없다. 죽고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택함만 받았을 뿐인데, 진리의 말씀으로 죽고 부활 한 자들이 전하는 동안 이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고 했다. 흰 두루마기는 오늘날 이 땅에 전해지고 있는 진리의 새 말씀인데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사람들은 지금까지 비유로 된 복음을 문자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천국을 죽어서 영혼만 가는 천국으로 믿었습니다. 천국에 영혼만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육체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윤회, 혹은 환생)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도 육체로 다시 오셔서 성경을 풀어주시고 있고 그들도 예수님처럼 다시 와서 그 새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새 이름의 새 육체로 다시 오시듯이 그들도 새 이름의 새 육체로 다시 와 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육체가 죽는 죽음인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육체가 다시는 죽지 않으시고 전능한 왕이 되시듯이, 이들도 다시는 육체가 죽지 않고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죽음을 받는가? 영적 죽음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 죽음이란 교리복음에서 죽고 새 말씀에서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는 것은 새 말씀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교리복음의 생명은 버려야 한다는 영적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넷째 인을 뗄 때까지는 아무도 듣는 자가 없어서 온 세상 사방사람들의 죽음, 즉 1/4씩의 죽음이 있었다고 했으나, 이처럼 다섯째 인을 뗄 때는 택한 자들이 주의 새 말씀을 듣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6:12∼17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 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종과 자주 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해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오 하더라, 큰 지진이란 교리전쟁에서 발생하게 되는 큰 소동입니다. 이러한 교리전쟁의 큰 지진이 교단의 원로들에서부터 평신도들까지 모두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동안 살았다고 큰소리치던 그 오만한 사기가 빛을 잃고 추락하게 되는데, 그것을 상징하여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이 땅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해와 달은 각 교단의 지도자급이라면 별들은 양 떼들입니다. 이는 또한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어 믿던 것들의 몰락과 붕괴이므로, 하늘이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교단과 교회들의 목사들과 대소 직분 자들과 말단 교인들까지 한 가지로 새 말씀의 강진에 자기 위치를 잃고 혼절하는 상황이므로,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 워 진다고 했습니다. 각 산과 섬은 각 교단과 교회들이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 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얼굴을 가리 운다고 했습니다. 이는 각 교단과 교회들의 모든 상하 신도들이 회개할 줄 모르고 더욱 깊숙이 본래의 자기들의 교단과 교리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완고함을 뜻합니다.
굴과 산 바위틈은 더욱 깊이 그 속에 자기들의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각 교회들의 완고한 교리들이 됩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변화해서 자기를 죽여 새롭게 거듭나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장장 이천 년 만에 불어 닥친 새 말씀의 돌풍에 회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자기들의 무지한 신앙에 더욱 고착해서 어린양의 진노에서 가리우라 합니다. 새 말씀의 하나님께는 죽어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단을 향한 일편단심입니다. 하나님과 사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창조란 어제의 묵은 것과 결별하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즉 변화를 받아들여서 발전적으로 나를 항상 갱신하며 거듭나는 일이 하나님의 창조이며 하나님께 속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과거 초림주의 복음이 들어왔을 때는 그 복음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복음시대에 여전히 유대 당에 머물러 있으면 사단이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면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했고, 그리하여 오늘날 재림주의 새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오늘날 여전히 이천 년 전의 복음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이 사단이고, 새 말씀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이고, 어제의 구 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단입니다. 그런데 본문 중의 사람들은 어제의 구 교리와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깊이 바위틈(완고한 구 교리)에 숨으면서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에서 가려달라고 하니 한심하다. 새 말씀을 듣지 않고 복음에 고착해 있는 오늘의 모든 교인들이 그 모양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